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S아파트에서 3년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K(68)씨는 요즘 불안에 밤잠도 설치고 있다. 24시간 교대로 몸은 파김치지만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노동계와 정부의 줄다리기에 눈을 뗄 수 없다.

지난해 처음으로 경비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되면서 '대량해고'의 아픈 악몽이 떠올랐다. 하나 둘 떠나는 동료들에게는 남아 있는 자신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이젠 동료의 아픔이 이제는 K씨 본인의 몫이 됐다.

K씨가 일하는 곳과 맞붙어 있는 또 다른 아파트의 경우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부분의 경비원이 떠나고 최소 인력만이 남아 교통출입만을 통제하고 있다. 그나마 K씨가 일하고 있는 아파트는 지은 지 20년 가까이 돼 전면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에는 어려움이 있어 전원 해고는 면할 수 있다는 작은 기대감은 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와 동대표들은 일부 도입, 내지는 관리비를 문제로 들어 회의 때마다 경비원 감원 논의를 하고 있다. 비단 K씨가 일하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전국의 아파트가 비슷한 실태다. 최저임금 인상폭이 커지는 게 이들에게는 생계를 빼앗는 역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해고를 면한다고 해도 열악한 근무 환경은 더욱 나빠질 것이 뻔하다.

   
▲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며 뜻대로 관철되지 않을 경우 최저임금위원회를 탈퇴하겠다며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켜 결국 고용 감소와 실업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기득권 노조가 진정 근로자를 위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0~12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서울 25개 구 아파트 단지 내 경비원 455명에게 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비원 근무 형태의 경우 격일제 24시간 교대제가 96.6%를 차지했다. 주 업무인 방범과 안전점검에 투입되는 시간은 근무시간의 28.6%뿐이었고 택배 관리(20.2%), 주변 청소(19.3%), 주차 관리(16.3%), 분리수거(16.2%) 등 부가 업무에 나머지 시간들을 차지했다.

보장된 휴식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휴게 시간에 근무지 밖에서 자유롭게 쉰다고 응답한 경비원은 고작 9.1%였고 근무지 안에 머물면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대처한다는 응답자는 63.5%나 됐다. 휴게 공간이 없어 근무 초소에서 휴식을 취한다는 이도 57.8%였다.

경비원 같은 '감시단속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였다.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해고' 공포와 함께 찾아오는 건 열악해지는 노동환경이었다. 인건비 상승 부담을 경비원 구조조정으로 해결하면서 휴게시간은 줄어들고 근무시간을 되레 늘어났다.

불합리에도 말 한마디 못하는 건 경비원 대부분이 용역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직이기 때문이다. 2012년 노원노동복지센터가 노원구 아파트 경비원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79.1%가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었고 94.6%는 단기계약직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불만은 곧 해고로 이어지는 구조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것만이 내수를 살리고 경제를 활성화 하는 유일한 정책수단"이라며 무리한 조정을 요구한다면 최저임금위원회를 탈퇴하겠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사용자측은 한국노총과 민노총이 요구하는 안대로 최저임금을 인상할 경우 기업 경영난 가중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최고인금의 가파른 상승은 결국 근로자의 일자리를 뺏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며 기존 근로자들은 임금이 오르겠지만 기업 비용 증가로 고용 절벽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기존 근로자들의 파이가 커지는 대신 기업의 고용기피로 취업난은 더욱 가중될 것이고, 상대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비원 등 취약 근로자들은 해고의 위기로 내몰린다. 공짜는 없다. 누군가는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다. 기업의 고용 기피는 결국 취업준비생이나 실업자의 피해로 이어진다.

기득권 노조의 자기 밥 그릇 키우기는 결국 제도권 밖의 근로자나 취준생·실업자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두 얼굴이다. 더 나아가 한국노총이나 민노총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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