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에 환한 미소, 보조개가 들어가는 귀여운 얼굴로 노래하고 춤추며 대공황기 미국 영화관객들을 사로잡았던 귀염둥이 아역배우 출신의 셜리 템플(본명 셜리 템플 블랙)이 10일(현시지간) 밤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85세.

   
▲ 에드가 후버 전 미국연방수사국(FBI) 국장과 셜리 템플/사진=뉴시스

그동안 수많은 아역배우들이 있었던 미국 영화계이지만 누구도 1935년 6세 때 아카데미상을 받았던 셜리 템플처럼 자기 시대의 미국 사회 전체 분위기를 바꾸어 놓은 사람은 없었다. 모든 엄마들이 자기 딸을 셜리처럼 옷을 입히거나 곱슬머리에 비슷한 분위기로 꾸미는데 열중했을 정도였다.

템플은 조숙한 아역 연기로 헐리우드 황금시대의 최고 인기배우로 군림했으며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음료수나 칵테일, 주스 등에도 그의 이름이 전해져 오고 있다.

셜리 템플은 '브라이트 아이즈'(1934) '컬리 톱'(1935) '보조개'(1936) '하이디'(1937) 같은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톱스타였지만 사이러스나 린제이 로한같은 아역배우 출신들이 마약이나 알콜 중독 등 각종 스캔들에 휘말린 것과 달리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어려운 시기에 20세기 폭스사를 파산으로부터 구해냈을 정도로 그녀의 영화들은 엄청난 관객들을 끌어들였으며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암흑기를 빛내준 빛나는 천사'라는 찬사를 들었을 정도였다.

"셜리는 한번 들은 것은 평생 기억할 만큼 머리가 좋았다.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척척 해냈고 배우들 중 누군가 대사를 잊어서 쩔쩔맬 때면 셜리가 그것을 가르쳐주었고 그 배우보다도 더 멋지게 대사를 해보였다"고 앨랜 드완 감독은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인터뷰집 '전설적인 영화감독과의 대화'에서 말했다.

셜리 템플의 활약은 영화뿐이 아니었다. 21세에 영화계에서 은퇴한 그는 공화당 행정부에서 여러 차례 외교무대에 진출해서 1989년 공산권 몰락의 시기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미국대사로 재임했다.[미디어펜=김태윤 미주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