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부채위험수위, 재정분권과 파산제 도입 시급

   
▲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국가채무와 공공기관 부채를 합쳐 나라 빚 1000조원 시대에 접어들었다. 빚이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 재정에 대한 경고의 강도도 해마다 높아진다. 그러나 국민입장에서는 나라살림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 써 보지 않은 엄청난 금액을 적어가며 국민 한 사람에게 할당될 빚을 계산했다. 1000조원을 5000만 인구로 나누니 국민 1인당 짊어져야 할 국가 빚이 2000만 원이다. 4인 가구는 800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빚을 떠안고 사는 셈이다.

국가 빚뿐만 아니라 지방재정 문제도 수면위로 떠올랐다. 손님 없이 굴러가는 경전철, 예상수요에 한참 못 미치는 터널-다리 이용률, 사업 중단 고비를 수차례 넘긴 무상보육, 지방공기업 부채 증가 등 지역살림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방재정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도 많이 들린다. 하지만 과연 지자체 주민들에게 그 심각성이 얼마만큼이나 전해졌는지는 의문이다. 지자체 빚도 지역민 1인당 부담액이 얼마인지 말해주면 어떨까.

지자체 몇 곳의 홈페이지에 해당 ‘지역민 1인당 빚’을 보여주고는 있다. 그러나 지자체 빚을 단순히 지방채의 잔액으로 간주해, 1인당 빚을 [지방채무액÷인구수]로 계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만큼 지자체 빚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지자체 빚은 지방채와 지방공기업 부채, 민자사업 재정부담금을 합산해야 한다. 필자가 바른사회시민회의 보고서를 통해 지역민 1인당 빚을 계산해본 결과, 광역단체 중에선 인천시가 388만원으로 가장 높고 서울시가 253만원으로 두 번째를 기록했다. 기초단체는 강원 태백시가 748만원, 경기 하남시가 299만원, 김포시가 230만원 순으로 나왔다.

지자체가 무작정 빌려다 쓴 돈은 지역민이 갚아야할 빚으로 남는다. 태백시에서 태어나는 아이 한 명은 출생순간 748만원 빚을 떠안고, 인천시 가구는 가구 연소득의 거의 절반을 빚 탕감에 써야 하는 꼴이다. 지역살림이 이정도 수준이라면 일부 지자체는 이미 ‘지자체 파산’의 길로 들어섰다고 봐야한다.

   
▲ 지방정부의 무문별한 민자사업과 호화청사, 과당 지역축제사업등이 지자체의 빚을 위험수위로 몰아가고 있다. 용인시민들이 전현직 용인시장등을 대상으로 1조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지방재정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익히 알려진 호화청사 신축, 지역축제 외에도 많다. 인천시의 아시안게임처럼 무리하게 추진된 세계대회, 거가대교나 대구와 광주의 순환도로와 같이 지자체가 해마다 수백 억 원씩을 보전해야하는 민자사업들은 지방재정을 적자수렁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 있다. 환호 속에 추진된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사업이 허울만 남기고 결국 지자체의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특히 지방공기업은 지자체장의 지역개발 공약 실천에 우회적 도구로 이용되는 실정이다.

그러니 재정위기를 불러온 사업을 추진했던 전직 지자체장이나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집단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해 10월 용인시민들이 전-현직 시장과 공무원, 수요예측을 부풀린 연구원 등을 대상으로 1조 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일명 선심성-한탕주의 ‘먹튀’에 대한 책임을 관련자들에게 묻는 것이다. 이 소송이 지자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선심-공약사업들에 대해 ‘경고성 도미노’현상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때마침 지자체 파산제 도입이 공론화되고 있다. 민선 지방선거를 실시했던 김영삼정부 때도,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도 거론됐지만 번번이 찬반양론으로 갈려 떠들다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지방재정 위기가 벼랑 끝에 다다르니 다시 주목을 받는 듯하다.

지자체 파산제는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한 지자체에 대해 예산편성권이나 자치권 등을 박탈하는 제도다. 용인시의 주민소송처럼 지방재정에 ‘책임’을 지우자는 취지다. 지자체장의 선심잔치도, 중앙정부가 지방의 빈 곳간 채워주기도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자체 파산제 도입은 지역살림을 되살리기 위한 시급한 처방전이다.

‘책임’과 붙어 다니는 것이 바로 ‘권한’이다. 그렇다면 지방재정의 ‘권한’에 해당하는 ‘재정분권’도 이참에 확실히 실현돼야 한다. 세입과 세출 분권을 지자체가 가져야 한다. 안타깝게도 무상보육이나 기초연금처럼 중앙에서 일률적으로 결정하는 복지정책이 지자체 재정위기의 ‘핑계거리’가 되고 있다. 진정한 재정분권으로 가려면 각 지자체의 입지와 살림형편에 맞는 복지로 가야한다. 지방선거에서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듯이 복지정책도 버텀업(Bottom Up)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한국의 자치제는 ‘정치적 자치’는 이뤘으나 ‘경제적 자치’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자체 파산제와 재정분권의 달성여부가 경제적 자치 성공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국가와 지자체의 빚더미는 다름 아닌 국민과 지역민이 부담해야 할 빚 청구서다. 지금이라도 청구서 금액을 솔직하게 밝히고 회생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확실한 ‘권한’인 재정분권과 ‘책임’인 파산제 도입이 병행돼야 한다.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지방재정을 구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