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무상복지의 서막…임시방편 호들갑 이면 청년일자리 문제 그대로
   
▲ 백경훈 청년이여는미래 대표
청년수당과 청년정책의 방향

1. 출구 없는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근본적인 해결이고, 다른 하나는 임시적인 방편이다. 바람직한 것은 당연히 근본적인 해결이다. 임시방편을 사용하면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거나 부작용이 나타난다. 치료법이 병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온 나라가 나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한다. 정부 부처, 지자체, 국회 할 것 없이 이미 만들어 놓은 청년 정책만도 한 트럭이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임기 내에, 단기 효과만 바라는 정책들이 차고 넘친다. 해마다 역대 최고의 청년일자리 예산을 편성하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있고, ‘내탓 네탓’ 공방만 하고 있다. 인기는 없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이야기 하는 정책, 정치인을 찾기가 어렵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에서는 청년수당을 내놓았다. 활동계획서를 작성하면 미취업 청년들에게 1인당 최대 300만원을 지급 하겠다는 정책이다. 동의할 수 없다는 보건복지부와 강행하겠다는 서울시의 줄다리기 속에서 올 여름 서울시는 청년수당 1차분을 지급했다. 보건복지부는 시정명령으로 맞섰고, 결국 법정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다.     

청년일자리만 만들 수 있다면 논쟁이고 법정다툼이고 얼마든지 좋다. 하지만 이런 호들갑을 걷어내면 청년일자리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청년수당은 청년일자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다른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을까. 청년수당이 불러온 논란의 핵심내용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2. 청년수당이 불러온 논란

① 청년수당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나

청년수당은 안 그래도 긴 취업 소요기간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높은 청년실업률의 주요 요인 중 하나도 청년들이 취업준비에 드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입시부터 시작해 대학입학-휴학-대외활동-해외연수-인턴-졸업유예-졸업-취업준비-안되면 대학원-취업, 그리고 수습기간까지. 일을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참으로 길다. 청년들이 가장 왕성한 생산력으로 사회활동을 할 이 시기에 만년 취준생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일자리는 그대로인데 취업 소요시간만 늘리는 정책은 청년들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누구나 바라는 취업의 문은 한정되어 있고,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전국 모든 청년들이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다. 일자리 자체가 늘지 않는 이상, 준비만 잘한다고 더 많은 청년들이 취업의 문을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년수당을 설계한 사람들은 청년들이 취업준비, 진로준비를 잘 하면 일자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안타깝지만 이는 환상이다. 사회가 청년에게 뭔가 조금이라도 관심과 배려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청년들에게 작은 위안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결국 누구나 통과할 수 있는 취업문을 만들어야 이 취업체증이 해소될 수 있다. ‘준비만 잘하면 될 거야’식의 잘못된 주문은 본질은 그대로 둔 채 잘못된 환상만 심어준다. 

   
▲ 해마다 역대 최고의 청년일자리 예산을 편성하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있고 '내탓 네탓' 공방만 하고 있다. 인기는 없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이야기 하는 정책, 정치인을 찾기가 어렵다./사진=미디어펜


청년실업의 근본 원인은 ‘갈만한 일자리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일자리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주는데 비슷한 대학 졸업장을 가진 청년들은 해마다 몇 십 만 명씩 사회에 나온다. 결국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온다. 정부·지자체의 역할은 기업과 경제활동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단기간의 눈에 보이는 효과만 바라고 무얼 더 줄까를 경쟁하지 말고, 기업과 근로자들이 넘쳐나는 다른 나라 도시들과 경쟁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필요한건 오늘의 용돈보다 내일의 일자리이다. 요란해도 좋으니 생색내기 말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방향으로' 노력이든 논쟁이든 많이 좀 했으면 한다. ‘일자리 만들기’ 없이 수당을 주겠다는 이야기만 하니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프랑스의 알로카시옹(18~26세 현급수당 지급)을 벤치마킹 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25%를 넘으며 IS보다 청년실업이 더 무섭다는 프랑스에게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는 ‘현금복지’를 지양하고 ‘일하는 복지’로 돌아선 북유럽의 상황만 봐도 우리가 무엇을 벤치마킹해야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② 청년수당이 빈곤층을 위한 정책인가

청년수당이 온전히 현금이 절실히 필요한 빈곤층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라면 이렇게 까지 논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 입사를 위해 이력서와 자소서를 준비하듯, 청년수당을 받기 위해 활동 계획서와 보고서를 준비해야 한다. 구직이 어려운 빈곤층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늘었다.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는 사업에 허들이 많고, 대상은 불확실하며, 과정은 요란하다.

