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물수출 제한·자금세탁 우려국 지정 등 실무적 제재에 한계
김정은 등 15명·8개 기관 제재…행정명령 13722·13687호 근거
[미디어펜=한기호 기자]미국 정부가 6일(현지시간)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을 국제사회의 '인권범죄자'로 규정, 직접적인 제재 대상으로 올렸다. 주민 인권 유린 등을 근거로 제3국 정상을 직접 제재하는 사상 최초의 조치다.

제재 근거에 북한이 그동안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행한 무력도발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북한과 더는 대화할 생각이 없음을 천명한 셈이다.

또한 현 정부는 물론 내년 1월 출범할 차기 정부와 북한 간의 관계 파탄을 각오하고서라도 김정은 정권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지난 2월 미 의회를 통과한 북한제재강화법(HR 757)의 관련 조항은 국무장관이 인권유린과 내부검열에 책임있는 북한 인사들과 그 구체적 행위들을 파악해 120일 안에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특히 이 법 304조는 김정은과 국방위원회(6월29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폐지·현 국무위원회에 해당)와 노동당 간부들의 인권유린과 내부검열의 내용과 책임을 보고서에 구체적으로 기술할 것을 요구했다.

대북제재강화법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미 대통령이 인권제재 대상자를 지정하도록 했으나 그 내용과 시한은 못 박지 않아 김정은이 보고서 제출과 동시에 리스트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은 거의 없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지난 4월말 한 보도를 통해 북한 인권제재 명단에 김 위원장과 고위관리들은 포함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도 정치범수용소 운영 등에 관여한 관리 10여 명이 첫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이같은 예상을 깨고 김정은을 인권제재 대상에 올린 미 정부의 초강수는 외견상 북한의 억압적 인권실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 기인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연례 인권보고서에서 인신매매 방지활동과 관련해 북한을 14년 연속 최하 등급인 '3등급'으로 지정하면서 "8만~12만 명의 정치범이 수용소에 갇혀 있다"며 "강제노동은 체계화된 정치적 억압의 체계"라고 비판했다.

또 지난해 2월 발표된 '2014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도 미 국무부는 북한 인권을 '세계 최악'이라고 평가하면서 김정은의 권력강화를 위해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한 측근의 공개처형, 영아살해, 전기충격, 발가벗기기 등 잔학한 고문이 저질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도 "북한에서 이념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사법절차 없이 정치범수용소로 사라진다"며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처형·고문·성폭행·낙태가 저질러진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이번 조치에 대해 "핵, 미사일 실험과 인권은 별개이며 이번 제재는 북한의 인권상황만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 최고지도자를 인권범죄자로 낙인찍는 이번 조치는 '전략적 인내'를 넘어 실질적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북한 정권을 벼랑끝으로 몰기위한 압박조치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특히 북한이 지난달 22일 무수단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실험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올해 취해진 북한 광물자원 수출제재→자금세탁 우려대상국 지정 등의 실무적 제재로는 김정은 정권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에 대한 이번 제재는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제재와 소니영화사 해킹공격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제재의 연장선에 있다.

미 재무부는 이날 김정은을 비롯해 개인 15명과 8개 기관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발표하며 이번 제재가 미 대통령의 행정명령 13722호와 13687호에 의해 이뤄진다고 명시했다.

앞서 지난 3월16일 발동된 미 정부의 행정명령 13722호는 북한 정부와 노동당의 자산을 동결하고 북한과의 거래를 차단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북한 정권의 주요 수입원인 노동자 국외 송출행위를 금지하는 내용과 함께, 광물거래와 인권침해·사이버안보·검열·대북한 수출 및 투자 분야에 대한 포괄적 금지 조항(sectoral ban)도 담겼다.

이와 함께 제재의 근거가 된 행정명령 13687호는 2014년 말 발생한 북한의 소니영화사 해킹공격을 계기로 마련됐다. 구체적인 불법행위 관련 개인 또는 단체를 대상으로 했던 기존 대북제재와 달리 북한 정부와 노동당 관리, 산하 단체·기관으로까지 대상을 넓힌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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