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만 6차례를 경험한 이규혁(36·서울시청)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와 결을 함께 해온 전설같은 존재다. 
 
지난 20년 간 한결같이 빙판을 달렸던 이규혁이 자신의 올림픽 인생의 마지막 레이스를 끝냈다.  
 
   
▲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규혁이 12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경기를 마치고 숨을 고르고 있다./뉴시스
 
12일 오후(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 센터에서 열린 2014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1분04초04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6조에서 뛴 이규혁은 12명의 선수 가운데 4위를 차지, 올림픽 메달 꿈을 접었다. 그토록 바랐던 메달은 끝내 품지는 못했지만 이것이 이규혁의 20년 스케이팅 인생 전체를 규정짓는 최종 성적표는 아니었다. 
 
1991년 13살의 나이로 처음 태극마크를 단 이규혁은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부터 이번 소치 대회까지 20년 간 대표팀을 책임져 왔다. 
 
제갈성렬(44·SBS해설위원)·김윤만(41·대한체육회) 등 선배는 물론, 최재봉(34)·박재만·김철수 등 여러 동료들이 대표팀을 스쳐 지나갈 때에도 이규혁만이 홀로 굳건히 태릉선수촌을 지켰다. 
 
 이규혁은 30여 년의 선수 생활 과정에서 올림픽 메달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1000m와 1500m에서 세계기록을 남기는 등 한때 세계 빙속계를 주름 잡았던 선수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역사를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4차례,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차례 우승 기록을 보유한 그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통산 14차례 정상에 오르며 세계 정상급 스프린터로 활약했다.
 
 이규혁은 1997년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 2차 대회 남자 1000m에서 세계신기록(1분10초42)을 처음 작성하며 자신의 전성 시대를 알렸다.
 
 4년 뒤인 2001년에는 캐나다 오벌피날레국제남자대회 1500m에서 1분45초20으로 또 한 번 세계기록을 작성했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의 꿈인 올림픽 메달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1000m에서 거둔 4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1분09초37로 결승선을 통과한 그는 네덜란드의 에르벤 벤네마르스(3위·1분09초32)에게 0.05초 뒤져 메달을 놓쳤다.
 
 4년 전 밴쿠버동계올림픽 때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500m 15위, 1000m 9위에 그쳤다. 1000m 레이스를 마친 그는 얼음판에 드러누웠고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심한 공허함에 우울증까지 더해지면서 이규혁은 20년 스케이트 인생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출전한 2011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 이규혁은 종합우승을 차지, 꺼져 가던 올림픽 도전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에 이르렀다.
 
 앞선 다섯 번의 올림픽까지 오로지 메달만을 겨냥했던 그는 욕심을 내려놨다.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그는 마지막 올림픽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단의 상징인 기수로 나서기도 한 그는 모태범(25)과 이승훈(26·이상 대한항공) 등 실의에 빠진 후배들을 다독이며 대표팀 맏형 역할을 톡톡히 했다.
 
 비록 끝내 시상대에 서보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지는 이규혁이지만 한국 빙속 역사에 그가 남긴 큰 획은 팬들의 마음 속에 남아 영원한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