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광풍속 재계총수 과도한 유전중죄 판결 지양돼야

   
▲ 이의춘 미디어펜 발행인
김승연 한화그룹회장이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됐다. 서울고법이 법과 양심에 입각해 올바른 판결을 내린 것 같다. 검찰이 한국에서만 적용되는 배임죄로 김회장을 옥죄려 했던 오기수사, 별건수사에 대해 재판부가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본다. 김회장이 5년의 집행유예를 받아 인신구속은 면했지만, 3년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점은 개운찮다. 그에게 씌워진 배임죄(징역3년형)는 여전히 경제민주화 광풍의 잔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서울고법의 이번 판결은 시류(時流)재판, 기교재판의 잘못된 관행을 끊었다는 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반기업적인 경제민주화의 태풍을 타고 기업총수라면 무조건 최고형량을 선고하고, 구속수감해온 게 최근 사법부의 강경기류였다. 사법부가 정치권의 거센 포퓰리즘에 휩쓸려 유전유죄(有錢有罪)를 넘어 유전중죄(有錢重罪)의 기업인재판이 관행화됐다.

과거의 유전무죄의 불투명한 판결도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규제과잉의 경제민주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반대로 대기업 총수 사건은 으레 구속수사와 중형선고가 관행화됐다. 인민재판을 방불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첫해인 지난해에는 SK최태원회장, 한화 김승연회장, 태광산업 이호진 회장 등 9명의 재벌그룹 총수가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았다. 역대 정권 첫해에 이루어진 기업인 수사로서는 최고치였다.

박대통령은 지난해 청와대 입성하자마자 재계총수들을 불러 투자와 일자리창출을 독려했다. 하지만 재계는 반기업적 시류수사와 편향판결에 짓눌려 정권과 정치권, 정부의 눈치보기 바빴다. 박대통령은 올들어 규제개혁에 전력투구중이다. 관료들은 꿈속에서도 규제개혁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돗개처럼 규제를 푸는데 강한 열정과 집착을 보여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1월에 열린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선 개막기조연설을 통해 기업가정신이 성장의 핵심 동력임을 설파했다.

청와대가 기업인 기 살리기로 방향을 전환한 상태에서 사법부가 총수들에 대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은 고무적이다. 사법부도 이제 경제민주화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서울고법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난 4년간 김회장과 한화그룹을 옥죈 배임죄 재판이 종착역에 도달한 것이다. 김회장에 대한 집유는 사법부가 경제민주화 광풍에 더이상 휩쓸리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인다. 차제에 배임죄 등으로 수사및 재판받는 상당수 기업총수들도 과잉처벌, 과잉판결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배임죄의 경우 최고경영자의 경영행위에 대해 폭넓은 제척사유를 줘야 한다. 앰뷸런스에 타고 있는 김회장이 재판을 받기위해 서울고법에 들어가고 있다.

김승연회장 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검찰의 과잉수사, 오기수사, 별건수사, 먼지털이수사였다. 본건인 비자금수사에서 그룹이 고해성사한 것 외에는 별다른 혐의가 없자 방향을 틀어 본건과는 무관한 배임 및 횡령수사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김회장은 4차례나 소환되는 모욕을 당했다. 그룹사장단과 핵심임원들, 계열사들이 강도 높은 소환과 압수수색을 당했다.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배임과 횡령혐의도 98년 외환위기이후 국가마저 부도날 지경에서 한화가 부실자회사를 살리기위한 불가피한 조치에 대해 적용한 것이다. 당시 경제부처와 감독당국, 채권단의 조치와 정책방향 등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수사였다.

외환위기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오너가 있는 대기업의 경우 대주주가 책임지고 부실기업을 회생시킬 것을 요구했다. 채권단은 더욱 강경했다. 대기업그룹이 부실 자회사를 부도낼 경우 그룹에 대한 여신을 전면중단하겠다는 강경입장을 보였다. 한화가 특수자회사였던 판매부진과 자금난으로 부도직전에 있던 한유통, 웰롭등을 주력사들이 지급보증 등으로 지원해준 것은 감독당국과 주거래은행의 요구에 화답한 케이스였다. 시장논리로 하면 파산시켰야 했다. 그랬을 경우 금감위와 주거래은행의 반발과 규제, 여신회수가 한화그룹전체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한화는 자회사를 살려서 모두가 승자가 되게 했다. 피해자가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다. 자회사에 자금지원을 해준 모기업과 해당자회사, 협력업체, 주거래은행, 임직원 등이 다 경영정상화의 혜택을 받았다. 그룹경영이라는 게 자회사가 부실하면 다른 계열사가 지원해주는 게 상례다. 이를 못하게 하면 그룹경영이 사실상 차단될 것이다. 독일 프랑스 등의 경우 그룹경영에 필요한 경우에는 계열사간 자금거래나 납품거래 등을 문제삼지 않는다.
서울고법은 김회장에 대해 집행유예라는 감형 판결을 내린 근거로 피해 계열사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그 피해 위험성이 상당히 부풀려진 점을 들었다.

