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의 행운은 재현되지 않았다. 여자 쇼트트랙의 박승희(22·화성시청)가 우여곡절 끝에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8년 나가노 대회 이후 16년 만에 500m에서 나온 동메달이지만 과정은 전혀 달랐다.

박승희는 13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소치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 사진출처=13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여자 쇼트트랙 500M 결승전에서 넘어지며 아쉽게 금메달을 놓친 박승희가 아쉬워하고 있다.

참가 선수 4명 중 가장 늦게 결승선을 통과한 박승희는 2위로 골인한 엘리세 크리스티(영국)가 비디오 판독 끝에 실격 판정을 받으면서 동메달리스트가 됐다.

전통적으로 500m 종목에서 약세를 보이던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16년 전 전이경(38)이 1998년 나가노 대회에서 행운의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당시 1000m와 3000m 계주 우승으로 2관왕을 차지했던 전이경은 500m에서 동메달을 추가했다. 서양의 강세 속에 500m에서 기를 못 펴던 한국이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따낸 메달이었다.

준결승에서 파이널 B로 밀리며 메달권에서 멀어지는 듯 했던 전이경은 파이널 A에서 2명이 엉켜 넘어지며 실격당하는 바람에 동메달을 챙겼다.

16년 뒤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왔다.

결승에서 1위를 달리던 박승희가 반대로 희생양이 됐다. 16년 전 상대의 실격으로 운 좋게 동메달을 따냈던 한국은 반대로 상대의 실격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2위를 유지하던 엘리세 크리스티(영국)가 뒤따라 오던 아리아나 폰타나(이탈리아)와 엉켜 넘어졌고 앞서 있던 박승희도 이를 피하지 못해 함께 미끄러졌다.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박승희는 크리스티의 실격패로 구제받아 우여곡절 끝에 동메달을 챙겼다.

앞선 5차례 올림픽에서 총 14개(금 8·은 3·동 3)의 메달을 수확하며 쇼트트랙 강국의 면모를 보였던 한국이지만 유독 500m는 약했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부터 동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합류한 쇼트트랙은 초반에는 폭발적인 힘과 순간 가속력을 앞세운 서양 선수가 지배했고 이후에는 중국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한국은 90년대 초반 케이티 터너(미국)의 벽을 넘지 못했고, 2000년대 접어들면서는 중국의 거센 바람에 밀렸다.

순발력을 앞세워 기술적인 스케이팅을 구사하는 한국은 500m를 제외한 1000m·1500m·3000m 계주 등 나머지 종목을 싹쓸다시피 했다.

전이경과 진선유(26·단국대 코치)로 이어지는 대형 스타를 보유한 한국은 줄곧 세계 여자 쇼트트랙계를 지배했다.

전이경은 1994년과 1998년 2개 대회 연속 2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여자 쇼트트랙을 이끌었고, 진선유(26·단국대 코치)는 2006년 토리노 대회 3관왕(1000·1500·3000m 계주)에 오르며 한국 여자 쇼트트랙은 전성기를 보냈다.

넘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올림픽 500m는 이번 소치올림픽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인 왕멍(중국)의 갑작스런 낙마로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회 3연패를 노리던 왕멍이 부상으로 올림픽에 불참하면서 뚜렷한 우승 후보가 없었다. 한국은 내심 기대를 걸었다.

해외 언론에서는 왕멍이 빠진 이번 500m에서 박승희를 우승 후보로 지목했고, 국내에서도 박승희가 최초의 500m 우승을 안겨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처음 찾아온 500m 우승의 기회는 예기치 못한 불운으로 날아갔다. 경기후 최광복 대표팀 코치는 "실력으로 따낸 메달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고개 숙인 박승희를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