디시인사이드·오늘의 유머·SLR클럽…다른 생각에 '일베충' 손가락질하는 좌파시즘
너와 나의 생각은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분명히 통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얼마나 자유롭게, 그리고 민주주의의 원칙에 의해 보호받고 살고 있을까? 이에 대해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생의 작품인 '일베 손모양 석상’이 전시되어 큰 논란을 낳았다. 하지만 이는 며칠 되지 않아 한 공익근무요원에 의해 파괴되는 운명을 맞았다. 단순히 석상만 부수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사상의 자유도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부순 이유를 듣자하니 “표현의 자유라면서 6월 한 달 동안 그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해 그 무책임함을 질타하기 위해 파손했다”고 한다. 사태도 사태였지만 죄를 짓고서 오히려 당당하게 구는 게 더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대체 뭘 잘했다고. 홍성담 같은 저속한 미술가의 작품은 표현의 자유라 지지하면서,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의 자유는 더러운 것이라고 치부하는 '깨(어 부수는)시민’들의 작태가 가관이다.

한참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61년부터 1988년, 이 27년간은 군사정권이 들어서 언론을 탄압하는 통에 '표현의 자유’가 명백히 위축되었던 어둠의 시간이었다. 기실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군부는 자신들을 반대하는, 진실을 알리려던 이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자비한 진압과 고문으로 화답했고, 운동권은 날아오는 최루탄 가스를 마시며 군경에게 화염병과 돌을 던지기 바빴다.

   
▲ 일베충이라는 손가락질. 우리는 '좌파시즘’이 넘실거리는 현실에 살고 있다. 툭하면 시청 앞과 광화문 광장을 점령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부르짖던 자들의 위선의 칼날에 눈을 감아야 한다./사진=YTN 뉴스영상 캡처


시간이 흐르며 군사정권도 사라지고 국민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는 시대가 왔다. 이 땅의 민주화가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럼에 따라 '민주화 세력’은 87헌법 제 21조에 명시된 '언론 출판의 자유’를 바탕으로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이들도 과거 군사정권과 다를 바 없이 권력집단이 되더니 사회 전반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어선점을 통해 이 사회의 지배 사상마저 그들이 잠식하기 시작하더니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바꿔놓았다. 좌파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들은 인터넷의 시대가 열림에 따라 활동 범위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까지 확대했다. 이들의 행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에 촛불정국을 불러일으킨 한미 FTA 반대시위와 세월호 시위에서 정점을 찍는다. 역시나 좌익세력이 SNS와 각종 유인물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며 시위를 주도했다. '미국산 소고기는 안전하다’, '세월호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참사다’라는 객관적 사실을 보여주거나 그것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표출하면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가정보원의 음모라며, '십자군 알바단’이라며 몰아세우고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다원적 목소리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작금의 세태를 보아하니 한 쪽의 민주주의만 있고 다른 한 쪽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좌파세력 자기들만이 옳고 남들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선이요,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가 이야기 한 대로 '싸가지 없는 진보’의 표상일 뿐이다. 자기들과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일베충’이라고 매도하기 일쑤다. 매카시즘이 달리 매카시즘이 아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몸을 사려야 하는 때가 바로 요즘이다. 페이스북에서 자기 성향과 맞는 글에 따봉 하나 누르기를 망설이며 은밀하게 메시지를 통해 의견을 전달해야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서글프다. 웃긴 짤방의 출처가 디시인사이드와 일베를 필두로 한 보수성향의 커뮤니티면 웃으며 따봉 하나 누른 것을 곧바로 취소하고 웃음기를 없애야 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사진을 찍을 때조차도 손 모양에 디테일하게 신경써야한다.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페이스북 친구 삭제를 당하고 카카오톡을 통해 연락도 하지 말라는 등 심적 고초를 겪었다. 그냥 너와 나는 생각이 달랐을 뿐인데. 정치성향과 사고의 차이로 인해 인간관계마저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 홍성담 같은 저속한 미술가의 작품은 표현의 자유라 지지하면서,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의 자유는 더러운 것이라고 치부하는 '깨(어 부수는)시민'들의 작태가 가관이다./사진=일베저장소


또 다른 실례로 나는 작년에 복학하고서 학교 내 토론동아리에 가보았는데, 그날 주제가 흥미롭게도 '일베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정부가 폐쇄해야 하는가?’였다. 나는 반대급부의 상황도 생각해보라고 했다. SLR클럽, 오늘의 유머 등 좌성향의 사이트도 국가가 유해사이트로 지정하고 폐쇄해도 될 것 같으냐고. 아니나 다를까 토론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에게 어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활동하느냐고 쏘아 물었다. “혹시 커뮤니티 사이트 어디 들어가세요?” 사실 이는 말이 좋아 “무슨 사이트 하세요?”였지 그 질문의 함의는 “너 일베충이지?” 라는 무서운 낙인에 다름없었다. 그 토론동아리에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보듯이 우리는 '좌파시즘’이 넘실거리는 현실에 살고 있다. 툭하면 시청 앞과 광화문 광장을 점령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며 부르짖던 자들의 위선의 칼날에 눈을 감아야 한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일베충’이라고 몰아세우며 재갈을 물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가진 생각이 달라 쉽사리 인정 할 수 없다고 쳐도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색안경 없이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 옳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 다양성이 보장되어 좀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세상에 틀린 생각이란 없다. 그저 다른 것일 뿐. /박규빈 자유경제원 인턴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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