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쇼트트랙 선수들을 전 종목을 잘 타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키운다.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경우는 전 종목을 탄 후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정하기 때문에 모든 종목을 잘 타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단거리에 약한 것은 이같은 영향이 가장 크다고 지적한다. 외국 선수들은 타고난 신체조건 덕에 순간 가속이 좋아 단거리에 강한 편이다.

   
▲ 질주하는 박승희/뉴시스

그런 가운데서도 박승희가 우승후보로 꼽힌 것은 타고난 순발력 덕이다.

김동성 KBS 해설위원은 "스타트를 잘하려면 순발력이 좋아야 한다. 근력을 키워 어느 정도 보완할 수도 있지만 순발력은 타고나는 것"이라며 "박승희는 이를 타고났다"고 설명했다.

박승희는 이날 준준결승과 준결승, 결승을 거치면서 이런 순발력을 한껏 발휘했다. 특히 준결승과 결승에서는 스타트를 끊자마자 앞으로 치고 나가며 외국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순발력을 과시했다.

그는 순발력에다가 몸싸움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금새 자리를 잡는다. 단거리에서도 강한 이유다.

김동성 해설위원은 "박승희가 일종의 '아줌마 정신'이 생긴 것 같다. 여자 선수의 경우 어린 선수들은 몸싸움을 하는 것을 꺼려한다. 박승희는 이제 그럴 단계가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결승에서 박승희의 스타트는 놀라웠다. 그는 총성이 들리자마자 가장 앞 자리로 뛰쳐나갔다. 준결승 때에도 박승희는 가장 먼저 치고나가 한 차례도 선두를 뺏기지 않은 끝에 조 1위로 준결승을 통과했다.

하지만 불운이 그를 덮쳤다. 단거리인 만큼 그대로 레이스를 펼쳤으면 금메달은 박승희의 차지가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가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와 부딪히면서 둘이 함께 중심을 잃었다.

박승희는 이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달려나가는 듯 보였으나 충격을 받은 탓인지 중심을 잃더니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박승희는 이후 포기하지 않고 레이스를 펼쳤다. 순위는 가장 마지막이었다. 크리스티가 실격당하면서 박승희는 간신히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쇼트트랙 역사를 다시 쓰는 듯 했던 박승희는 불운에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좋은 스타트도 불운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