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뿌리 20년 역사…국민 지지 안중에 없는 고질병 구태
   
▲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2012년 10월에 창당한 정의당은 얼핏 드는 생각만큼 그렇게 역사가 짧지 않다. 그해 부정경선 사태로 갈라져 나오기 전까지 통합진보당과 한 몸이던 정의당은 해산된 통진당과 노동당 등 대다수 소위 진보정당과 함께 2000년 1월 창당한 민주노동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1997년 대선 때 권영길 후보를 낸 국민승리21을 모태로 하고 있으니, 정의당의 역사도 따지고 보면 20여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의 정당역사와 비교한다면 시간이 그에 미치지 못하지만 소위 진보정당의 역사도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미천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정의당의 현실은 두 정당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보수정당의 불분명한 정체성을 비판하곤 하지만 정의당 역시 소수 약자를 위한 정치, 진보정치라는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인 개념과 이념만 앞세울 뿐 구체적으로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지 막연한 느낌뿐이다.

정의당의 미약한 존재감은 그들 스스로 만든 것이다. 양당이 정치를 독점한다고 우리 정치현실 탓만 하기에는 정의당이 그동안 보여준 정치의 수준이나 결과물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고 기대에도 턱없이 모자랐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국민의 주목을 받았던 것들은 경선 부정 사태나 종북 논란, 권력을 나눠먹기 위한 야권연대와 같은 것들이었다.

정의당이 20대 총선에서 받은 정당득표율 7.23%는 그런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의 냉정한 평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의당이 얻은 지역구 2석도 그나마 노회찬 의원 지역구는 정의당의 온전한 힘이라기보다 야권단일후보로 더민주당 쪽의 도움을 받아 당선됐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이 거대 양당 정치에 오랜 염증을 느끼고도 정의당 대신 급하게 허겁지겁 만든 국민의당을 압도적으로 선택한 이유를 정의당은 진지한 고민이라도 한번 해봤는지 궁금하다.

   
▲ 20대 국회를 농성부터 시작한 정의당. 사진은 국회 외통위에 배정된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15일 오후 국회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로의 상임위 재배정을 요청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대 국회 시작부터 농성하는 정의당

정의당이 대중정당의 모습이라기보다 그들만의 정치세력으로 남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생떼쓰기를 소수정당의 당연한 권한처럼 여기는 오만함도 한몫을 한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자신이 지원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니라 외교통일위원회에 배정받았다고 며칠 째 농성하고 있는 추혜선 의원을 포함해서 정의당의 태도는 성숙한 민주정당의 태도로는 도무지 봐주기가 어렵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나 전문성을 살려 상임위를 배정해야 한다는 원론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 전문성과 상관없이 엉뚱한 상임위로 배정받은 게 어디 정의당 의원들뿐인가. 일부 언론은 정의당이 국회에서 힘이 없는 소수정당이기 때문에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국민의당의 배분협의에서 소외되고 배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은 정당 위주로 국회가 돌아가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국회가 무슨 목소리 큰 쪽이 이기는 시민단체들이 모인 농성장인 줄 아나.

상대적으로 국민의 지지가 크게 떨어지는 정의당이 자신들은 모두 원하는 상임위를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생떼나 마찬가지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국민의당 안에도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생뚱맞은 상임위에 배치된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대책 없는 항의나 농성이 아니라 당내에서 서로 양보하고 논의해 바꾸는 방법을 택했다.

예컨대 새누리당에서는 경제통인데도 엉뚱하게 외통위로 배정됐던 김종석 의원을 정무위로 보내고 보건전문가인 김승희 의원을 안행위에서 복지위로 재배치했다. 더민주당도 유은혜 의원은 처음 배정됐던 여성가족위에서 사임하고 박경미 의원이 보임했고, 이언주 의원은 윤리특별위에서 사임하고 전혜숙 의원이 보임했다고 한다.

국민의당도 천정배 의원과 김동철 의원이 상임위를 맞바꿨다. 재배치로 한숨 돌린 의원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자신의 전문분야도 아니고 원치 않았던 상임위에 배치됐지만 그냥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의원들은 아마도 더 많을 것이다. 상임위를 재배치하는 과정에서도 누군가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생떼 버릇 정의당 고쳐야 한다

비례대표 전문성을 따지든 선수를 따지든 모두가 100%로 만족하는 결과란 있을 수가 없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상임위로 가야 한다는 명분이 아무리 옳아도 그건 추 의원이나 정의당 의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정당 소속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왜 정의당 의원은 모두 원하는 상임위로 가야 하나"는 우상호 원내대표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백번 옳다.

정의당 의원 한 명 원하는 상임위에 보내주려고 전체 정수를 조정하는 것이 과연 민주적인 일인가. 정의당이 이 문제를 끝까지 고집하는 것은 지나치게 오만한 일이다. 정의당은 툭하면 소수정당 처지를 무슨 완장이라도 되는 양 생떼를 부리거나 다른 정당의 양보를 강요해왔다.

이제 그런 버릇은 고칠 때도 됐다. 이번 일이 불만스럽더라도 국회운영 원칙을 존중하고 따르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의당 역사가 짧지 않다는 건 이미 필자가 지적했다. 정의당이 언제까지나 나이만 먹은 유치한 어른과 같은 정당이어선 곤란하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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