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 지나도/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가는 길… /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1949년 4월 신천지에 실린 시인 한하운의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 시다. 시인 한하운은 한센병(나병) 시인으로 자신이 앓고 있는 천형의 병고를 사실적이고도 슬프게 읆조렸다.  

30일 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한하운 시인이 노래한 그 천형의 땅을 소록도를 찾는다. 소록도(小鹿島)는 고흥반도 끝자락 녹동에 딸린 섬으로 생김새가 어린 사슴을 닮았다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그 아름다운 섬 소록도가 지옥의 섬이자 천형의 감옥이 된 것은 조선총독부가 소록도에 한센인들을 격리수용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 섬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자행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마저 놀란 100년 전 생체실험의 끔찍한 실체, 그 잔혹한 섬의 숨은 이야기를 파헤친다.  

   
▲ 731부대 마루타의 악몽? 소록도의 생체실험 설 진실은./그것이 알고 싶다 캡쳐.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사랑의 꿈은 깨어지고/여기 나의 25세 젊음을/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장래 손자를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내 국부에 닿을 때/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오늘도 통곡한다.

개원 100주년을 맞은 국립소록도병원에 걸려 있는 이동이란 사람의 '단종대'란 시다. 국립소록도병원은 1916년 일제가 강제로 부지를 매입하고 지은 소록도자혜의원이 효시다. 

'단종대(斷種臺)'. 말 그대로 '생식을 중단시켜 버리는 곳'이다. 제대로 된 수술기구도 없이 나무로 만든 기구로 강제로 하는 정관수술. 이동이란 사람은 스물다섯 나이에 일본인 원장을 명을 거역햇다는 이유로 스물다섯 나이에 단종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 심정을 시로서 통곡했다. 

1916년부터 해방까지 소록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금도 소록도에 남아있는 붉은 벽돌집. 일제강점기 때 원장이 이곳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을 불법감금하고 출감하는 날에는 예외 없이 강제로 정관수술을 시행했던 감금실과 검시실이다. 

창살과 시멘트 바닥에 변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곳. 환자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 이동권을 박탈당했고 툭하면 감금, 감식, 체벌의 징벌을 받았다. 인권 말살의 섬으로 알려진 이 섬의 놀라운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100년전 이 섬에서 731부대의 축소판 같은 생체실험이 자행됐다는 소식. 그 섬의 사람들이 731부대의 마루타 같은 생체실험의 대상이었다는 사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추적에 나선다. 두 달간 200여명이 진실을 찾아 나선 그곳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놀라운 거짓같은 사실에 접근한다.

122개의 포르말린 병속에 장기와 태아의 사체, 뇌나 장기를 절단한 것에서부터 출생 직전 상태의 태아까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마저 괴담이길 바라는 소문은 과연 어디까지 진실일까?철저히 봉쇄당한 천형의 섬, 지옥의 섬이 된 그곳의 숨겨진 비밀은 어디까지 파헤쳐 질까? 영혼마저도 박탈당한 그들. 모두가 침묵했던 그 잔혹하고 참혹한 진실을 '그것이 알고 싶다'가 씻김굿의 심정으로 찾아 나선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해방이 되고 일제의 만행이 끝난 후에도 강제 단종과 낙태가 계속됐다는 사실이다. 2011년 10월 단종·낙태 등 인권침해를 당한 한센인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 2심에서 모두 승소했으나 국가는 강제성이 없었다며 상고를 제기해 대법원에서 1년 8개월째 계류 중이다. 지난 26일 한국한센총연합회는 단종·낙태 한센인 국가배상 청구사건의 조속한 판결을 바라는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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