김회장에 대한 무리한 시류수사의 중심에는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이 자리잡고 있다. 남 전지검장은 검사시절 강직하고, 좌고우면하지 않으며,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불독검사로 정평이 나있었다. 서부지검의 오기수사가 지난 4년간 한화와 김승연회장을 심각하게 뒤흔들어놓은 것이다. 남기춘 수사팀은 한화와 김회장이 무슨 거악이 되는 것처럼 벼르고 별렀다. 선대회장인 김종희 창업주의 상속자금이 임직원 차명계좌로 관리중인 것에 대해 금감원이 수사의뢰를 한 것이 발단이었다. 검찰은 무슨 경천동지할 비자금흑막이 있는 것처럼 흥분했다. 수사팀은 연일 신문사 법조기자들에게 천문학적인 비자금스캔들이 나올 것처럼 흘렸다.

하지만 한화에 대해 이잡듯 뒤져도 비자금은 나오지 않았다. 그룹은 수사가 시작되면서 차명계좌의 실체를 인정하고, 실명전환과 함께 상속증여세도 납부하는 등 성실하게 수사에 임했다. 수사팀을 초조하게 만든 것은 비자금조성에 관여한 혐의를 받았던 경영진들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모조리 기각된 점이다. 이로인해 재계나 언론 등에서 남기춘수사팀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남기춘 수사팀은 당황한 듯 한화가 조직적 로비를 통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식으로 나왔다.

서부지검팀은 방향을 틀어 그룹 계열사를 모두 뒤져 뭔가 불법적인 혐의를 잡으려고 했다. 그래서 나온게 외환위기 당시 부실 자회사에 대한 그룹계열사들의 지원문제였다. 당시 정부와 주거래은행의 요구로 이루어진 자회사 지원문제를 검찰은 김회장이 주주와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및 횡령혐의로 걸고 넘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 4년이 흘렀다. 한화 수사를 지휘했던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환부만 도려내는 스마트 수사를 강조했다. 하지만 수사는 질질 끌었다. 김회장은 수차례 소환돼 망신을 당했다.

김회장은 울화병이 도져 몸무게가 20kg이나 증가했다. 온갖 질병으로 구속집행이 정지된 상태에서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비즈니스측면에서도 천금같은 기회를 놓칠 뻔했다. 구속직전 김회장은 이라크로 날아가 말리크 총리와 담판을 벌여 조단위 이라크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조단위의 추가수주도 눈앞에 보였지만, 김회장이 구속되는 바람에 진척이 잘 안됐다. 세계최고를 목표로 한 태양광사업의 글로벌 인수합병등에서도 차질을 빚기도 했다. 오너가 없는 상태에서 중요한 투자와 신규사업은 지연되거나,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 정기인사 등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부지검의 과잉수사와 오기수사가 재계10위권의 한화를 이처럼 어렵게 만든 것이다.

1심과 2심도 역시 여론에 민감한 듯했다. 별건수사에 대해 별다른 고민도 없이, 그리고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정책에 대해 성찰도 하지않았기 때문이다. 지법과 고법은 김회장에 대해 배임죄로 3년, 2년의 실형과 구속을 각각 결정하는 강수를 뒀다. 유전중죄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김회장 수사와 재판을 보면서 별건수사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실감하게된다. 본건수사가 아닌 곁가지 수사에 대해서는 검찰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김진태 신임 총장도 별건수사에 대해 신중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공명심에 불타는 검사들이 얼마나 이를 지킬지는 불투명하다. 별건수사에 맛을 들이면 여기에서 벗어나는 기업은 없을 것이다. 수십조, 수백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에 대해 이잡듯 뒤지면 뭔가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도 문제지만, 법원도 검찰의 별건수사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문제도 이참에 정리해야 한다. 배임죄가 있는 나라는 한국과 독일 일본 정도에 불과하다. 독일과 일본은 최고경영자의 경영상 판단을 존중하고 있다. 이사회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경영행위에 대해서는 폭넓은 자율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방한했던 독일의 법경제학자는 “김승연회장의 배임죄는 독일에서라면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사회등의 절차를 거친 경영판단과 행위에 대해서는 배임죄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 지금처럼 검사와 판사의 개인적 성향과 소신에 따라 배임죄가 남발된다면 기업가정신은 추락할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배임죄 적용이 지속된다면 모든 기업인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형무소 담벼락위를 걷는 신세가 될 것이다. 차제에 검찰과 사법부 모두 배임죄 문제에 대해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 경영상 행위에 대해서는 폭넓은 제척사유를 부여해야 한다.

