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수호 의지 없는 웰빙집단 8월 전당대회 계기로 환골탈태를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이념적 합의가 깨졌다는 점이다. 헌법 제4조가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희미해졌고, 체제 수호에 필요한 정치사회적 힘이 남아있는가부터 걱정이다. 최악의 경우 북한보다 우리가 먼저 체제붕괴(regime collapse) 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집권여당 새누리의 혼란부터 참담하다. 리더십의 위기도 전례없지만 그들은‘이념적 백치집단’에 가깝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중도(中道)타령만 반복하는 저들을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야당도 마찬가지다. 전향을 하지 않은 운동권 출신이 50~70명이니 항상 여의도 정치가 출렁대고 제정신이 아니다. 사회 분위기도 그러한데 사드 배치 결정을 둘러싼 선동세력의 심상치 않은 위협이 ‘위험사회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이 상황에서 미디어펜은 ‘이념적 합의가 깨진 위험사회 대한민국을 묻는다’ 연작 칼럼 3회 분을 통해 이념문제에 대한 균형 잡힌 성찰을 진행한다.  [편집자 주]

이념적 합의가 깨진 위험사회 대한민국을 묻는다 연작 칼럼-<하>
                     
   
▲ 조우석 주필
'영혼없는 정당' 새누리의 전당대회(8월9일)를 앞두고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움직임이 어쩌면 그렇게 하나 같이 실망스러울까? 체제수호에는 관심 없고 입을 모아 중도(中道)타령을 반복하는 이 못난 집권여당에 대한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상식이지만 새누리의 혁신 없인 대한민국의 내일은 없다. 해산과 재창당만이 답일텐데, 실은 지난 총선 참패야말로 당 이름도 바꾸고 환골탈태를 하는 계기였어야 옳았다. 유감스럽게도 새누리에겐 그럴 변화의 동력마저도 바닥났다는 게 음울한 현실이다. 
 
그걸 새삼 보여줬던 게 친박 이정현-이주영에 이어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한 4선 의원 한선교이다. 냉정하게 말해 그는 '이념성향을 종잡을 수 없는 의원'이다. 기억하실 것이다. 두 달 전 이 지면에 소개했던 연세대 유석춘 교수팀이 작업한 실증적 논문 '19대 국회 의원입법 공동발의 네트워크 분석'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한선교는 국가안보나 경제회생 등 새누리의 중요법안에 대표발의-공동발의를 한 바 없었던 의원으로 나온다. 그것도 4년 의정활동 동안 단 한 번도 안했다. 때문에 무늬만 새누리인 그는 정치지향을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투명인간이다. 그를 두고 신문들은 보통 원조 친박으로 분류하던데, 그것도 의미없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박근혜 후보 대변인을 맡았다는 이력이란  계파적 정체성에 불과하다. 기억해둘 것은 친박이 아닌 유승민-이재오 등도 새누리 중요법안에 4년 내내 침묵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새누리 의원들에게 친박-비박이란 구분은 큰 의미 없으며, 당 정체성에 관한 한 거의 모두가 이념적 무뇌아로 남아있다는 뜻이 된다.

당 대표에 도전장을 던진 비박 5선 의원 정병국도 못 믿을 사람이다. 출마 공식선언 때 그가 했던 말을 잘 새겨보라. 그는 3대 공약으로 당의 수평적 민주주의와 수평적 경제민주화부터 꼽았다. 야당의 섣부른 민주주의 레토릭에 오염됐음을 스스로 밝힌 꼴이며, 그 또한 새누리의 수준을 보여줬다.

8선의 친박계 맏형 서청원? 그도 이런 의구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진면목을 최근 가늠하게 된 것은 뜻밖에 양동안 한국학연구원 교수의 ‘우익은 죽었는가?’란 글이 발표됐던 28년 전 당시의 모습이다. 당시 그는 민주당(YS당) 대변인 신분이었는데, 이런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이 글은 한국판 매카시즘의 악령을 되살려 좌우익의 극한적 대립을 주장하고, 이를 통해 군사문화를 존치하려는 획책이다…. 올림픽 뒤 위기설 및 좌우익 대립 등을 유포하여 국민의 불안감을 조장하려는 세력에 대해 강력 경고한다."
 
예나 제나 그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있기는커녕, 좌익혁명을 하겠다는 학생운동권에게 관용적이던 위선적 리버럴리스트였다. 지금 그는 친박계로부터 경선 출마를 요구받고 있다는데, 다른 건 몰라도 이념적 정체성은 아니올시다이다. 한선교-정병국-서청원, 대표 후보군의 면면이 이 지경인데, 다른 의원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 이념적 합의가 깨진 영혼없는 정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은 중도타령만 하고 있다. 김무성은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길"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유승민의 경우 "보수 혁신"으로 포장한다. 한국정치의 타락을 상징하는 중도 타령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사진은 지난달 20일 오전 국회 본회의가 끝난 후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운데), 김무성 전 대표(왼쪽), 유승민 의원(오른쪽)이 본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새누리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다. 무책임한 중도 타령이 대세다. 한국정치의 타락을 상징하는 중도 타령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냈던 게 전 대표 김무성이다.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그가 총선 이후 이렇게 입을 뗐는데, 이념적 백치집단 새누리의 한계를 또 한 번 절감시켜줬다.

