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새누리당 8.9 전당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이정현(3선·전남 순천시) 대표는 자신을 ‘비주류·비엘리트·무수저’ 출신이라고 소개해왔다. 

전남 곡성 출신으로 말단 당직자로 시작한 그가 30여년만에 집권 여당의 최고수장에 오른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1985년 전남도지사를 지낸 민정당 구용상 전 의원의 총선 캠프에 합류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측 대선기획단장을 지냈다.

전략기획통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대구·경북(TK)을 중심으로 한 당내 분위기 때문에 그는 호남 비주류였다. 하지만 오히려 호남지역에서 국회 입성의 기회를 모색했다. 

그는 처음 17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0.65%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19대 총선에서 또다시 광주 서구에 출마했으나 39.7%로 득표율을 올리고 재선에 실패했다.

이 대표는 지난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당의 불모지인 전남 순천·곡성에 출마했다. 선거기간 내내 유세차량 없이 자전거를 타고 시골 곳곳을 누빈 끝에 1988년 소선거구제 이후 26년 만에 보수정당 후보가 호남에서 당선되는 신기록을 기록했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도 전남 순천시에서 3선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2007년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한 뒤 사실상 칩거 생활을 할 때도 대 언론 소통을 전담하며 ‘대변인격’이란 전례 없는 별칭을 얻었다.

2012년 19대 총선 때 이 대표가 광주 서구을에서 낙선한 뒤엔 같은 해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발탁돼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를 잇는 가교역할을 했다. 그해 대선에선 새누리당 공보단장을 맡아 박 대통령의 ‘입’으로 야권 공세를 방어하는 최전선에 섰다.

이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 출마를 저울질 하던 때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KBS 세월호 보도 개입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고,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오더 투표’ 의혹이 일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 하루 전인 8일에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누구도 쳐다보지 않던 저를 발탁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한대의 열정으로 봉사할 기회를 주신 박근혜 대통령께도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면서 ‘박()의 남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이날 전대에서 “새누리당의 호남 재선, 비례대표까지 합해 3선으로 만들어준 전남 순천 지역민, 당직자에서 시작한 자신을 받아준 새누리당과 당원들께 무한 감사를 느낀다”면서 “자신을 발탁해 기회를 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대표는 당대표로 선출된 이날 수락연설에서 “당원들의 힘으로 새누리당을 반드시 바꾸겠다”고 했다. 그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정치개혁을 경험할 것이다. 당원도 당혁신을 경험할 것”이라며 “저와 함께 정치혁명의 동지가 돼달라. 죽어야 산다는 각오로 낡은 정치를 쇄신해 나가자”고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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