심사기준에 대한 논란도 여전히 남아있다. 심사의 기준이 되는 활동계획서는 사실 빈곤의 정도와 관계된 것이 아니다. 더구나 구직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내용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뽑힌 3,000명은 현금이 절실히 필요한 빈곤층 청년들인가, 아니면 활동계획서를 잘 쓴 청년들인가. 청년수당이 구직정책이 아닌 복지정책이라면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 청년수당 신청 기준인 20대뿐만 아니라, 30대에도 여전히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수가 상당하다. 다른 세대와의 비교도 필요하다. 

심사를 통해 뽑힌 3,000명의 청년들이 받는 한 달 50만원이라는 돈은 그들보다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낸 세금일 수 있다. 이러한 불공정함은 우리사회의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상당수의 생활보호대상자와 노약자들이 존재한다. 가장 왕성한 생산력을 가진 시기의 청년들에게 국민의 세금을 몰아주는 것이 공정한 것인가. 분명히 따져봐야 한다.

③ 청년수당, 또 다른 무상복지의 서막 아닌가

서울시에서만 시범적으로 진행하는 정책이다 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시작되면 멈출 수 없고, 누구나 그 혜택을 누리고 싶어 할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은 전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수당공약을 내세울 것이고, 여당도 타이틀은 달라도 이에 상응하는 공약을 내세울 것이다. 이미 경기도에서는 5,000명을 대상으로 ‘경기도형 청년수당’이 논의 중이다. 

청년수당은 또 다른 지역차별과 갈등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누구나 바라는 좋은 일자리가 10개라면, 8~9개는 이미 아버지와 삼촌 세대의 자리다. 갈만한 1~2개의 일자리는 전국 수많은 청년들의 ‘워너비’이다. 모두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속에서 서울에 있는 청년들에게만 유리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서울시 청년수당 지급 시작과 함께 재정 상황이 나은 지자체는 앞 다투어 같은 정책을 추진하려 할 것이고,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지자체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다.  

청년수당은 표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카드다. 하지만 그 후과는 온전히 국민들의 몫이다. 우리는 무상급식, 기초연금, 육아수당 논란을 겪으며 이미 진통을 경험한 바 있다. 청년수당 이 후 아이수당, 엄마수당, 아빠수당, 장년수당, 백세수당이 나오지 말란 법이 어디 있을까.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정부와 지자체간 조율이 반드시 필요함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온 나라가 나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한다. 정부 부처, 지자체, 국회 할 것 없이 이미 만들어 놓은 청년 정책만도 한 트럭이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임기 내에, 단기 효과만 바라는 정책들이 차고 넘친다./사진=미디어펜

3. 청년정책의 방향

청년수당을 비롯해 차고 넘치는 청년정책 속에서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정책의 기준과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① 공정한 일자리 시장을 만들어야

