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창립 120주년' 한국 최장수 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下)
한국전쟁, 대구 낙동강 페놀 누출 사건, IMF 구제 금융 위기, ‘형제의 난’이라 일컫는 박용오와 박용성 간의 법정 싸움. 창업 이후 두산그룹은 크고 작은 위기를 수도 없이 겪어냈다. 대표적으로 이 네 가지 사건을 들 수 있다. 

   
▲ 두산그룹 본사가 위치한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전경.

이 가운데 1990년대 페놀 사건으로 주력인 OB맥주의 시장점유율이 급락하고 부채비율이 600%를 넘으면서 두산그룹은 위기를 맞았다. 이에 창립 100주년을 앞둔 1995년 자체적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에 돌입했고 한국3M, 코닥, 네슬레 등 식음료 사업과 OB맥주를 팔아 재무구조를 안정화했다.

이후 외환위기 불경기로 새로운 성장 동력이 절실했던 두산그룹은 인프라 지원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앞서 언급됐듯 박용만 회장의 주도 아래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두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며 소비재 중심의 사업 구조를 중공업 중심으로 빠르게 탈바꿈했다.

그 결과 2000년 3조4000억원이던 매출이 10년 뒤 23조원으로 급성장했고 해외 매출 비중이 1998년 12%에서 2015년 64%로 높아지면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두산그룹은 이렇게 기업의 명운이 달린 위기를 겪을 때마다 경영자의 리더십과 혁신을 바탕으로 위기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함으로써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바꿔놓았다. 

최근에는 주력 산업이 불황을 겪으면서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등 시련을 겪었지만, 2014년부터 돌입한 선제 구조조정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지난 1분기 전 계열사가 흑자전환하는데 성공했고 2분기에도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

올해 3월 박용만 회장은 그룹 회장직을 큰 조카인 박정원 ㈜두산 회장에게 승계하는 용단을 내렸다. 박용만 회장은 당시 본인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박정원 회장이 승계하는 문제에 대해 자주 지인들에게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박용만 회장은 한 공식석상에서 “지난해까지 세계적 경기침체 속에서도 턴어라운드 할 준비를 마쳤고 대부분 업무도 위임하는 등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런 생각으로 지난 몇 년간 업무를 차근차근 이양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재계 일각에선 박용만 회장의 그룹 회장직 사퇴와 박정원 회장의 승계가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의 유동성 위기 등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박용만 회장이 오랜 기간 심사숙고한 끝에 용단을 내린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두산그룹은 박두병 창업 회장의 유지에 따라 형제간에 경영권을 승계해왔다. 박두병 창업 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회장부터 시작해 박용오,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회장까지 차례로 경영권이 이어져왔다.

   
▲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지난 3월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두산그룹은 박정원 회장 시대를 맞았다. 박용만 전 회장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박정원 회장의 최대 화두는 올해 흑자 경영으로 그룹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지주사인 ㈜두산의 이사회 의장이 그룹 회장직을 수행해 왔던 관례에 따라 박정원 회장은 박용만 회장에 이어 두산그룹 총수에 오르며 오너 4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승계를 두고 내홍이 일었던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두산은 무리 없이 박정원 회장이 이어받아 부담을 덜게 됐다"고 평가했다.

박정원 회장은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고 박두병 창업 회장의 맏손자다. 박두병 회장의 부친인 박승직 창업주부터 따지면 두산가 4세에 해당한다.

1962년생인 박정원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1985년 두산산업(현 ㈜두산 글로넷BU)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현장을 두루 거쳤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왔다.

일례로 1999년 ㈜두산 부사장으로 상사BG를 맡은 뒤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 사업 위주로 과감히 정리함으로써 취임 이듬해인 2000년에 매출액을 30% 이상 끌어올린 바 있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그룹의 신성장 동력 발굴과 인재 육성에도 큰 기여를 해왔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 지주부문 회장으로서 2014년 연료전지 사업, 2015년 면세점 사업 진출 등 그룹의 주요 결정 및 사업 추진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두산 연료전지 사업의 경우 2년 만에 수주 5870여억 원을 올리는 등 ㈜두산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의 인재 중시 철학은 현재 구단주를 맡고 있는 두산베어스의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잘 나타난다.

역량 있는 무명 선수를 발굴해 육성시키는 '화수분 야구'로 유명한 두산베어스의 전통에는 인재 발굴과 육성을 중요시하는 박정원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돼 있다.

취임 당시 박정원 회장은 공격적인 경영을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두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그룹 재무구조 개선 ▲신규사업 정착 ▲현장 중시 기업문화 등 세 가지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박정원 회장은 취임사에서 "올해로 창립 120주년을 맞는 두산의 혁신과 성장의 역사에 또 다른 성장의 페이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며 "두려움 없이 도전해 또 다른 100년의 성장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왼쪽)이 최근 '두산인 봉사의 날' 행사를 맞아 서울 중구 명동 카톨릭회관에서 임직원 150여 명과 지역사회 저소득층 가정에 전달될 가구를 만들고 있다. / 두산그룹 제공

박정원 회장은 "세계 경영환경이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가 열린다"면서 그룹 재무구조 개선 마무리, 신규사업 조기 정착 및 미래 성장동력 발굴, 현장 중시 기업문화 구축에 중점을 두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현장에서는 기회가 보이면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공격적인 경영을 두산의 색깔로 만들어 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박정원 회장이 두산그룹의 청사진을 제시함에 따라 주요 계열사들은 발 빠르게 후속 조치에 나섰다.

우선 ㈜두산과 두산중공업의 안정적인 기반을 토대로 그동안 유동성 문제를 드러냈던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건설에 대한 구조조정을 마무리 지어 두산그룹 전반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는데 집중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3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시행해 어려워진 시장 상황에 맞춰 인력 수요를 조절했다. 

이러한 박정원 회장의 적극적인 경영이 성과를 보이듯, 지난 5월에 개장한 두타면세점은 하루 매출 5억원이 넘어서기 시작했고, 두산중공업은 지난달 에너지저장장치 소프트웨어 원천기술 보유업체인 미국 원에너지시스템즈를 인수하는 등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두산그룹은 지난 1일 별도의 기념행사 없이 비교적 조용한 창립 120주년을 보냈다. 대신 박정원 회장이 전날 사내 포털에 기념사를 올려 창립 12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박정원 회장은 "장기 저성장 기조가 여전하며 잠재적 위험이 커지고 있는 등 여전히 녹록지 않다"며 "두산이 걸어온 120년 역사를 돌아보면 이보다 더한 고비도 수없이 많았으나 두산은 버텨온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고 세계로 무대를 넓혀왔다. 이것이 두산의 저력이다"라고 강조했다.

박정원 회장은 하반기에도 국내외 현장을 돌며 '현장 경영'을 펼칠 계획이다.

120주년을 맞이한 두산그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인 동시에 위기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가장 젊은 기업으로서 또 다른 100년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미디어펜=김세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