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살아 있는 전설' 이규혁(37·서울시청)이 생애 올림픽 마지막 레이스를 준비한다.
 
이규혁은 오는 12일 오후 11시(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들러 아레나 스케이팅센터에서 열리는 2014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 출전한다.
 
비록 후배 모태범(25·대한항공)에게 가려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날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있어 의미있는 날이다. 
 
   
▲ 이규혁/뉴시스
 
이규혁은 이번 올림픽에 500m와 1,000m 두 종목에 출전한다. 이날 1,000m를 끝으로 얼음판 위를 달리는 그를 더이상 볼 수 없다.
 
한국인 최초로 6회 연속 동계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 그는 한국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이자 산증인이다. 
 
1978년생 말띠인 그는 '청마의 해'에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마지막 올림픽이 될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71명의 국가대표 선수단을 대표하는 기수로 선정됐다. 앞선 5차례의 올림픽 개회식에서는 훈련을 이유로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지만 8일 열린 개회식에서 태극기를 휘날렸다. 
 
이규혁에게 올림픽은 영광과 환희와는 거리가 먼 아쉬움과 상처의 연속이었다. 1991년 13살의 나이로 처음 태극마크를 단 이규혁은 1994년 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에서 가슴 떨리는 첫 올림픽을 경험했다.
 
비록 첫 올림픽에서 500m(36위)와 1,000m(32위)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단거리 선수로 성장을 거듭했다. 20년 넘게 전 세계의 빙판을 누비는 동안 각종 국제대회를 접수하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위상을 높였다.
 
이규혁은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4차례,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차례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통산 14차례 정상을 경험했다. 
 
1997년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ISU 월드컵의 남자 1,000m에서 세계신기록(1분10초42)을 작성한 데 이어 2001년 캐나다 오벌피날레국제남자대회 1,500m에서 1분45초20으로 또 한 번 세계기록을 세워 선수 생활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의 꿈인 올림픽 메달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1,000m에서 거둔 4위가 최고 성적이다. 1분09초37로 결승선을 통과한 그는 네덜란드의 에르벤 벤네마르스(3위·1분09초32)에게 0.05초 뒤져 메달을 놓쳤다.
 
4년 전 밴쿠버동계올림픽 때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500m 15위, 1,000m 9위에 그쳤다. 1,000m 레이스를 마친 그는 얼음판에 드러누웠고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밴쿠버대회 이후 긴 방황의 시간도 보냈지만 못다 푼 올림픽 메달의 한을 풀기 위해 스케이트화 끈을 질끈 조여맸다. 2011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이규혁은 꺼져 가던 올림픽 도전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그의 마지막 레이스가 될 남자 1,000m는 절대 강자 샤니 데이비스(32·미국)가 버티고 있다. 데이비스는 올림픽 3연패를 노리고 있다.
 
올 시즌 월드컵 시리즈에서 디비전 A(1부 리그)를 단 한 차례 경험한 이규혁 입장으로서는 넘기 힘든 벽이다. 새롭게 1000m에 도전장을 내민 후배 모태범과의 경쟁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성적을 떠나 그의 마지막 레이스는 지난 20년 간 이어온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아름다운 도전을 끝내고 빙판과의 뜨거운 이별을 준비하는 그를 향해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준비가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