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때부터 시작…현재 관점에서 과거 질타 말아야
[미디어펜=이원우 기자]"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로 하시죠."

취재원의 부담을 덜어주는 한 마디다. 기자가 취재원에게 이 말 한 마디를 건네고 나면 취재원과의 대화는 훨씬 깊어진다. 취재원과의 관계도 '인간관계'다 보니 모든 걸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처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공개에는 비공개만의 힘이 있다. 훨씬 자유롭고 격식 없는 대화를 가능케 한다. 대화 내용이 전부 기록되는 상황에서, 또 그 기록이 언젠가 공개될 거란 사실을 알고서도 속마음을 전부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은 옳지만, 윗물의 수질관리에 너무 집착하다보면 아래로는 아예 물이 안 흐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지금 서별관회의가 공격대상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결과가 나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원만하게 처리됐다면 DJ정부에서 시작돼 참여정부에서 정례화된 서별관회의를 야당이 책잡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미디어펜


한국 경제에서 서별관회의의 위상도 '비공개'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다. '비공개라는 사실이 공개'돼 있는 기묘한 회의체다. 포털사이트에 '서별관회의'라는 검색어를 기입하면 '시사상식사전'이 서별관회의의 정의를 내려준다. 경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티타임 모임이다. 이와 비슷한 모임은 모든 것이 공개돼 있을 것만 같은 미국이나 영국에도 존재한다.

서별관회의에서 다뤄지는 안건의 내용과 형식은 철저한 비공개에 부쳐져 있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이 만난다는 정도만 알뿐 무슨 얘기를 어떻게 나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 보니 어떤 새로운 이슈가 생길 때마다 서별관회의는 음모론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나쁜 일은 전부 여기서 결정됐을 거라고 생각하는 습관도 생겨났다.

이번에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대우조선해양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5일 대우조선해양 분식 회계 사태와 관련 "분식 사기를 공모한 서별관회의에 대해 즉시 국정조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모월 모일 서별관회의에 모인 각 부처 경제계 수장들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내용을 알고도 그 징후를 애써 눈감고 4조 2000억 원 지원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회의체 자체를 공격하는 기이한 패턴이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은 조 단위의 액수가 거론되는 대형 이슈다.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만 해도 수 천 수 만 명에 달한다. 이렇게 커다란 문제를 100% 공개회의를 통해서만 처리한다면 수십 년이 걸려도 합의점은 도출되지 않는다. 서별관회의 같은 비공개 회의체가 논의를 진행시키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는 점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 서별관회의가 공격대상이 된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결과가 나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원만하게 처리됐다면 DJ정부에서 시작돼 참여정부에서 정례화된 서별관회의를 야당이 책잡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한 국책은행 고위관계자는 "지난 일을 얘기할 땐 모두가 현명해진다고 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얘기가 계속 떠오른다"고 말했다. 한국 조선업과 대우조선해양은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자랑이었다. 이렇게 힘든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현재의 결과를 다 알고서 과거를 그저 질타하기만 하는 건 공허한 일이다. 

물론 '책임'을 지는 것이 경제수장들의 역할이므로 서별관회의를 포함한 구조조정 과정 전반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비판을 할 수 있다. 이미 그 비판은 여러 각도를 통해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굳이 서별관회의에 대한 대안 없는 정치공세를 펼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결과가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해서 회의체 자체를 국정조사 해야 하는 거라면, 300명이 모여서도 좀처럼 대한민국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국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논리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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