"새누리당은 선거마다 집토끼 생각만 하면서 과거에 함몰돼 너무 극우적인 이념을 가지고 있다"
 
이건  새누리당 창당 이후 책임있는 당직자에게서 터져 나온 최악의 발언에 속한다. 얼마 전까지도 노동개혁을 역설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말하다가 민노총과 문재인으로부터 극우 소리 듣던 그가 뒤돌아서서 새누리당의 지지층을 극우라 모욕하다니! 이런 초현실적인 상황이야말로 한국이 얼마나 이념적 합의가 깨진 위험사회인가를 새삼 보여줄 뿐인데, 그에게 묻자. 대한민국에 극우세력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문제는 그런 최악의 망발에도 이의제기 없이 넘어가는 게 새누리의 분위기다. 지난 글대로 20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인 진보성향 의원(52.1%)과 중도(40.1%)가 7.8%에 불과한 보수성향의 의원을 찍어 누르는 모양새인데, 여기에 집권여당 전 대표까지 가세해 짓밟는 형국에 소름마저 돋는다.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몰각한 채 그걸 떠받치려는 세력을 극우 이념이라고 헛소리를 해대는 판이 지금이다. 어쨌거나 중도는 여의도 정치판의  대세다. 그걸 김무성은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길"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유승민의 경우 "보수 혁신"으로 포장한다. 그리고 그런 혼란상을 무엇보다 정신 나간 조중동이 응원한다. 특히 동아일보가 그런 바보짓을 골라서 한다.
 
유승민 식의 보수혁신이야말로 한국정치지형을 흔들 기폭제라는 식의 응원이다. 상황이 이토록 희한하니 안철수는 유승민에 대고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의기의식과 방향성이 나와 비슷한 분"이라며 가당치도 않은 러브 콜을 보낸다. 실로 기막힌 풍경이 아닐 수 없는데, 새누리 바보들과 안철수만 중도 타령을 하는 게 아니다.
 
전 국회의장 정의화가 퇴임하면서 "제3지대 창당" 발언으로 여운을 남긴 것도 중도 타령의 변종이었고, 어떤 언론은 안철수-유승민-손학규 등으로 짜여진 '중도세력 빅텐트'의 연대를 부추긴다. 즉 중도란 새누리와 선동언론이 함께 빠져있는 덫이자, 이념적 합의가 깨진 사회 대한민국의 최대 정치적 유행어다.
 
중도론자들은 체제수호엔 등 돌린 채 자신만은 편향되지 않은 합리적 사람이란 소리를 듣고 싶은 이념의 무임승차자들인 셈이다. 무식하게도 이들은 중용(中庸)과 중도를 마구 헷갈리고 있겠지만, 중도는 명확한 입장의 부재(不在)와 미확정이기 때문에 특정한 가치와 목표로 설정될 수 없다는 점을 일러드리려 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전체주의 체제 사이에 중간은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중도란 말이 유행하는 건 대중을 속일 수 있고, 자신들이 은거하기에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따듯한 보수라고 칭하는 유승민을 포함한 위선적 정치인들이 포장용으로 괜찮고, 우익세력과의 잠정적 합의를 위장할 수 있으니 좌익에게도 나쁠 게 없다. 그러나 말은 똑바로 하자. 이념적 합의가 깨진 한국사회에서 중도 타령이 높이 들린다면, 그건 곧 들이닥칠 재앙에  다가서고 있다는 뜻이다.
 
그 재앙의 징후를 나는 4.13총선에서 보았다. 여전한 국보법 위반 전력자(19대 국회 23명,  20대 국회 20명), 또 역시 전과 비슷한 수준의 운동권 출신 의원들(더민주 123명의 경우 20대 국회에 57명)에 못지않게 이념적 무뇌아에 다름 아닌 새누리 소속의 의원의 면면과 이후 자기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난장판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새삼 지난 4년을 돌이켜 보자. 한국사회의 혼란과 퇴행을 막는 것은 역시 정치의 몫인데, 새누리식의 야합과 탈선의 정치 그리고 그들의 DNA에 새겨진 ‘배신의 정치’는 그동안 혼란을 부추겨온 요인이다. 거듭 밝히거니와  집권세력과 체제수호 세력이 일치하지 않다는 게 이 사회 혼란의 핵심이다. 
 
이 아찔한 나쁜 구조 때문에 대한민국 선진화라는 목표, 그리고 북핵 제거를 통한 한반도평화의 진짜 이슈는 언제가 가려진다. 그래서 역사교과서 문제 해결이 질질 끌고 눈앞의 노동-연금-공기업-역사교과서 등 개혁도 탄력을 받지 못해 왔다. 최소한의 한반도 방어장치인 사드 배치를 둘러싼 저 난리법석은 또 뭔가? 새누리의 혁신없인 그저 '정부 있는 무정부상태'만이 반복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뾰족한 수도 없다. 재창당 수준의 혁신만이 답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8월 전당대회까지 모색을 거듭해야 한다는 점만 일러둔다. 애국 성향의 시민사회와의 공조, 그래도 남아있을 당내 혁신세력의 분발을 촉구할 뿐이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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