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민영화 참조, 민영화는 악이 아닌 선 심어줘야

   
▲ 박종운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미디어펜 논설위원
철도노조의 불법파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민영화에 대한 태도

 지난 해 대한민국에서는 수서발 KTX 운영 별도 법인 설립을 둘러싸고 홍역을 치렀다. 파업이라는 진통 끝에 결국 코레일 산하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두 개의 국가독점 철도회사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한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 파업의 결과를 두고 “…'귀족노조 프레임' 십자포화망에 갇혀 전멸될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도(?) 김무성의원과 박기춘의원간 합의 덕분에, '전술적 후퇴'를 단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에는 지지 않았다. 아니 이겼다고 생각한다. '민영화'는 나쁜 것이란 프레임을 전 국민적으로 형성해 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황성준, <공공개혁, 레이건에게 배운다>, http://unron.com/2462 ) 즉 전투에서는 실패했지만, 민영화 저지라는 전쟁에서는 이겼다는 이야기다.

입장 차이를 별개로 하면, 나도 민영화 저지라는 전쟁에서의 승부에 대한 그의 정세분석이 현실에서 지배적이라는데 동의한다. 사람들은 민영화가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스스로를 88만원 세대라고 자조하는 대학생들도, 8800만원 세대에게 엉뚱하고도 통 크게도 ‘안녕들 하십니까’라며 걱정해줄 정도이니까... 또 정부도 자신이 하는 일이 민영화가 전혀 아님을 거듭 거듭 강조했었으니까...

민영화가 악인가?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의식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야 한다.

‘군주제가 좋고 민주제가 나쁘다’는 말에는 복고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쌍을 이루는 명제인 ‘관영화가 좋고 민영화가 나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뿐 아니라, 잘못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원리적으로는 사회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그러나 관영화보다는 민영화가 낫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제국 관료제 체제의 극복 역사를, 그리고 국가배급주의 내지 국가자본주의의 극복 역사를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잘 알 수 있다.

왕토사상, 시장교환 및 사유재산제도와 민주주의

과거 농업을 기본으로 삼았던 ‘봉건제’ 그리고 그 후의 ‘제국(帝國)-관료제’ 사회에서는 왕토(王土) 사상이란 것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었던 토지가 개인의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왕이나 황제가 마음대로 신민에게 주었다 회수했다 했었다. 그래서 땅을 하사받은 사람은 그 대가로 충성과 ‘귀족으로서의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쥬, noblesse oblige)’를 왕이나 황제에게 바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군주주의 하에서는 민주주의가 발을 붙일 수가 없다. 왕토에서 배제되면 민주주의는커녕 곧 죽음이었다.

그러나 상업사회에서는 교환을 위해서는 재산권에 대한 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사유재산권이 발달했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조달해주는 상업도 특화되었고, 그것을 생산하는 산업도 발전하였다. 시장이 이러한 교환을 매개해주었고, 따라서 시장이 있는 사회는 번영을 이룰 수 있었고, 시민들은 부유하고 민주적일 수 있었다. 그리스가 민주주의의 고향처럼 되고, 로마의 의회제 선거제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시장교환 및 사유재산제도 때문이다.

   
▲ 철도노조의 불법 파업은 끝났지만, 민영화라는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공기업개혁과 민영화측면에서 보면 전투에선 이겼지만, 정작 대국적 견지의 전쟁에선 패한 것이다. 민영화는 악이 아니고, 선이며, 관영화가 오히려 악이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국민주 방식으로 민영화에 성공한 포스코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코레일과 인천공항공사등도 국민주방식으로 민영화하면 국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민영화와 경제민주화 두마리 토끼를 달성할 수 있다. 철도노조와 좌파시민단체들이 불법파업을 주동한 노조간부들에 대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에 주목하여, 이중톈(易中天)이란 중국 역사학자는 그의 책 <<제국을 말하다(帝國的終結)>>(2008, 에버리치홀딩스)에서 중국과 그리스의 문명 발전을 제도사적으로 비교하면서, 진나라 시대에 형성된 제국이 청나라 대에 멸망한 이유를 ‘제국 관료제 체제의 내부 모순’에서 찾고 있다. 흔히 서세의 동점에 의해서 중국이 망했다고 보는 그간의 설명과는 사뭇 다르게, 제국 관료제 체제가 내부모순에도 불구하고 그 대안이 없어서 2000여 년간 역성혁명 류의 변혁만 반복해왔었지만, 신해혁명으로 공화-민주-헌정이라는 대안이 제시됨으로써 아래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였다고 쓰고 있다. 근본적으로 시장교환경제 및 사유재산제도에 의해서 제국체제의 모순이 명확해지고, 또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에 의해서 무너졌다고 쓰고 있다(물론 그 이후에도 굴곡은 계속되었지만...).