누구나 같은 출발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게 결국 노동시장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 세대가 동행해갈 수 있는 일자리 시장의 새판짜기가 필요
직무, 성과에 기반 한 능력중심 임금체계가 자리 잡힐 때, 그나마 좁은 일자리 문이 열릴 수 있다. 이미 기성세대 중심으로 짜진 일자리 시장 안에서 정규직에 좋은 일자리는 이미 아버지와 삼촌 세대의 자리다. 더구나 정년연장까지 등에 업어 청년들의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진다. 올해부터 정년연장이 본격 시행되며, 이를 보완할 임금피크제에 대한 논의가 한동안 뜨거웠다.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을 보완할 수단이기는 하지만 일자리 문제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기업이윤이 변동 없는 상황에서 근로자 인건비가 줄지 않는다면 신규채용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 때 쓰듯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달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대가 동행해갈 수 있는 일자리 시장의 새판짜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규직·비정규직으로만 나누지 말고 다중구조의 노동시장을 인정해야 한다. OECD 주요국의 연 근로시간이 1,800시간 이하라는 것은 단시간 근로 등 다양한 고용형태가 활용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 대기업을 제외한 플랜B가 필요
중소기업에 전체 취업자의 85%가 종사하고 일자리창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함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는 여전하다. 올해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격차는 역대 최대인 62%로 나타났다. 한 달로 치면 190만원, 1년으로 치면 2,30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눈높이만 낮추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80~90%의 청년들이 일하게 될 중소기업의 임금과 근무환경의 개선되지 않는다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노동시간 단축, 출산과 양육 지원, 다양한 근로계약 형태, 고용 친화적 기업성장’ 등 그 기준과 체계에 대한 대기업의 선도적인 노력과 정부의 관리·감독, 중소기업의 성장과 육성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좋은 일자리는 결국 기업에서 나온다.  

   
▲ 박원순 서울시장은 청년수당을 내놓았다. 활동계획서를 작성하면 미취업 청년들에게 1인당 최대 300만원을 지급 하겠다는 정책이다. 동의할 수 없다는 보건복지부와 강행하겠다는 서울시의 줄다리기 속에서 올 여름 서울시는 청년수당 1차분을 지급했다. 보건복지부는 시정명령으로 맞섰고, 결국 법정다툼으로 이어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② 청년일자리 감소 대비해야

희망고문 하지 말자. 없는 길을 자꾸 있다고 하며 줄 세우기 말고, 다른 길을 강구해보자 해야 한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이 혜성처럼 나타나지 않는 이상, 노동개혁과 대학구조조정(대학과 대기업으로 일관된 교육 시스템 개혁)으로 그나마 완화시키지 않는 이상, 비슷한 학위와 능력을 갖춘 청년들은 갈 곳이 없다.  

일자리 감소는 전 세계 공통의 문제이다. 특히 청년들의 일자리 감소폭은 갈수록 가속도가 붙고 있다. 세대 간 불평등, 불공정성도 심하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유럽 국가들도 별 차이가 없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는 AI, 자동화 기술, 로봇 기술을 적극 활용하며 살아갈 것이다. 기업가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을 감축할 것이다. 정부와 사회가 나서 고용을 독려할 수는 있겠지만 이 흐름 자체를 거스를 수는 없다. 단적인 예로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아무리 큰 기업 가치를 가지고 있어도, 많은 직원들을 채용하지 않는다. 

청년일자리 감소가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창업이든, 창직이든, 신산업에 대한 투자든, 해외 ‘잡 노마드(평색직장이 아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직업을 개척하는 사람들)’이든 새로운 일자리 생태계에 공세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③ 어떤 형식이든 취업 울타리 안에 진입하게 해야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청년, 특히 여성들이 일자리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특히 인구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자리 시장에 노동력 투입이 절실한 상황이다. 여성의 고용률(54.9%)을 향후 10년에 걸쳐 현재 선진국 수준(64%)로 제고할 경우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약 0.4%p 상승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청년층은 상당한 학력을 보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 참여는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非구직 NEET족은 16%로 OECD 33개국 중 5위를 기록했다. 

여성과 청년 모두 일자리 시장에 진입한 비율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다. 고학력일수록, 인문계일수록, 직업교육훈련 경험이 있는 경우, 졸업 나이가 어릴수록 취업 소요 기간이 길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또한 일자리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원인이다. 

여성과 청년 모두 취업 소요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에서의 정책 수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여성과 청년 당사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생산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하락을 대비해야만 하는 모두의 당면한 과제이다. 급하지만 긴 호흡으로 내다봐야 한다. /백경훈 청년이여는미래 대표


(이 글은 29일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실, 바른사회시민회의, 청년이여는미래가 공동주최한 '청년수당 왜 문제인가? 청년정책의 방향' 토론회에서 백경훈 청년이여는미래 대표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백경훈]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