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m는 끝났다. 선수 인생에 마지막 1000m 레이스 만을 남겨두고 있다.

20년 간 올림픽 메달을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맏형' 이규혁(36·서울시청)이 첫 메달의 꿈을 다음으로 미뤘다. 1994년 2월14일 처음 출전한 올림픽인 릴레함메르 대회 500m 이후 7304일을 기다려 온 메달 도전을 남은 1000m 경기에서 마쳐야 한다.

   
▲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규혁이 10일 오후(현지시각) 소치 해안클러스트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1차 시도에서 힘차게 질주하고 있다./뉴시스


이규혁은 10일 오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센터에서 열린 2014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2차 레이스에서 35초48를 기록했다.

1·2차 레이스 합계 70초65를 탄 이규혁은 최종 18위에 랭크됐다. 그는 앞선 1차 레이스에서 12위(35초48)로 메달의 꿈이 좌절된 상황에서도 역주를 펼쳤다.

1차 레이스에서 카자흐스탄의 로만 크렉(25)과 함께 3조로 나선 이규혁은 35초16으로 결승선을 통과, 12위에 그쳤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투혼을 불살랐지만 세월의 힘까지는 극복하지 못했다.

함께 뛴 크렉에게 0.05초 뒤진 이규혁은 1차 레이스 1위 얀 스미켄스(네덜란드·34초59)에게 0.57초나 뒤졌다. 상대적으로 늦은 반응속도로 출발한 이규혁은 이를 악물며 뛰었지만 받아든 기록은 기대에 못 미쳤다.

비록 1차 레이스에서의 기록은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다른 대표팀 후배들에게 본보기는 됐다.

모태범(25·대한항공)·이강석(29·의정부시청)·김준호(19·강원체고) 등 3명의 후배들과 함께 500m에 출전한 이규혁은 모태범(4위·34초84)을 제외하고는 다른 후배들보다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가능성을 안고 2차 레이스에서 명예회복에 나선 이규혁이었지만 끝내 메달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1차 때보다 0.32초 늦은 35초48로 결승선을 들어왔다. 함께 달린 길모어 주니오(캐나다)보다는 0.39초 뒤졌다.

짧은 휴식 뒤 바로 두 번째 레이스를 펼치는 것은 불혹을 바라보는 그에게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500m와 1000m 두 종목 출전권을 따낸 이규혁은 500m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마지막 남은 1000m에서 생애 첫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남자 1000m 경기는 오는 12일 오후 11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남은 1000m는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부터 소치까지 20년의 올림픽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레이스다. 이번 500m까지 그동안 올림픽에서 총 15차례 레이스를 펼쳤던 그는 마지막 16번째 레이스를 준비하게 됐다.

한국 선수 가운데 동·하계올림픽을 통틀어 6차례 올림픽을 경험하게 된 선수는 이규혁이 유일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드문 경우다.

그는 4년 전 밴쿠버 대회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500m 15위, 1000m 9위에 그쳤다. 1000m 레이스를 마친 그는 얼음판에 드러누웠고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심한 공허함에 우울증까지 더해지면서 이규혁은 20년 스케이트 인생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출전한 2011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 이규혁은 종합우승을 차지, 꺼져 가던 올림픽 도전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올 시즌 월드컵에서 디비전A(1부리그)를 단 한 차례 경험했을 뿐일 정도로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1차 대회 1000m 디비전A에서 출전 선수 20명 가운데 18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다. 시상대 위에 서 보는 것이 꿈이었다. 어려운 결심 끝에 '한 번 더'를 외쳤던 이규혁에게는 못다 푼 '한(恨)'이 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올림픽 대표 인생을 건 마지막 레이스는 일주일 뒤 펼쳐진다.
 

[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