배임죄 문제는 형사적 처벌에 맡겨선 안된다. 민사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유럽과 미국등은 이미 법경제학이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 민사상의 손배문제로 배임을 취급하고 있는 것. 우리도 우물안 개구리식의 형사처벌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진국흐름에 발을 맞춰야 한다. 조속히 배임죄와 관련한 입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백날 기업가정신과 투자를 독려해도 검찰과 사법부가 개혁에 동참안하면 연목구어에 불과하다.

김승연회장에 이어 재계총수들이 줄줄이 재판을 앞두고 있다. 재계 3위 최태원 SK회장의 판결도 주목된다. 최회장의 경우 계열사에서 돈을 빼내 펀드에 투자한 혐의로 실형을 받고 1년이상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펀드 자금을 횡령했다는 것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너무나 많다. 그룹매출이 200조원가량 되는 글로벌 그룹총수가 첨단 금융상품인 펀드에 계열사들이 450억원정도 출자한 것에 대해 시시콜콜 지시하고, 보고받는다고 추정하는 것은 무리다. 펀드에 투자한 계열사 자금은 금리 7%대의 높은 이자를 주고 다시금 계열사에 갚았다. 계열사들은 오히려 저금리 시대에 수익이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펀드 같은 금융상품은 워낙 고도의 파생상품이다. 총수가 일일이 지시할 수도 없다. 계열사 자율경영이 정착된 SK그룹에서 이런 문제까지 일일이 총수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는다고 보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피해자가 아무도 없는 사건인 점도 주목해야 한다. 피해자가 아무도 없는데 최회장을 1년이상 장기간 수감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이다.

SK는 글로벌 그룹이다. 그룹매출의 절반이상이 해외수출로 벌어들이고 있다. 계열 주력사인 15개사의 지난해 수출액은 76조원으로 700억달러가량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는 전체 매출의 52%를 차지한다. 자원개발과 석유화학 반도체 등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해외 유망기업에 대한 인수합병과 전략적 투자등을 서둘러야 한다.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일수록 총수의 경영판단과 결단이 중요하다.

조석래 효성그룹회장도 외환위기 당시 종합상사의 부실처리 문제로 강도 높은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조회장도 외환위기 당시 대주주의 책임하에 종합상사 부실을 단계적으로 처리했다. 부도를 냈으면 채권단이 그룹여신을 회수하겠다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한화와 비슷한 케이스다. 더구나 효성물산이라는 종합상사는 수출제일주의 정책에 따라 만든 회사로 그룹물량은 물론 중소기업의 수출을 대행해주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부실이 났다. 효성은 이를 해소하기위해 우량기업들과 합병해서 부실을 서서히 해소했다.

이런 사안에 대해 국세청이 뒤늦게 탈세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검찰은 압수수색등을 통해 수천억원의 탈세와 횡령 비자금조성 등의 혐의로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이 신청한 조회장에대한 구속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정책에 순응해서 부실을 해소한 효성에 대한 수사는 석연치 않은데가 많다.

기업인들이 경제민주화 광기에 희생양이 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 김승연회장과 구자원 LIG회장이 동시에 집유로 풀려난 것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총수라는 이유로 유전중죄식의 인신구속수사와 실형판결이 관행화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엄벌주의 처벌, 과잉처벌은 또다른 비정상 수사와 판결을 낳기 십상이다. 경영을 하면서도 재판을 받게 하도록 해야 한다. 형사처벌 위주보다는 손해 배상 등 민사소송으로 유도해야 한다.

재계도 이제 투명경영 정도경영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상속 및 증여, 과도한 내부거래 등을 통해 사회와 중소기업등에 부담을 주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수호자가 되기위해서도 재계는 법치의 기반에서 경영활동을 해야 한다. [미디어펜=이의춘 발행인junglee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