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 켐페인 행사는 그만, 찾아가는 문화 개발해야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문화가 있는 날이 생겼다. 좋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이 되면 미술관, 박물관, 영화관, 공연장 문화세일이 쏟아지게 되었다. 국립 공립은 물론이고 CGV, 롯데시네마와 같은 대기업 문화산업 시설들도 잘 맞추면 반값 관람도 된다. 신나는 캠페인이다. 두 손 번쩍 들어 환영한다. 잘 한 일이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몇 가지만 더 주문하고 싶다.

 우선 조바심을 버렸으면 한다. 한 달에 하루라도 문화생활을 시켜야 맘이 놓인다고 여기는 발상이라면 무슨 지휘관 같다. 이런 형식과 인위는 지금 40~50대 한국인이라면 어릴 적부터 노상 겪어 왔던 의무여서 정말 지긋지긋하다. 국기게양식과 민방위 훈련부터 시작해서 4월 어느 쥐 잡는 날도 있었고 군대 가선 전투체력의 날, 직장에서 받는 생일 문화상품권과 체력단련비 등등. 죄다 시켜주고 해주고 거들어주는 원격 조종이었다.

이런 캠페인성 문화, 예술, 체육에 평생을 젖어 지낸 한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을 상대하는 가장 손쉬운 정책이 바로 문화가 있는 날이지 싶다. 워낙 호락호락하니까. 지시와 분부대로 따라하는데 너무나 익숙하니까. 이런 캠페인이 나오게 된 관련 근거가 풍부하기는 하다. 1년에 책 한권 이상 보는 성인 독서인구가 80%도 안 된다는 둥 부끄러운 실태조사들이 빼곡하다. 한국이나 서울이나 조사만 하면 하위권에 맴도는 각종 행복지수들도 참 불편하다. 그렇다고 대뜸 끓어오르는 캠페인은 영 어색해 보인다.

예컨대 한 때 열풍이었던 <휴가 때 책 읽는 CEO> 같은 캠페인은 문화소비라는 관점에서도 소탐대실로 흐르기 십상인 난센스다. 어마무시하게 바쁜 CEO가 유행 따라 책 몇 권 달랑 들고 제주도로 해운대로 휴가를 간다고 해보자. 휴가지 문화자원 가동률은 심대하게 떨어진다. 민속촌도 안 가고 저녁 공연도 안 보고 역사 투어 프로그램도 취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음식문화, 요리체험도 단가가 떨어진다. 책만 보고 덜 노는 정적인 문화소비 모드에 일단 맞춰지면 제 아무리 구매력 높고 호기심 왕성한 CEO 가족이라도 불을 지피지 못한다. 문화소비 들불을 놓아도 모자랄 판인데.

물론 CEO 휴가 책 읽기가 독서와 출판, 문화산업 전반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자발성이 없으니 압력과 자극으로라도 책 사고 공연 가고 영화보라고 해줘야 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단행해야할 일은 익숙했던 것과 결별이다. 익숙하지만 부자연스럽고 반문화적인 동원과 권장, 과시, 전시, 압박, 의무로부터 벗어나야 참 문화생활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비자발적 체험이 반복적 습관으로 발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스스로 느껴 변두리 구석진 헌 책방을 찾아가는 지극히 자발적 열정만이 참 문화생활이 되어 문화소비 저변을 다질 수 있다.

   
▲ 박근혜대통령이 문화융성을 구체화하기위해 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의 날로 제정하는 등 문화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하지만 문화의 날에만 일회성 책읽고 영화보는 등 수동적, 켐페인성 행사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청와대와 정부부터 가끔 한복을 입고 도자기다과를 하는 등 솔선수범해야 한다. 강압적인 행사보다는 문화가 있는 직장 등 찾아가는 창조적 문화콘텐츠를 확산시켜야 한다. 박대통령이 지난달 문화의 날에 애니메이션영화 '넛잡'을 관람하고 있다.

증거는 우리들 경험 속에 있다. 한국 사람들이 소싯적부터 독서 감상문, 독후감을 그렇게 많이 써 냈는데 지금 현 주소는 어떤가? 독서실태 최하위, 출판 산업 절대 궁핍이다. 속 교양과 소양은 진짜 허약한 전형적인 컬처 푸어(culture poor)다. 체육에서도 똑 같은 패턴이 나온다. 한국이 하계, 동계 올림픽에서 그렇게나 금메달 많이 따고 세계 10위, 5위권까지 등극했지만 국민들은 체육, 건강, 체력에 별 자신이 없다. 비만하고 운동부족이고 사회체육, 생활체육은 태부족이다. 엘리트 체육에 올인 해 온 대가다.

