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다수제 등 언론노조 천국 빌미…야당도 상투잡는 꼴 되지 말아야
   
▲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녹취록이 외압의 증거라거나 고대영 KBS 사장이 사드 보도지침을 내렸다는 주장이 사실처럼 둔갑한 덴 오로지 딱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언론노조가 방송법 개정에 목을 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2월 안광한 MBC 사장 임기가 끝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올해 언론노조가 원하는 내용으로 방송법을 개정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방송법이 개정된다고 당장 현재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을 갈아치운다거나 어떤 변화를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연히 차기 MBC 사장도 언론노조가 원하는 인물을 앉히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방송법 개정으로 상징적인 효과는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여소야대 권력지형으로 위축된 분위기 아래에서, 언론노조 세력에 핍박을 당하더라도 공영방송을 똑바로 세우겠다는 책임감 강한 인물이 사장으로 선임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노조에 굽신거릴 무능한 기회주의자에게 자리가 돌아갈 위험이 크다.

KBS 기자협회 정상화 모임에 소속된 간부와 직원들이 언론노조와 소위 진보언론, 좌파언론으로부터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진실이 뭐든 고대영 사장이 보도지침을 내린 것도, 그걸 비판한 직원에 보복인사를 한 것도,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외압도 반드시 사실이어야만 그들 목적이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좌파언론, 언론시민단체가 합세한 언론노조 세력이 안팎에서 희생양을 때려잡고 열심히 바람을 잡는다. 이들이 여론을 선동하면서 기세를 올리면 야당은 잽싸게 방송법 등 관련된 법안 개정안을 낸다. 그러면 뭘 모르는 새누리당이 어어 하는 사이에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런 얍삽한 전략이 선보이게 된 배경엔 그런 이유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 162명의 국회의원들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꾸는 법안 발의에 참여했다고 한다. 새누리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야당 의원들이 법안에 참여한 것이다.

방송법 등 개정안 핵심은 언론노조의 공영방송 장악

야당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법과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 4개 법안 개정안을 얼마 전 국회에 제출했다. 앞으로 필자가 여러 차례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번에 발의한 법안들은 단 몇 마디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대한민국 언론권력을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언론노조에게 몽땅 넘겨주겠다는 게 핵심이다. 뭔가 대단한 명분을 갖춘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 법안으로 야당은 자기들이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나 본데 대단한 착각이다.

기본적으로 이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야당 자기들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구조적으로 언론노조 세력에 상투를 잡히게 돼 있다. 법안 내용은 지금까지 언론노조 세력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내용들이다. 언론이 전한 법안 내용을 보면 이렇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 또는 임명하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 권한을 국회로 넘기고, KBS이사회와 방문진, EBS이사회 이사 정원을 동일하게 13인으로 증원하고, 여야 각각 7대 6 비율로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다.

다만 EBS의 경우 여당 추천에서 교육부 장관이 추천하는 1인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교육 관련 단체에서 추천하는 1인을 포함하도록 한다. 공영방송 이사들은 1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도록 고친다. 또 공영방송 사장 선임 시 특별다수제로 하고, 반드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다.

이사회가 회의를 하면 속기록과 녹음기록, 영상녹화기록 등을 첨부한 회의록의 작성, 보존을 의무화하고, 공개회의 원칙을 강화한다. 이걸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다. 이사 연임 제한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건 누가 봐도 현재 방문진 여당 이사들을 겨냥한 조항이다.

여기에 방송 사업자와 취재‧제작‧편성부문 종사자 대표가 각각 5인씩을 추천해 총 10인으로 편성위원회를 구성하고, 편성위원회는 방송편성규약 제‧개정과 방송편성책임자 임명 제청, 시청자위원회 위원 추천 등의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한다.

   
▲ 방송법 개정은 언론조조의 방송장악 음모에 놀아난 것이나 다름아니다. 사진은 야 3당 의원들이 지난 21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공동발의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권미혁, 국민의당 김경진, 정의당 추혜선,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김성수, 문미옥,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 /연합뉴스

특별다수제 등은 공영방송 망칠 악법

공영방송 이사 추천 권한을 방통위가 아닌 국회로 넘긴다면, 공영방송 제문제는 툭하면 국회에서 다뤄지게 될 것이다. 이건 언론노조가 지극히 바라는 내용이다. KBS, MBC, EBS 등에서 벌어지는 온갖 자잘하고 시시콜콜한 소란들을 대형 이슈로 키우려하고 정치권을 끌어들이려 했던 게 바로 언론노조가 해온 행태들 아닌가.

