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돈을 잃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싫다는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CIO·사진). 그는 한국 가치투자의 대명사로 동원증권에 입사해 1998년 ‘밸류이채원펀드’ 라는 이름의 가치투자펀드를 국내 처음으로 개발해 시장에 내놓은 사람이다.

가치투자는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종목을 헐값에 사뒀다가 가격이 회복되면 제 값을 받고 처분하는 투자 전략이다. 그가 이처럼 가치투자에 빠진 것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운용하던 펀드가 40%넘게 폭락하면서 부터다. ‘두 번 다시 손실을 보지 않겠다’는 각오로 가치투자에 심취하게 된 것이다.

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장기투자는 가치투자에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때문에 2006년 4월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으로 독립해 내놓은 한국밸류10년투자펀드의 광고문구는 ‘10년 투자 고객을 찾습니다’였다. 제로인에 따르면 이 펀드의 설정이후 수익률은 이달 20일 기준 148.16%에 달한다.

그의 업계에서의 영향력은 최웅필 KB자산운용 상무 등 이른바 ‘이채원 키즈’를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지난 4월에는 이 부사장은 장기투자 고객을 초정해 행사를 치렀다. 이 행사에서 이 부사장이 선언한 것은 “고객 돈 잃을 때가 가장 힘들다”며 “향후 10년도 위험에서 도망치며 살겠다”였다. 화장품·바이오·무인차·가상현실 등 유망 신성장 기업의 주가가 아무리 오르더라도 가치투자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강도를 만나더라도 보유 현금의 70%는 건질 수 있도록 항상 현금과 카드를 3개의 지갑에 나눠 들고다닌다”며 소심한 성격의 극치를 보였다.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자신 있게 지칭한다. 이 부사장은 운전면허도 없고 골프도 치지 않는다. 등산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직 어떻게 하면 잃지 않는 투자를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연구한다.

이 부사장은 평소 여러 인터뷰를 통해 “고스톱보다는 포커가 자신에 맞는다”고 말했다. 상대가 ‘고’를 부르면 위험이 무한정 늘어나는 포코보다는 죽으면 되는 포커가 훨씬 위험을 관리하기 쉽다는 게 소심한 성격의 그다운 이유다.

하지만 이런 이 부사장도 포커를 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전언이다. 매우 공격적이고 심지어 ‘몰빵’ 베팅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 하루는 함께 포커를 치던 박래신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사장이 이 부사장에 “펀드를 운용할 때와 달리 어떻게 이렇게 과감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부사장의 답변은 “포커는 내 돈으로 치는 것이고 펀드는 고객의 돈을 받아서 하는 것”이었다.

박 사장은 “고객 자산을 향한 그의 소심함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던 답변이었다”며 “고객들이 ‘이 부사장이 죽으면 펀드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걱정하는 이유가 다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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