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학자들, 삼성과 소니의 명암, 더이상 지배구조 탓하지 말라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 1990년대 초,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접한 소니의 브랜드 파워는 대단했다. 소니는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음’을 의미하는 경박단소(輕薄短小) 트렌드를 선도하는 ‘주식회사 일본’의 선두주자였다. 소니의 트리니트론(Trinitron) TV는 값이 비싸도 인기 만발이었다. 유학생은 제법 여유 있어야 소니를 살 수 있었는데 이들은 TV 귀퉁이에 얌전히 붙어 있는 광고 스티커-‘It’s a Sony’를 떼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왜냐하면 광고 카피 그대로, 소니이니까….

#2: 90년대 중반, 일본 경제는 자산 가격의 거품이 꺼지며 서서히 질곡의 길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니와 토요타 같은 일본 기업은 여전히 세계시장을 주름잡았다. 1994년도 글로벌 500대기업을 보면 일본이 149개, 미국이 151개였다. 역전은 시간문제인 듯 했다. 미국이 초조해졌다. 이에 미국민은 일본 제품이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를 외쳤다. 디트로이트에서는 토요타 자동차를 불태우고, 어떤 소비자는 TV 인터뷰에서 소니와 파나소닉 같은 일본 제품을 사지 않으려 내쇼날 제품을 샀다고 자랑했다. 어? 내쇼날, 그것도 일본산인데….

   
▲ 90년대까지 일본의 경쟁력을 상징했던 소니가 투기등급으로 추락했다. 소니가 욱일승천할 때 한국의 좌파학자들은 소니는 전문경영인체제여서 잘 나가는 반면, 오너경영체제의 삼성전자는 코리아디스카운트로 인해 시가총액이 소니에 뒤진다고 지적했다. 이제 삼성전자는 세계최고의 전자업체로 성장했고, 시가총액도 소니의 10배로 급증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좌파학자들은 90년대식 전문경영인체제 담론으로 장사하고 있다. 지배구조문제에 대해 이제 제대로 된 인식을 해야한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갤럭시 S4 LTE-A' 16GB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3: 90년대 말, 한국은 외환위기의 시련에 봉착한다. 이 때 재벌개혁론이 힘을 얻고, 특히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게 재벌문제의 핵심이라는 주장이 퍼져나갔다. 당시에 필자도 정책토론에 많이 나가야 했는데, 자주 듣는 반대 요지는 이러했다. ‘일본에도 기업집단이 있지만 거기는 지배주주가 없기 때문에 우리와 달리 문제가 없고 오히려 좋은 것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소니의 약 1/4에 불과한 것은 소유와 경영의 비분리(지배주주의 존재)에서 비롯된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때문이다!’ 어? 기업지배구조 논의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문제의 해법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으로 봐야 하는데,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다니….

#4: 2002년, 필자는 미국에서 장기 체류할 일이 생겨서 TV, VTR 등의 전자제품을 장만하러 전문 매장에 들렀다. 이참에 유학생시절에 엄두를 못 냈던 ‘It’s a Sony’를 살 욕심이었는데, 친절한 매장 직원이 다가와 소니와 비교하며 삼성제품을 적극 권한다. 가격이 아니라 기술과 디자인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소니는 과거의 영광을 지키려 완강하게 애쓰고 있지만 시장은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해,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드디어 소니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5: 10여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지난 1월 27일, 급기야 소니의 몰락이 선언되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에서 소니를 ‘투기 등급’으로 강등한 것이다. 소니는 이미 작년 말에 또 다른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에서 ‘투자 부적격’ 판정을 받은 터라 예견은 했던 일이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기술과 제품력, 고객 충성도의 제반 측면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듯 하던 소니 왕국이 채 15년이 안되어 이렇게까지 몰락하는 것을 보면, 글로벌 기업으로 존속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시장의 무정(無情)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게 소니에서 끝날 일은 아닐 게다. 그 이전에 코닥이 있었고, 앞으로도 제2의 코닥, 제2의 소니 사례가 속출할 것이다. 그 중에 한국기업들은 포함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6: 이제 와서 소니 몰락의 원인을 두고 많은 이들이 아는 체 한다. 소니는 자신이 일군 최고의 아날로그 기술력에 취해서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대처하지 못했다(hubris 가설), 그리고 길게 보고 과감히 투자를 하기 보다는 당장의 매출과 이익에 급급한 전문경영인 체제의 속성(근시안적 경영행태)- 즉 소니의 지배구조가 문제였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외환위기 전후에 삼성전자와 소니의 시가총액 차이는 코리아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때문이라 하던 그 주장은 무엇인가? 지금도 주변을 돌아보면 상황이 천지개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는‘90년대 말 담론의 연장선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차제에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논의구조를 사실에 기초해서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다.

p.s) 무디스에서 발표가 있고 난 이틀 뒤(1/29) 시가총액을 보면, 삼성전자는 1,744억 달러, 소니는 176억 달러였다. 약 10배의 차이가 난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