공영방송 문제가 직접 국회의 문제가 되길 바라는 것이 바로 언론노조의 노림수다. 만일 법이 그렇게 바뀐다면 어떤 정권이든  뭐 하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허구헌 날 언론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다. 이사회 증원은 그야말로 악몽이다. 이사회 증원은 일단 국민세금 투입 증가를 의미한다. 국회 권력 싸움으로 안 그래도 국민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데, 공영방송 이사들이 국민세금을 받아가며 허구헌 날 여야 대리전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이사회 증원은 백해무익한 짓이다.

이번 법안들의 핵심인 특별다수제는 이미 필자가 결코 도입해선 안 되는 제도라고 누누이 지적해왔다.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할 때 야당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특별다수제는 지각 있는 언론학자들도 반대한다. 새누리당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어떤 정당이 권력을 잡더라도 가장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이도저도 아닌 무능한 사장을 뽑을 가능성을 높이는 제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능하고 기회주의적인 공영방송 사장이 눈치를 볼 대상이 정치권인줄 아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류의 인간형은 가장 힘이 센 대상, 집단을 두려워한다. 필히 공영방송 내부의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인 언론노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언론노조가 가장 선호하는 사장이 바로 그런 사장이란 얘기다. 권력을 잡은 쪽이 당당하게 이사회 다수를 차지해서 언론정책을 펴는 것이 맞다. 필자는 특히 새누리당에 경고하고 싶다. 혹시 다음 정권을 넘겨줄지 모른다는 생각에 특별다수제에 덜컥 찬성하는 멍청한 짓을 저질러선 안 된다.

새누리당, 공영방송 장악 음모 모르면 재앙을 맞을 것

지금 제도는 그나마 정권을 잡을 때 공영방송을 뜯어고칠 기회라도 얻지만, 특별다수제는 그 기회를 영영 버리는 꼴이고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사장추천위원회 구성도마찬가지다.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면 민언련, 언개련 온갖 단체에 언론노조 친화적인 학자들에, 인력풀이 풍부한 좌파세력에게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다.

여야 보수진보 균형을 맞춘다고 해도 언론분야에서 우파는 좌파를 감당할 실력이 안 된다. 언론전쟁에서 보수는 진보에 완전히 밀려 패퇴하고 말 것이다. 사측과 종사자 5대 5 편성위원회 구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뉴스보도 감시와 통제권을 노조에 내주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노조가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단이 되는 것이 바로 편성위원회 구성 제도화다. 이사회 연임 제한, 이사회 공개 원칙 강화, 속기록 작성보존 의무화 이런 내용들도 하나 같이 언론노조 세력이 현재 공영방송 여당 쪽 이사들을 경험한 것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누구에게 유리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정도 설명했으면 새누리당도 깨달아야 한다. 누가, 어떤 세력이 여론을 어떻게 선동해도 야당이 이번에 발의한 법안들을 아무 생각 없이 통과시켜주는 일이 절대 있어선 안 된다. 소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은 새누리당 본인들은 물론이고 보수우파 세력과 궁극적으로 국민들을 무덤으로 밀어 넣는 악법 중 악법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언론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해 정치, 이념 투쟁하는 악습을 버리고 국민 전체를 생각하는 순수한 노조로 거듭나지 않는 한 이들이 떠드는 민주와 언론자유를 그대로 믿어선 곤란하다. 거대 귀족노조에 불과한 이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철탑을 쌓고, 공영방송을 자기들 발밑에 두고 정치·이념적으로 휘두르려는 어떠한 시도도 순순히 허락해선 안 된다.

새누리당과 특히 미방위 소속 의원들은 야당과 언론노조 세력 공세에 눌려 쉽게 타협하고 물러나선 안 된다. 보수우파는 물론 많은 국민에 어떤 재앙이 될 것인지 이렇게까지 쉽게 설명했는데 그래도 뭘 잘 모르겠다면 국회의원직을 관두는 게 낫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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