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노사 등 무소불위 완장행세, 종북 전체주의와 결별해야

   
▲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10여 년 전 시민단체에 첫 발을 들였던 애송이 시절이 회상된다. 그땐 시민들의 호응을 잘 이끌어내는 좌파단체들의 활약상이 내심 부러웠다. 그들의 활동전략을 벤치마킹하는 한편 그들이 다루는 이슈를 뒤쫓으며 반대목소리를 내곤 했다. 시민들을 누가 더 잘 설득하느냐 하는 선의의 경쟁을 벌였던 셈이다.

좌파단체가 벌인 ‘소액주주운동’은 사실상 ‘재벌혼쭐내기’의 일환이었고, ‘낙천낙선 운동’은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후보를 떨어뜨리려는 전략이었다. 그렇다고 초기 좌파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리긴 힘들다. ‘시민운동’이 한국사회에 다소 생소했던 분위기에서 나름 기반을 다지고 시민참여와 지지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이후 통신요금 인하, 최저생계비 현실화 등도 생활밀착형 시민운동 성과의 표본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시민운동은 초기에 비하면 상당히 변질된 듯하다. 소위 ‘시민세력’이라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을 만들고, 그들의 행동과 목소리가 곧 전체 시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위장하려 든다. 다수 대중을 꼭두각시 취급하며 ‘시민세력’이 사회를 휘젓고 있다. 좌파단체들의 이중성이야말로 더 심각하다. 입만 열면 약자와 서민을 위한다면서도 서민을 더 잘 살게 할 세계화와 자본주의체제를 비난하며 배부른 귀족노조의 파업에 박수를 보낸다.

차츰 ‘시민세력’은 우리사회의 ‘시민권력’이 돼버렸다. 정치권은 그 권력과 손을 못 잡아 안달이고 선거에서 후보를 정할 때조차 시민권력의 눈치를 살핀다. 귀족노조도 파업의 계절이 돌아오면 이들의 지원을 애타게 요청한다. 그러니 ‘시민권력’이 ‘절대권력’을 가진 듯한 착각으로 오만해지고, 마치 자신들의 주장이 ‘절대 선’인양 대중을 오도하는 지경까지 왔다. 사실 그 세력들은 진짜 좌파-진보가 아니다. 진짜는 가짜가 날뛰는 울타리 밖에서 묵묵히 진보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경계하는 대상은 ‘가짜 좌파’인 셈이다.

시민사회를 주름잡는 쪽이 가짜들인데다가 안타깝게도 눈에 보이는 규모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민주화운동, 좌파단체, 김대중-노무현정부는 궤적을 같이한다. 80년대의 운동권 출신들이 시민사회로 대거 유입돼 왕성한 시민운동을 벌였다. 이후 90년대 말부터 10년간 좌파정부 집권으로 시민단체의 정치화, 좌파지식인들이 대거 권력중심부로 들어갔다. 시민사회 분야가 아니더라도 교육-문화-방송계로 진입한 운동권 인사들이 10년 동안 각계의 요직을 차지해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공동대응하고 있다.

   
▲ 우리 사회에 가짜 좌파들이 활개치고 있다. 좌파 진보 시민단체들이 시민권력으로 변질돼 밀양송전탑 건립, 제주해군기지등 국책사업,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을 방해한 희망버스세력, 교학사 교재 채택 포기 협박 등 모든 이슈에서 무소불위의 능력자 행세를 하며 우리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 자유주의 세력은 가짜좌파의 왜곡된 평등주의와 집단주의에 맞서야 한다. 좌파 희망버스 세력들이 2013년 한진중공업에 다시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우파정권이 들어서자 좌파공동노선의 움직임은 더 노골화됐다. 좌파단체에서 건국대통령을 조롱하는 영상을 제작하자, 전교조가 이를 현장교육의 참고자료로 활용했다. 교학사 교과서 탄생을 막으려 정치인이 집필자를 표적사찰하고, 교과서에 없는 황당한 내용을 좌파언론이 퍼뜨리며 전교조가 교과서 채택을 못하도록 갖은 수단을 동원해 방해했다. 좌파단체와 정치인이 대선 불복 운동으로 새 정부를 옥죄려 들자, 덩달아 문화계가 대선 1주년에 맞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시킨 영화를 개봉했다. 손발이 척척 잘도 맞는 좌파세력들이다. 우파입장에서는, 각계에 진지를 구축해 기막힌 협업을 벌이는 그들이 솔직히 부러울 따름이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어느 순간 결집돼서 나온 게 아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건은 좌파의 운동방식을 가르는 중요한 기점이 된다. 다수 대중을 상대로 문화제를 가장한 길거리 시위가 성공했고, 이 투쟁방법은 5년 후 권력을 빼앗기자 ‘분노의 집회’로 재현됐다. 좌파의 거리점령 투쟁은 우파정부의 발목을 잡기 위한 마약 같은 전략이었다. 합법-불법이 그들에게 중요치 않았다. 환각무대 밖 말 없는 다수의 여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후유증으로 우리사회가 불법과 떼법, 공권력의 훼손, 다수의 횡포, 과잉민주주의 ‘홍역’을 앓고 있는 것이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집단시위는 원정으로 번졌다. 원정시위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한진중공업 분규, 밀양송전탑 건설 등 국책사업을 훼방 놓고 민간회사 내부문제까지 간섭해 사회갈등을 키웠다. 이름만 그럴듯한 ‘희망버스’라 부르면 지역주민의 손사래도 환영의 제스처로 보이나보다. 복지정책도 국책사업도 환경문제도 노사문제도 모두 좌파세력들이 좌우하는 듯 무소불위의 ‘능력자’ 행세를 한다. 시민세력이란 감투 쓰고 민주주의 완장은 둘렀으나 실은 ‘전체주의적 행패’다.

2009년 우파신문에 광고를 낸다는 이유로 광동제약 불매운동을 벌인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옥션이 걸그룹 ‘크레용팝’을 광고모델로 발탁하자 집단 탈퇴를 부추긴 세력, MBC파업의 부당성을 지적한 여성 앵커를 집단 왕따시킨 노조, 그리고 최근 교학사 교과서를 짓밟는 세력까지 좌파의 ‘전체주의 집단공격’은 계속돼 왔다.

그렇다면 지금 ‘가짜 좌파 대 진짜 우파’ 대결은 ‘전체주의 대 자유주의’의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즉 우파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중이다. 왜곡된 평등주의-집단주의 광기의 흐름에 맞서 개인의 창의와 선택을 존중하는 자유주의로 물결을 돌리는 작업이다.

‘종북’과 결별하지 못하고 애매한 위치에서 머뭇거리는 좌파, ‘전체주의’의 끈을 놓지 못하는 좌파, ‘간섭주의’ 아래 번지르르한 구호로 개인에게 나약함을 주입시키는 좌파... 자유주의가 본연의 길을 찾아줘야 할 상대는 많다. 그들이 진정한 좌파-진보로 돌아가길 원한다. 다시 그들을 벤치마킹하고 건전한 사상의 시장에서 경쟁하고 싶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