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나라마다 시장 달라…맹목적 선진국 따라하기 경제 더 어렵게 해
   
▲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명령으로 안 되는 경제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니 동반성장이니 하며 온갖 법으로 기업과 국민들의 행동을 바로잡아 한국 경제를 개혁한다고 경쟁적으로 규제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접근은 자칫하면 경제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기 쉽다. 경제란 명령으로는 안 되는 복잡한 생물(生物)과 같기 때문이다.

현실의 시장경제는 개인이나 기업들이 경제주체로서 주어진 시장 경기규칙하에서 성공을 위해 경기를 벌이는 곳이다. 경기규칙을 어기면 퇴장당하기 때문에 규칙에 따라 경기 주체들의 행동이 달라지고 나아가 경기 결과, 즉 경제 성과도 달라지게 된다. 경제학은 이런 경기규칙을 경제제도라 정의하는데 이 제도가 바로 경제 내의 인센티브 구조를 결정하게 된다. 

그런데 경제제도에는 우선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 공유하고 지켜야 하는 문화, 관습, 가치관, 정서, 이념 등 비공식적 규칙이 있으며, 그다음으로는 이들 비공식적 제도를 바탕으로 국회나 정부에서 만들어내는 헌법, 법령, 규칙 등 공식적 규칙이 있다.

그런데 이들 규칙은 서로 따르고 엄격히 집행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제도의 집행 정도가 제도의 성패를 결정하는 제3의 제도가 된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경우는 제도가 한국 현실에 맞지 않아 잘못된 경우도 있지만 집행이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들 3자의 집합을 시장경제를 규정하는 제도라 한다.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현실의 시장은 국적이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문화적 측면의 비공식적 규칙이 나라마다 다른 것은 물론이고 공식적 규칙은 그 사회가 선택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발로 차는 축구와 미국인이 선호하는 손으로 들고 뛰는 미식축구가 서로 다른 것은 경기규칙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 것과 같이, 서로 다른 시장제도 속의 한국의 시장경제와 미국의 시장경제는 다른 것이다.

   
▲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니 동반성장이니 하며 온갖 법으로 기업과 국민들의 행동을 바로잡아 한국 경제를 개혁한다고 경쟁적으로 규제법을 만들어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경제의 성과는 특정 경제제도하에서 경제주체들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열하게 벌이는 경기의 최종 결과로 나타난다. 경제제도는 경제의 성과를 높일 수도 있지만 경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얼마나 부의 창출에 유리한 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경제적으로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개인과 기업의 재산권 보호나 경제적 자유의 보장 등, 부의 창출과 축적에 도움이 되는 제도는 부국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반대로 부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개인과 성장하는 기업들에 불리한 제도는 빈국을 만들기 쉽다. 

스스로 돕는 자를 우대하는 제도는 자조하는 국민을, 역으로 자조하지 않는 자를 우대하는 제도는 가난한 국민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 작은 기업만을 우대하는 제도는 중소기업 천국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성장하는 기업을 우대하는 제도는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현실 경제 속의 각 경제주체는 경제제도, 즉 유인 구조가 달라지면 그 행동을 조정하려 노력하지만 새로운 제도가 너무 지키기 어렵고 세상 이치에 안 맞으면 온갖 방법으로 회피하는 길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런 회피에 들어가는 노력이나 비용은 경제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한다. 모든 경제행위에는 반드시 이를 초래하는 제도적 원인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제대로 살펴 조정비용이 과다하지 않도록 치유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입법 관행은 특정 결과를 초래하는 우리의 문화, 전통이나 이념, 그리고 기존의 법제도, 정부의 규제 행태 등 현실은 무시한 채 좋다는 선진국의 제도를 새로 도입하면 우리 경제도 선진국이 되리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왜 미국 기업들은 공을 들고 달리는데, 한국 기업들은 어렵게 발로 차는지 모르겠다며 한국 기업들을 비판하는 일도 쉽게 목격된다. 특정 행위의 제도적 원인을 찾아 고치려 하기보다는 그 위에다 무조건 선진국처럼 하라고 명령하고 규제하면 된다는 규범적, 도덕적, 정치적 발상은 오히려 국민이나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조정비용을 초래하여, 경제를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 정치권의 입법 관행은 특정 결과를 초래하는 우리의 문화, 전통이나 이념, 그리고 기존의 법제도, 정부의 규제 행태 등 현실은 무시한 채 좋다는 선진국의 제도를 새로 도입하면 우리 경제도 선진국이 되리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사진=미디어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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