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협치 약속 20대 국회 초장부터 삐걱…골든타임 놓치면 백약무효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출범 넉 달 남짓 20대 국회의 모양새가 영 아니다. 그야말로 뭣이 중헌지도 모른 채 벌써부터 서로 잘난 싸움질이다. 민생을 외치며 국민들 앞에 읍소하던 모습이 엊그제처럼 생생한데 벌써부터 모르쇠다.  황금분할· 협치는 사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추경을 놓고 황금분열과 대치로 치닫고 있다.

20대 국회가 22일 본회의에서 처리키로 했던 11조 원 규모의 추가경예산안(추경)이 결국 여야간 청문회 증인채택을 놓고 암투를 벌이다 국민들과의 약속을 깼다. 추경은 그야말로 타이밍이 생명이다. 응급상황에서 응급처치를 위해 선택하는 비상한 조치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소도 잃고 외양간도 부실공사가 된다. 

조선업 등 기업구조조정과 일자리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이번 추경은 어느 때보다 민생과 직결돼 있다. 21일 통계청에 따르면 조선업 밀집 지역인 울산 경남 전남 전북의 실업률이 지난 7월 말 기준 전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7월 실업자 수는 총 12만6000명으로 지난해 말 9만8000명보다 2만8000명 늘었다. 현 증가 추세면 연간 실업자 수가 5만 명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20만명이 길거리로 내몰린다는 얘기다.

지역경기도 구조조정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점심시간 길거리에 사람이 안 보이고 번화가엔 문 닫은 술집이 많다는 하소연이 들려오고 소비시장이 완전히 죽었다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괜한 엄살이 아니다.

   
▲ 20대 국회가 22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던 11조 원 규모의 추경이 여야간 이견으로 무산됐다. 조선업 등 기업 구조조정과 일자리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이번 추경은 그 어느 때보다 민생과 직결돼 있다. 타이밍이 중요한 추경은 시간을 놓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누를 범할 수도 있다. /사진=한진해운 홈페이지

통계청의 2분기 지역경제동향을 보면 울산의 2분기 백화점·대형마트 판매는 지난해 2분기보다 2.8% 감소했다. 전국에서 감소폭이 가장 컸다. 경남의 전체 소매판매 증가율도 전국에서 가장 낮은 1.2%였다. 아예 지갑을 닫고 있다.

조선업 밀집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가 안팎의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0.7% 상승하는 데 그치며 내수경기가 얼어붙고 있다. 통계청이 내놓은 2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을 나타내는 평균소비성향은 70.9%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1분기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수출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19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하며 유래없는 부진에 빠졌다. 중국 경제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고 브렉시트 여파로 금융시장 불안과 보호무역 강화는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금리인상을 벼르고 있다. 미국 금리인상은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자금 이탈 가속화와 외환·금융시장에 혼돈을 가져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출경쟁력은 떨어지고 수출채산성은 더 나빠진다.

9월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도 내수 침체를 부채질할 우려가 높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한국경제다.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조선업 등 구조조정 여파로 길거리로 내몰리는 실업자는 또 다른 사회 불안과 갈등 요인이다. 이런 위기 상황를 돌파할 목적으로 편성된 추경이 여야 정쟁에 발목 잡혀 있다.

정부가 지난달 추경을 편성한 주요 목적은 '조선업 구조조정 여파 최소화'다. 정부는 조선업 종사자 고용안정 지원(2000억원), 조선업 밀집 지역 일자리 창출(400억원) 등 일자리 창출과 고용 안정에 총 1조90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추경 집행이 늦어질수록 실업자와 조선업 종사자들의 피해는 커진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야당은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문제를 논의했던 청와대 서별관회의 참석자인 전 경제부총리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을 청문회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며 발목을 잡고 있다. 20대 국회 출범 이후 여야는 앞다퉈 협치와 민생 우선을 강조했지만 19대 식물국회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최악의 국회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쓴 19대 국회에서 야당은 국회선진화법을 무기로 연계 처리 카드를 단골로 내걸었다. 2013년엔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야당의 상설특검법이 연계 처리 대상이 됐다. 2014년엔 새누리당의 정보통신관련법과 야당의 방송법 개정안, 2015년엔 새누리당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야당의 사회적경제기본법 등이 맞교환 처리 대상에 올랐다.
여대야소였던 19대 국회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식물국회란 오명을 썼다면 20대 국회는 여소야대, 3당 체제라는 새로운 힘겨루기에 민생이 짓밟히고 있다.

한국경제는 대내적으로 조선업 및 기업 구조조정과 일명 김영란법(실업자와 금품수수 및 부정청탁금지법), 대외적으로는 브렉시트와 중국의 경제보복 위협, 미국의 금리인하 조짐 등 안팎으로 위기다. 청문회를 볼모로 경제 위기 극복과 민생을 내팽개치는 구태적 행태는 멈춰야 한다.

더욱이 이번 추경은 국민의당 요구로 이뤄졌음을 더민주 등 야당은 직시해야 한다. 당리당략을 앞세운 정쟁으로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다. '선 추경안 처리 후 청문회 합의'는 정치권 스스로 풀어야 한다. 기 싸움으로 민생을 팽개치는 파렴치 국회에 국민들은 무더위보다 더 지쳐 있다. 국민의 눈물부터 닦아야 한다. 뭣이 중헌지는 국민들이 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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