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벤츠 여검사, 진경준 넥슨 주식 파문, 정운호 게이트. 뿌리 깊은 법조비리다. 검(檢)이 검(劍)을 들었으니 그 앞에선 웬만한 강심장이라도 고개부터 수그러든다. 하지만 검(劍)을 든 검(檢)도 상사 앞에서는 검(劍)이 무용지물이다. 검(檢)도 검(劍)도 숱한 구설에 오르는 이유 중 하나인 전관예우는 이런 문화 속에서 싹튼다.

지난달 19일 군법무관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4월 서울남부지검에 부임한 김 모(33) 검사가 서울 목동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돌아오는 장기 사건들이 목을 조인다.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하루 종일 앉아서 보고 있어도 사건은 늘어만 간다. 물건을 팔지 못하는 영업 사원들의 심정이 이렇겠지.”라며 힘겨운 심경을 토로했다.

김 검사의 아버지는 최근 청와대와 대검찰청에 아들의 죽음이 직속상사의 일상적인 폭언과 인격모독이 있었다며 "부장검사가 아들의 죽음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니 조사를 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김 검사의 지인들은 생전 그와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를 유족에게 전달하면서 의혹은 불거졌다. 개인적 문제로 치부됐던 김 검사의 죽음이 상사 언어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으로 비화됐다.

   
▲ 임은정 검사가 후배 검사의 죽음에 자신도 "꽃뱀" 폭언까지 들었다면 후배의 허무한 죽음에 합당한 문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임은정 검사 페이스북 캡쳐.

상사의 괴롭힘으로 추정되는 검사의 자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부산지검 박 모(당시 30살) 검사는 1993년 10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에는 대전지검 허아무개(당시 34살) 검사가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두 사건 모두 상사한테서 받은 인간적 모멸감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 검사가 생전 지인들과 주고받은 메시지에는 "부장검사에게 매일 욕을 먹으니 자살 충동이 든다." "보고 때면 결재판으로 찌르고 수시로 폭언을 한다." "동료 결혼식장에서 술 먹을 방을 구하라고 다그쳐 어렵다고 했더니 피로연 끝나고까지 욕설을 했다." 등 부당하고 힘듦을 토로한 내용이다. 이를 토대로 탄원서를 낸 김 검사의 아버지는 "한 점 의혹 없는 조사가 이뤄져 아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상명하복이 필요한 직업이다. 하지만 업무 시간 이외의 폭언과 '갑질'은 문제다. 김 검사의 죽음과 관련해 27일 의정부지검 임은정(42·여) 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폭로했다. 임 검사는 "문제 간부들의 행동에 힘겨워하는 후배들에게 들이받으라고 권하면서도 꼭 한 마디 덧붙인다. '그런데 너도 다칠 각오하라'고." 검찰 내부의 부당함에 저항하기 힘듦을 토로한 것이다. 
또 임 검사는 자신도 “스폰서 달고 질펀하게 놀던 간부가 나를 부장에게 꼬리 치다가 뒤통수를 치는 꽃뱀 같은 여검사라고 욕해 10여 년 전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며 고질화된 폭언과 인신공격적 발언을 폭로했다. 

임은정 검사는 "남부지검에서 연판장 돌려야 하는 거 아니냐, 평검사회의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말들이 떠돌다 사그라졌다. 말리지 못한 죄로 동료들 역시 죄인이라 누구 탓을 할 염치도 없으니까"라고 적으면서도 "검찰의 눈부신 내일이었을 참 좋은 후배의 허무한 죽음에 합당한 문책을 기대한다"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희망했다.

상사의 폭언이 김 검사를 자살로 몰아갔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인권을 다루는 검찰이 조직의 생리와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폭언과 권한을 이용해 인권을 무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살 충동'으로까지 내모는 지나친 상명하복의 문화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한번 상사면 영원한 상사라는 빗나간 문화가 전관예우의 뿌리 깊은 사슬을 끊지 못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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