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체 여성에 소중한 평생교육 기회 날려, 기득권 엘리트의식 벗어나야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이 끝내 좌절됐다.

산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소중한 교육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는 수포로 돌아갔다.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하고, 이대가 운영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이대학생들이 결사반대했다.

고졸 중졸들이 일하는 산업체의 여성근로자들에게 학벌주의를 조장한다는 이유도 내걸었다.  동문들도 언론에 조선일보 등에 반대광고를 게재했다. 재학생과 동문이 한데 뭉쳐 미래대학사업을 거세게 반대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대학을 통해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다. 가정 환경 등으로 대학에 가지 못한 여성들에게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서다.

이대학생들이 반대하는 것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평생교육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전통 사학의 기득권에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도 곱앂어봐야 한다. 이대 재학생이 미래대학 사업 논란을  겪으면서 느낀 소회를 보내왔다. 글을 보낸 박성은 학생은 한국대학생포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주)   

   
▲ 이대학생들이 산업체에 근무하는 여성들을 위한 평생교육프로그램인 미래라이프대학사업에 대해 거세게 반대했다. 이 사업은 좌절됐다. 명문사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엘리트의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겸허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연합뉴스

이화여대에게 지난 7월은 폭염 속의 투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교육부가 지원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안된 이대의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이 재학생 및 졸업생의 집단적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최경희 총장의 일방노선과 불통을 지적하며 본관을 점거해 농성을 벌였다. 감금사태도 벌어졌다. 학내에 경찰병력 1600여명이 투입됐다. 경찰력의 학내 진입은 초유의 사태였다. 대학이 추진했던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은 무산됐다. 

미래대학이란 이대가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다. 제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여성들에게 뒤늦게나마 대학 교육 서비스와 학위를 얻을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평생 교육은 역대 정부들이 하나 같이 관심을 가지고 추진한 창의교육 전략 과제 사업의 하나이다. 2015년 세계교육포럼이 채택한 '인천선언문'은 '모두를 위한 평등하고 양질의 교육 및 평생 교육'을 보장하겠다는 목표를 표명했다.

평생 교육은 국가적으로, 또 세계적으로도 공들이고 있는 공동 목표다. 교육 기관은 응당 교육의 접근성에 대한 기회균등성을 보장해야 한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남들과 같은 때에 진학하지 못했던 여성들이 연령과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정당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을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미래대학은 의미가 깊다.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총장의 불통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했다. 미래대학의 긍정적인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반대학생들은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이자 주인공이라고 강조했다. 미래대학을 만들기 전에 학생들과 소통했어야 한다고 했다.

반대학생들은 미래대학이 학위가 필요 없는 산업체에 학벌주의를 확산시키는 역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산업을 학문으로 인정하는 것은 대학이 스스로 교육 기관의 자부심을 저버린 것이라고도 했다.

미래대학 추진을 위해 대학이 학생의 의견을 반드시 수렴할 이유는 없다. 백 번 양보해서 학생이 학교의 주인공임을 인정한다 해도 말이다. 학교는 교육 서비스와 학위라는 상품을 판매하고 학생은 구매자의 위치에 놓인다.

어떤 기업도 예상 소비자에게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할 자유를 기존 구매자들에게 허락받지는 않는다. 새로운 상품의 개발과 판매가 기존 고객들의 이권을 침해하지 않을 경우 문제가 없다.

미래대학은 재학생들의 학습권과 학내 시설을 이용할 권리 등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 중 어느 하나도 박탈하지 않는다. 침해받지 않은 것에 대한 권리는 어디까지 주장할 수 있을까. 내가 누리던 것을 '합당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다른 사람이 그대로 누릴 것이라는 엘리트 의식이 문제가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을 겸허하게 새겨야 한다.


반대학생들과 이를 지지하는 세력은 미래대학이 이대 졸업장이 필요 없는 곳까지 학위 경쟁을 끌어들인다고 비난한다.

학벌주의 풍토가 만연한 사회에서 학위 접근성을 대폭 확대시키는 미래대학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것은 가혹하다. 이는 모든 복지의 필요성을 뒤집는 주장이기도 하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장학금 지원 등이 하위 계층의 물신주의와 배금주의를 자극한다고 비난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들은 대학이 산업이 아닌 학문을 위한 진리의 상아탑으로 남길 바란다며, '뷰티'와 '웰니스'같은 산업에 학문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 반대하고 나섰다.

순수 학문의 가치만을 주창하려면 먼저 각 대학마다 터줏대감처럼 붙은 경영학과와 경제학과의 존재 가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진정한 학문인가 아닌가는 학생의 감상이나 주관이 결정하는 영역이 아니다.

이런 주장은 뷰티나 웰니스 따위를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문의 반열에 올려줄 수 없다는 엘리트주의만을 드러낼 뿐이다.

1966년부터 10년 간 중국 본토에서 자행된 이른바 문화대혁명을 이끌었던 홍위병들은 자신들
이 만든 가치관의 관철을 위해 대학가의 인문학을 모조리 말살했다. 공자묘와 사당을 파괴했다.

홍위병은 유교를 배울 가치가 없는 학문으로 치부했다. 의식의 폭력성이 두드러졌다. 이것은 냉정히 생각해 봤을 때 학문의 가치가 실추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학위의 가치가 실추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대학은 기업임과 동시에 교육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학당이다. 평생 교육도, 차별 없는 양질의 교육 서비스 제공도 학당의 본분이다.

서울역 플랫폼이나 버스 정류장에 대문짝만하게 걸린 대학 홍보 포스터를 과연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이미지가 생명인 대학들의 경쟁에서, 이화는 아직은 130년의 명성을 실추시키면서까지 학위 장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생 교육과 더불어 교육을 통한 복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화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오랜 본분에 충실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대는 배울 자격도, 배울 기회도 가질 수 없었던 구한말 조선 여자들에게 근대 학문의 길을 열어줬다. 이화학당은 누구도 교육받을 권리 앞에서는 차별받을 수 없다는 교육정신을 소중히 지켜왔다. 현재의 이대 학생들도 설립 초창기의 소중한 정신을 이어받을 수는 없을까? /박성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미디어펜=편집국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