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방안을 놓고 금융투자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초대형 IB 자기자본 기준을 얼마로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회사의 영업환경이 급격하게 바뀔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의 초대형 IB 육성에 대한 의지가 워낙 강해 자기자본 기준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가 다음달 중 발표하는 초대형 IB 육성방안에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 등 건정성 규제완화와 글로벌 사업 역량 강화와 같은 다양한 인센티브가 포함된다. 특히 그간 증권사의 숙원이었던 법인에 대한 지급결제도 허용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증권사는 개인 종합자산관리(CMA) 계좌에 한해 지급결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인의 결제규모가 한해 8000조원에 달할 만큼 압도적이어서 증권사들은 꾸준히 법인에 대한 지급결제 허용을 요구해왔다.

법인 고객은 증권사를 통한 급여지급 등 계좌이체가 불가능해 증권사의 ‘곳간’이 은행에 비해 넉넉하지 않다는 불만이다. 수수료 수입도 있지만 법인 고객 자금을 통해 다양한 금융투자 상품으로의 유입을 꽤하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초대형 IB 자기자본 기준이 증권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질 것이라는 데 있다. 애초 알려진 ‘5조원 이상’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부인했지만 5조원 이하로 확정된 것도 아닌 상태다.

현재는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종합금융투자사업자만 기업신용공여(대출)와 헤지펀드 중개 등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를 할 수 있다. 중소형 증권사보다 사업영역과 다루는 금융상품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총 6개사가 여기에 속한다.

만일 금융위가 자기자본 5조 이상 증권사만 초대형 IB 인가를 내줄 경우에는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증권 합병 법인만 수혜를 입을 수 있어 다른 증권사의 박탈감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하반기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3조원 이상으로 몸집을 불리려던 신한금융투자는 꾸물대다 자칫 또 다시 선두 증권사의 꽁무니만 쳐다보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사 측은 금융당국이 일방적으로 초대형 IB 자기자본 기준을 정하는 것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투협 관계자는 “금융위에서 업계나 금투협 등의 의견 수렴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자기자본은 기준은 물론, 인센티브에 대해서도 전혀 얘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황영기 금투협회장도 자기자본 5조 기준은 지나치게 높다는 입장을 보였다.

황 회장은 “초대형 IB 기준이 5조원이 되면 인수합병(M&A)을 통해 3조원대에 진입하려는 증권사들의 희망을 꺾는 것”이라며 “자기자본 3조원대만 진입해도 증권사가 여러 사업이 가능하다는 꿈과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지속적으로 초대형 IB 육성을 강조해온 만큼 자기자본 규모가 5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는 허용된 상태지만 한국은행과 시중 은행은 증권사의 ‘몸집’이 작아 자칫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면서 금융결제원의 내부 규정을 통해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를 막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을 현재 수준보다 크게 늘리는 명분 쌓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책이 업계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지 증권사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도 “자기자본 기준이 얼마로 정해졌는지는 아직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법인 지급결제는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못하고 있는 것뿐인데 이것을 금융당국이 선심 쓰듯 풀어주면서 증권사에 자기자본을 불리라고 사실상 압박하는 행태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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