새삼스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동양 역사를 볼 때도 폐쇄사회 그리고 왕토사상 혹은 국유화 사상에서가 아니라, 개방사회 그리고 사유재산제도에서 민주주의가 오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배급주의, 국가자본주의, 시장경제주의와 민영화

또한 한 때 근현대 세계사를 휩쓸었던 것은 사회주의 내지 국가주의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일세를 풍미했던 그 바람들도 결국 내부 문제에 의해서 스스로 허물어져 갔다.

사회주의의 결정적 수단은 생산수단의 사회화였다. 현실적으로는 국가권력의 장악을 바탕으로 한 국유화였고, 생산물은 배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는 중앙계획의 전능성을 전제한 것이어서 현실적으로 전능할 수가 없는 중앙계획당국의 ‘무지’ 혹은 시장 가격이 없어서 합리적 계산이 불가능하다는 ‘계산 불가능성’의 본성에 의해서 실패로 돌아갔다. 계획체제 배급체제는 노동자들을 해방시키기는커녕 노예상태로 몰고 갔고, 빈곤을 심화시켰다. 결국 소련의 자체 붕괴 후 러시아와 구소련 국가들의 경우 민영화와 사유재산제도의 보장을 통해서 민주주의의 길로 들어섰다.

사회주의 하에서 벗어나 시장경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민영화를 하지 않고 국영 기업소들이 시장을 위한 생산을 하고 시장 교환을 하는 형태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다. 중국의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렇게 시장에 적응되어갔는데, 그 결과 중국 기업의 책임자들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친인척들로 채워져 있고, 국가자본주의 영역에서의 불확실한 회계와 비능률도 시한폭탄처럼 모두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결국 중국에서도 민영화가 이루어져야 시장경제와 사적 소유권에 기반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다.

아직 민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민간 기업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물권법’ 등의 제정으로 민간 기업들의 사적 소유권을 안정시켜줌으로써 더욱 시장경제화되어가고 있어, 조만간 중국이 민주주의의 길로 가까이 다가갈 것임을 예감케 해준다.

영국의 경우, 대처 수상은 노동당의 사회주의적 정부 하에서 국영화된 기업들의 유지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자 과감하게 민영화를 추진하였다. 영국에 투자한 자본은 영국자본이나 다름없다는 개방적 논리로 해외 자본에도 공기업을 매각을 하였다. 이로써 돈 먹는 하마였던 국가자본주의 공기업의 부실을 털어낼 수 있었고, 비능률적인 국가자본주의적 요소를 덜어냄으로써 서비스도 좋아졌고, 영국 전체가 다시 살아났다.

결국 세계사는 시장경제주의 쪽으로 수렴되어왔다. 대한민국도 1948년 건국 이후 줄기차게 시장경제주의를 채택하고, 또 자유무역주의를 지지하며 수출입국을 했기 때문에 크게 번영의 길을 걸어왔다.

위와 같이 국가배급주의 국가자본주의가 시장경제와 민영화로 가는 역사들을 보아도, 관영화가 독재로의 길이고, 오히려 민영화와 시장경제가 악이 아니라 선이고 민주주의의 길임은 다시금 분명하다. 생산수단이 사회화된 국가에서는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역사학자 카(E.H.Carr)는 “사상의 국유화가 어느 곳에서나 산업의 국유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진행되었던 것은 의미심장하다”(Hayek, 노예의 길)고 찬양했었지만,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했던가?

민영화, 시장경제 강화의 길로...

그런데 시장경제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오늘날, 철도파업에서도 드러났듯이, 어처구니없게도 ‘민영화는 악’이라는 프레임이 알게 모르게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대적 방향을 거슬러 거꾸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대한민국의 번영의 비결대로,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민영화 시장경제 강화의 길을 계속 가야 한다.

과거 초기 자본투자의 과중함으로 인해 국가투자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또 나름의 큰 역할도 했지만, 국가자본주의 특유의 문제점 때문에 비능률적인 요소들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국가 예산의 일정 부분을 공기업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충당해야 하는 돈 먹는 하마 상태를 빨리 종식시켜야 한다.

민영화와 경제민주화의 길을 국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제대로 걸어갔던 사례는 2000년 포스코 민영화였다. 전 국민들이 신청에 의해 일정 기준에 의해 주식들을 인수할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 코레일도 그런 방식으로 민영화를 하게 되면 과거 투입했던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규 투자비도 쉽게 조달할 수 있다. 포스코 민영화의 사례처럼 국민들의 환영 속에 민영화가 이루어져서,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가 함께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박종운 시민정책연구회 연구위원, 미디어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