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보다 끔찍한 누진제 폭탄, 에어컨은 한여름밤의 꿈?(下)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세 폭탄’에 대한 우려로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여론의 질타는 전력을 독점 공급하는 한국전력공사로 향하는 모양새다. 

   
▲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이 지난해 9월 18일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공사에서 진행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조환익 사장은 이 자리에서 누진세를 완화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전기요금의 누진제 완화 여론에도 정부 입장은 변함없는 가운데서도 누진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꾸준히 피력해왔던 게 사실이다.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올해 3월 한 공영방송에 출연해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당시 “누진제에 따른 전기요금 차이가 과도하게 큰 것은 사실”이라며 “누진제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환익 사장은 그러나 “누진제 완화는 이른바 부자 감세나 사회적 형평성 등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당장 급하게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앞서 조환익 사장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도 누진제를 완화할 의사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한전에서는 조환익 사장을 필두로 누진제 개편에 대한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하지만 전기료와 요금체계의 결정권이 정부에 있는 만큼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엔 역부족이었다. 

한전은 “주택용 누진제도는 1973년 석유파동을 계기로 에너지 다소비층에 대한 소비절약 유도와 저소득층 보호를 위해 시행됐다”며 “최근 전열기 등 가전기기 보급 확대와 대형화에 따라 가구당 전력사용량이 증가해 사용량이 많은 고객은 전기요금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전에서는 저소득층 보호취지, 전력수급 상황, 국민 여론, 최근의 전력소비 추이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누진제 완화방안을 검토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력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는데도 마치 한전이 많은 이익을 보면서도 전기요금을 내리지 않는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리고 있다는 게 한전 측의 항변이다.

한전은 현재도 자사 홈페이지에 전기요금제도에 관한 안내 글을 통해 여전히 누진제 완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11일 당·정·청이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발표가 있기까지 산업부는 그동안 ‘개편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서민층의 전기료 부담 가중, 부유층 전기료 감세 논란, 에너지 절약 등의 이유를 들었다. 

여기에 한전이 최근 많은 흑자를 내지만 이전에는 5년 연속 적자를 봤고, 부채만 107조원에 달해 전기요금 체제를 바꿀 수 없다고 반박한다.

   

소비자들이 누진제 에 따른 ‘전기요금 폭탄’ 공포에 떨고 있는데 비해 한국전력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1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데 이어 올해도 상반기에 이미 6조3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는 등 지난해 실적을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됐다.

에너지 업계와 한전 전력통계시스템 등에 따르면 6월 전기 도매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은 65.31원/㎾h로 집계됐다. 이는 2009년 7월의 66.39원/㎾h 이후 7년 만의 최저치다. 전달인 5월의 68.78원/㎾h보다도 3.47원/㎾h 더 떨어진 것이다.

7월의 SMP는 공식 집계되지 않았지만, 평균 66.80원/㎾h 수준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6∼8월의 SMP는 각각 84.54원, 81.99원, 88.59원이었고 2014년에는 136.35원, 142.72원, 128.60원이었다. 

또 더위가 극심했던 2013년에는 158.13원, 155.29원, 154.19원이었던 것에 비춰보면 올 여름철의 SMP는 크게 낮은 수준이다.

올해는 평년보다 두 달가량 이른 5월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는 등 무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했지만 전기 도매가격은 외려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에너지 업계는 이를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SMP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는 국제유가의 하락과 신규 석탄발전소 설립 등이 꼽힌다.

SMP는 구조적으로 전력 수요가 많을 때 가동되는 첨두발전인 LNG발전의 전력 생산단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원료인 LNG 가격이 국제유가와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저유가 흐름이 이어지면서 LNG발전의 단가도 낮아진 것이다.

또 지난달 발전용량 930㎿ 규모의 당진 화력9호 석탄발전기가 가동에 들어간 점도 SMP를 낮추는 데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렇게 SMP가 낮아져도 소비자들이 쓰는 전기 소매가격에 곧장 반영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전기요금은 정부 승인을 거쳐 결정되는 정책적 가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기의 도매가격은 떨어지고 소매가격은 그대로이다 보니 한국전력[은 올해 상반기 전년보다 약 46% 증가한 6조309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특히 한전은 지난해 11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이를 경신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반면 LNG발전사들인 포스코에너지, SK E&S, GS EPS는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34∼77% 감소했다.

하지만 정부는 전기 도매가격의 인하를 전기요금에 반영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SMP가 높을 때는 한전이 천문학적인 적자를 감수하며 전기요금을 싸게 유지했고, 원가 회수율을 회복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는 게 산업부 측의 설명이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