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내놨던 증권사들의 올해 코스피 전망치가 불과 한 달만에 수정되면서 투자자들의 증권사 전망에 대한 불신이 한층 높아졌다.

증권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항변'하지만 최근 국내 증권사의 기업분석 능력이 전세계 꼴찌수준이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와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을 면치 어렵게 됐다 .

다행히 최근에는 소신있게 매도 의견을 내겠다는 리서치 센터가 나오는 등 증권가도 반성하고 변모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 지난 4일 미국발 경기둔화 공포와 신흥국 금융 불안 여파로 코스피 1900선이 5개월 만에 무너졌다./뉴시스

◇ '장밋빛 전망 한 달만에 수정'...투자자 신뢰 붕괴

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상당수 증권사들이 지난해 말 제시한 코스피 예상 밴드를 최근들어 속속 수정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올해 코스피 예상 밴드를 기존 1,850~2,320포인트에서 1,800~2,200포인트로 하향 조정했다. 2014년 추정 주당순이익(EPS) 경로가 어긋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올해 연말 코스피 전망치를 기존 2,250포인트에서 2,150포인트로 낮췄고 교보증권도 2월 코스피가 1,880~1,990포인트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말 국내 증권사들은 올해 증시가 활황을 띌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내놨지만 실제 코스피 지수는 연초부터 1,900선을 이탈하는 등 큰폭의 하락세를 연출하며 증권사들의 예상 경로를 벗어났다.

외부적으로는 아르헨티나에서 촉발된 신흥국 금융불안, 미국 및 중국의 경기 둔화, 미국의 양적완화 추가 축소 등 여러 악재가 겹친 데 따른 것이지만 무엇보다 지난해 4분기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시장 예상치를 벗어난데 따른 것이다. 

한국투자증권 노근환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기업이익이 예상보다 나쁘게 나오면서 애널리스트들의 추정치는 크게 하향 조정되고 있다"며 "2014년 톱다운분석을 통한 기업이익 전망치도 95조원에서 90조원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추가적인 코스피 예상밴드 조정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경제가 예상외로 리버스 로테이션(주식보다 채권을 선호하는 현상) 상황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교보증권 김형렬 연구원은 "2월 증시는 악화된 투자환경의 안정 및 개선 여부에 따라 단기 방향성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펀더멘탈(경제기초), 모멘텀(상승 동력) 약화가 극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근거가 부족해 추가적으로 하방 위험을 겪어야 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증권사 기업기익 전망 정확도 사실상 '최하위'

증권사 전망이 빗나가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투자자들의 불신도 최고조다. 전체적인 코스피 예상 밴드 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 실적 전망도 크게 어긋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내 증권사들의 기업이익 추정치 정확도가 전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6일 신한금융투자와 캐나다 금융정보업체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지난 1월말 기준 주요 45개국의 기업이익 추정치 정확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81%로 전체 36위에 그쳤다.

정확도가 가장 높은 곳은 '일본'으로 113%였고, 이어 중국(102%), 아르헨티나(102%), 러시아(100%), 홍콩(100%), 호주(99%), 대만(98%), 덴마크(97%), 터키(97%), 미국(97%) 순으로 정확도가 높았다.

하지만 한국은 심각했다. 전체 45개국의 평균 정확도(93%) 보다도 낮은 수준이었고 한국보다 정확도가 낮은 국가도 4개국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41개 국가 가운데 거의 '꼴찌'인 셈이다.

실제로 최근 4분기 실적을 발표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추정치와 실제치의 괴리율이 커져 '어닝쇼크'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가 시장 예상치인 영업이익 9조원대를 크게 밑돈 8조3,000억원을 기록했고, 호텔신라와 LG상사, 대한항공, 제일기획, 삼성엔지니어링 등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 "소신있게 매도 의견 내겠다"...증권가 변화의 바람에 '기대'

이같은 참극이 빚어지는 것은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모두 양심 불량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업에 불리한 보고서를 내면 해당 기업에게 탐방을 거부당하고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원성을 사는 현실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매도 의견을 냈다가 해당 기업에서 보복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회사채 부문에서 곧바로 항의가 들어온다"며 "또 개인투자자들도 원성이 빗발친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그러나 이같은 논리는 증권사에 대한 투자자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에 불과해 변명일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외국의 경우 한 기업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분석이 제시되면서 비슷한 전망치로 수렴해 나간다"며 "국내 증권사들의 기업분석 능력이 지금보다 강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소신껏 '매도'의견을 내겠다고 공언하는 증권사가 나오는 등 변화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애널리스트는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산업과 기업에 대한 소신 있는 의견이 곧 리서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5일 "최근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땅으로 추락했다"며 "'뻥튀기 실적 산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리서치를 못 믿겠다는 것인데 우리부터 많이 반성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미디어펜=장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