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도요물떼새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는 철새의 천국. 서해의 대표적 갯벌로 국내 13번째로 람사르 습지에 지정될 만큼 천혜의 모습의 간직한 곳. 면적 0.77㎢에 해안선 길이는 4.2㎞에 불과한 작은 섬. 

현재 57가구 9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의 유부도 얘기다. 법도 없이 살아갈 만한 이 작은 섬을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20년 만에 다시 찾았다. 1997년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진이 못다 푼 어두운 과거의 숨겨진 비밀을 풀기 위해서다.

   
▲ 신안염전노예+도가니 사건 정항 수심원./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쳐

1990년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작은 섬의 끔찍한 이야기. 1992년 '인간의 조건-정신질환자 수유 실태 보고', 1997년 '잊힌 죽음의 섬-유부도 정신질환자 수용소'로 방송됐던 그 사건. 그리고 2016년 6월 18일 '그것이 알고 싶다'는 또 다시 그 섬의 이야기를 들춰낸다.

금강 하구에서 6.5㎞ 떨어진 동경 126°36′, 북위 35°48′에 위치 유부도. 지명은 임진왜란 때 피난을 온 부자의 얘기에서 유래됐다. 아버지가 살던 섬은 유부도. 그 북쪽에 위치한 아들이 살던 섬은 유자도라 이름 붙여졌다. 논은 없고 밭 0.04㎢, 임야 0.01㎢에 불과한 섬의 생계 수단은 어업과 염업이다.

뭍의 온갖 시끄러움을 등진 듯한 유부도. 그러나 1992년도 섬 속의 끔찍함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죽음의 섬, 지옥의 섬으로 불리워졌다. 아직도 씻겨내지 못한 생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은 그 악몽의 시간을 대변해 주고 있다. 녹슬은 철책과 귀기서린 모습을 간직한 장항 수심원. 

혹자들은 말한다. 정신질환자의 수용시설이었던 장항 수심원 사건은 '신안염전노예사건'과 영화 '도가니'의 소재가 된 '광주인화학교사건'을 합쳐 놓은 그야말로 친 참혹한 인권유린의 종합세트라고. 알려진 내용들만 봐도 끔찍하다. 성폭행, 납치, 성추행, 감금, 강제노역, 그리고 숨져간 사람들.   

1997년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후 한 달 만에 보건복지부가 시설 폐쇄 명령을 내릴 만큼 세상을 경악케 한 사건. 다시 수용된 이들은 5.18 광주 폭동당시 시민군 출신으로 납치되어 수용된 K씨와 전직 경찰관, 서울대법대를 졸업한 조울증 환자 등 다양하다. 당시 120명의 원생 중 40명은 퇴원을 해도 무방한 환자였다. 19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들을 찾아 나섰다. 수심원의 생명부에 기록된 75명을 대상으로 추적에 나선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한다. 16명의 원생은 자살, 폭행 후유증 등으로 세상을 등졌고 27명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간신히 만난 이들도 시설은 전전하는 등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했다.

19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수심의 족쇄에 채워진 채 악몽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털어 놓는 이야기는 미처 밝히지 못했던 고해성사였다. 암매장된 여성원생, 낮에는 염전노예로 밤에는 폭행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로, 성폭행과 성추행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살았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분노였다. 

   
▲ 신안염전노예+도가니 사건 정항 수심원./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쳐

그렇다면 원장과 그 직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의사 간호사는 10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사장은 N씨, 원장은 P였다. 1986년 최판이라는 염전 업자가 세웠으며 그는 그해 사망한다. 이때부터 수심원 염전 경영권을 P원장이 물려 받았다. 지옥의 섬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수심원 폐쇄 후 원생 33명은 이사장 N씨와 원장은 P씨 등을 특수감금 특수강도 상해치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측은 특수감금 특수강도 부분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았고 이권단체들이 주장한 암매장 의혹, 성폭행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법원은 노역비 착취, 국고보조금 황령으로 이사장 N씨에게 징역 3년형만 선고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인간의 최소한의 조건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장항 수심원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권실태를 다시금 짚어 본다. 

불행하게도 방송에 앞서 지난 16일에는 중증장애인을 상습적으로 학대해온 '남원판 도가니' 사건이 터졌다. '남원판 도가니'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5년간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인권실태조사와 행정편의주의 형태의 조치로 인해 시설 이용자 31명 중 23명이 폭행에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우리사회의 인권 사각지대는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 신안 염전 노예 사건, 광주 인화학교 사건, 장항 수심원 사건에 이은 남원판 도가니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 우리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