과거 동독이 올림픽 2위 허세에 도취해오다 무너진 것도 프로파간다 엘리트 체육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엘리트 체육과 같은 전시행정, 정치와 체제 홍보용 스포츠 활동 DNA가 여전히 한국을 묶어세우고 있다. 이번 소치 올림픽과 한국 체육, 상업화된 미디어 시청, 엔터테인먼트와 결합해 대중을 현혹시키는 스포테인멘트들도 예외 없이 우민화로 흐르고 있다.

대중을 어리석게 만드는 우민화에 능란한 리더들이 지금도 엘리트 체육을 주도하고 있다. 골골해진 대중들도 순치된지 오래다. 이렇게 그들만의 리그, 소수만 즐기는 특권은 매스 미디어가 쳐놓은 스타 탄생 마케팅과 어우러져 날로 증폭되고 있다.
어느덧 엘리트 체육에서 시작한 국가주의나 애국주의는 엘리트 아트를 낳고 엘리트 문화로 가고 급기야 엘리트 한류로까지 변형,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K POP은 대단한데 한국인 갑남을녀들은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우민, 우중으로 전락했다. 번창했던 동네 피아노학원, 미술학원들이 급격히 사라지는(SBS 뉴스, “사라지는 피아노 학원…입시에 쫓기는 아이들”, 2014.2.4.) 게 그 증거다. 초등 저학년마저 입시 대비하느라 느느니 영어, 수학학원이요 없어지느니 전인교육이다.
 

해서 정리가 된다. ‘문화가 있는 날’은 과연 문화 없는 한국을 자인함이다. 평생 동안 예체능을 그림의 떡 보기 하는데 이골이 난 국민들을 쥐어짜서 문화소비를 늘리려 하는 불온한 캠페인으로 추락할 지도 모른다. 문화소비를 감상과 관람, 구독과 가입으로 키우겠다는 발상의 빈곤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창조적 소비, 즉 생비자(prosumer) 시대에는 문화생산을 활발히 해야 문화소비가 함께 확대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화가 있는 날’에만 어쩌다 책 사고 어쩌다 영화 보는 단순가담자 소비자들은 도움 안 된다. 피아노 학원, 만화방, 도서관, 놀이터에서 뒹굴고 자란 문화 창조 주동자라야 핵심역량이다. 한라에서 남산까지 사라진 고등학교 축제 시화전부터 복원해야 제 2의 이수만, 송승환 같은 감수성 품은 문화리더가 나온다.

 그러니 ‘문화가 있는 날’은 약간 보강해주기 바란다. 문화가 있는 학교, 문화가 있는 직장으로 넓히면 좋겠다. 국무회의하실 때 가끔 한복도 입고 우리 도자기 다과 만끽하는 실천은 어떤가. KBS 라면 일요일 밤에 태조, 태종 사극만 재탕하지 말고 안중근, 윤동주, 위안부 현대사 소재와 국학, 통일 이야기 담은 고품격 콘텐츠 창작에 몰두하기 바란다. 그마저도 안 하면 사람들은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더 절실한 테마로 총총 떠나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국민이 처한 컬처 푸어(culture poor)를 직시하는 것이 문화융성 출발점이다. 수동적 소비로만 떼밀려 문화생산과 창조로부터 소외되어왔던 한국 사람들을 더 이상 무료와 할인에 싸게 낚이는 우중, 우민으로 다루면 안 된다. 그들이 웅크렸던 문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끔 촉진하는 프로그램을 학교와 직장, 가정에 심어나갈 기획이 필요하다. 찾아가는 문화콘텐츠를 모토로 삼아 문화가 있는 날 2탄, 3탄으로 업그레이드 해나가길 촉구한다. 문화가 있는 학교, 문화가 있는 직장, 문화가 있는 동네로 키울 만하다. 청와대부터 하회마을, 양동마을처럼 기품 있게 손님맞이하고 옷 입고 학습하고 자주 놀기도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