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수 탓에 넘어지면서 아쉽게 쇼트트랙 여자 500m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던 박승희(22·화성시청)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박승희는 13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 클러스터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소치동계올림픽 여자 500m 결승에서 레이스 초반 넘어지는 바람에 54초207로 결승선을 통과,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불운 속에 따낸 아쉬운 동메달이었다. 준결승부터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한 박승희는 결승에서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24) 탓에 중심을 잃으면서 넘어졌다.

그는 재빨리 일어서 다시 달리려고 했지만 날이 얼음에 박히면서 다시 한 번 넘어지고 말았다. 이후 포기하지 않고 레이스를 펼쳤지만 맨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 13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여자 쇼트트랙 500M 결승전에서 넘어지며 아쉽게 금메달을 놓친 박승희가 아쉬워하고 있다/뉴시스

크리스티에게 임패딩 반칙이 선언되면서 박승희에게 동메달이 돌아갔다.

믹스트존으로 걸어들어오는 박승희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아쉬움의 눈물은 아니었다. 믹스트존에서는 방송 인터뷰를 한 뒤 신문 등 지면 기자들을 만나는데 가족 이야기를 하다가 흘린 눈물이란다.

박승희가 울면서 들어오자 평소 '호랑이 감독'으로 잘 알려진 최광복(40) 코치도 박승희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이 종목의 강자로 군림하던 왕멍(29·중국)이 빠진 상태였고 박승희의 페이스가 워낙 좋아 내심 금메달에 대한 기대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박승희는 "레이스 직후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동메달도 값지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넘어진 후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박승희는 "다시 한 번 넘어졌는데 마음이 급해서 그랬다. 그것도 제 실력이다. 처음으로 두 번 넘어졌는데 빨리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준결승까지는 페이스가 좋아 박승희도 욕심을 냈던 모양이다.

박승희는 "하던 대로 하려고 했는데 경기가 잘 풀려 '노력에 하늘이 도와주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준결승까지는 '1등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하려고 했다. 욕심을 내면 안된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못 딴 것은 아쉽다. 중국이 금메달을 가져가서 아쉽다"라면서도 박승희는 메달을 딴 것에 기쁨을 표했다.

"괜찮아요"라며 연신 미소를 지은 박승희는 "결승에서 포지션이 좋아 감사했다. 나머지는 제 실력이다. 어머니는 동메달도 감사하게 생각하실 것이다. 500m에 욕심이 났지만 메달을 딸 줄은 몰랐다. 결승에만 올라가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메달을 딴 내가 대견하다"고 칭찬했다.

그는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전이경이 동메달을 딴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여자 500m에서 메달을 땄다는 말을 들은 뒤, "어머, 정말요? 저 잘한거죠?"라고 반문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중국이 금메달을 가져간 것이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단거리에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기쁘다"고 덧붙였다.

그러다가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아쉬워 했다. 박승희의 동생인 한국 남자 쇼트트랙대표팀 박세영(21·단국대)은 앞서 열린 남자 5000m 계주 준결승에서 아쉬움을 맛봤다. 이호석(28·고양시청)이 넘어지는 바람에 남자대표팀은 5000m 계주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박승희는 "동생이 남자 5000m 계주 준결승을 하는 것을 라커에서 봤다. 엄청 피말리는 레이스를 했다.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부담이 됐다"며 "그것을 생각하니 금메달을 못딴 것이 또 아쉽다"고 털어놨다.

박승희는 자신을 넘어지게 만든 크리스티에게 오히려 격려를 보내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원래 착한 선수"라고 강조한 박승희는 "영국 선수가 너무 울어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해줬다. 영국 코치가 나중에 와서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고 전했다.

타고난 순발력을 앞세워 빠른 스타트를 자랑하는 박승희는 부모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박승희는 "부모님께서 좋은 순발력을 물려주셔서 스타트가 좋은 것 같다. 주변에서 순발력은 물려받지 않으면 힘들다고 한다"며 "이런 순발력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승희는 빨리 불운의 500m를 잊고 다음 경기에 매진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아쉽기는 하지만 아직 경기가 남아있다. 추스르고 남은 경기에 집중하도록 하겠다"며 "500m가 가장 욕심이 났고 긴장이 됐다. 이제 끝났으니 다른 종목은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각오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