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쌓아두고 투자 안한다?…과세 주장은 기업 투자 위축·주주 손해
   
▲ 이동응 경총 전무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투자와 고용의 어려움이 커진다. 그리고 투자 확대, 고용창출 등의 문제가 이슈화될 때마다 기업의 역할을 거론하면서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있다. 바로 사내유보금이다. 정치권이나 노동계는 기업이 수백조원의 돈을 사내에 쌓아두면서, 투자도 안하고 고용창출에도 등한시 한다며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내유보금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명백한 오해이다.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잔뜩 쌓아만 놓고 투자는 안 한다, 청년실업을 외면하고 고용을 안 늘린다, 그리고 심지어 내수진작을 위해 근로자들의 임금을 올려주어야 하는데 돈을 안 푼다는 식의 잘못된 시각은 바로잡아야 한다.

얼마 전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지적한 내용들을 요약해보자. 먼저 사내유보금의 의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건실한 기업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내유보금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유보금은 당기순이익에서 주주배당을 차감한 금액을 매해 합산한 이익잉여금과 자본거래에서 발생한 자본잉여금을 더한 것을 의미한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손익을 내고, 자본이 증가할수록 유보금은 증가하며, 배당이 과다하거나, 당기순손실이 발생할 경우 유보금은 감소한다. 유보금은 현금뿐만 아니라 토지, 기계설비 등에 이미 투자되어 기업 활동에 기여하고 있으므로, 이를 투자에 사용하라는 주장은 이미 투자한 자금을 다시 투자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총자산대비 현금비율은 미국 기업보다 낮은 수준이고, 총자산대비 유형자산비율은 높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과도하게 현금자산을 늘이고 실물투자를 줄였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이처럼 사내유보금이란 용어로 인해 다양한 오해가 존재하므로, 새로운 용어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내유보금은 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의 합으로 기업이 쌓아둔 현금으로 볼 수 없다. 특히, 자본잉여금은 주주가 회사에 납입한 자본(주식발행초과금, 자기주식처분이익 등)이므로 사내유보금 계산 시 배제되어야 한다.

   
▲ 사내유보금은 세후의 개념이기 때문에 여기에 과세를 한다면 이중과세에 해당하며, 오히려 기업투자를 감소시켜 결국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연합뉴스

사내유보금은 국내 적용 회계기준(IFRS, 일반기업회계기준)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며,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므로 적절한 용어로 대체하여야 하면서 '세후재투자자본', '세후사내재투자', '내부조달자본', '누계잉여금' 등의 새로운 용어로 대체하자는 안도 나왔다.

그리고 사내유보금에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고 반론한다. 사내유보금은 세후의 개념이기 때문에 여기에 과세를 한다면 이중과세에 해당하며, 오히려 기업투자를 감소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내유보금은 이미 법인세를 내고 남은 부분이므로, 여기에 추가적으로 과세할 경우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기계설비나 공장설립에 투자한 기업은 기계나 공장을 매각해야 사내유보금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사내유보금 과세는 오히려 기업의 투자에 부정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기본적으로 사내유보금의 소유주인 주주의 권리에 반한다.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소액주주를 포함한 상장기업의 모든 주주를 대상으로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말과 같으므로 결국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운영을 위한 현금자산 외에는 이미 기계, 공장 등의 형태로 투자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이를 투자하자는 말은 전혀 맞지 않는다. 그리고 사내유보금 규모를 정하는 것은 고도의 재무적 의사결정으로 기업 내부의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과제인 만큼, 기업 외부에서 사내유보금 규모가 크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요즘처럼 저금리 시대에 자금이 부족하여 투자를 못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기업의 투자는 사내유보금의 규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 국민 인식 등의 투자 환경이 경영활동에 얼마나 우호적인가에 달려 있다. 사내유보금을 억지로 투자지출에 활용하라는 비상식적인 논리가 만연하는 오늘날의 세태는 지금의 투자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반증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차제에 사내유보금이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용어를 바꾸는 문제가 심각하게 고민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내유보금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은 위와 같은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도 다시 사내유보금으로 투자하고 임금 올려주고, 그렇게 안 하면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용어만을 바꿀 것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대립으로 모든 사회현상을 해석하려는 의식부터 바꾸는 게 급선무일 것 같다. /이동응 경총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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