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 기품 '로열컬처'없는 참혹한 죄값...기품없는 국가대표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아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가수 유승준과 국가대표 안현수. 한 사람은 미국으로 되돌아갔고 다른 이는 러시아 새 나라로 갈아탔다. 유승준은 한국이 거부했고 안현수는 한국을 도리질했다. 유는 한국으로 못 돌아오고 있고 안은 한국에 살지 않겠노라 한다. 하나는 과거고 다른 하나는 현재다. 미래에는 또 우리 국적성과 관련해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때문에 이 튀는 사례들로부터 철저히 배워야 옳다. 의식과 가치관, 정체성, 그리고 극히 예민한 문화라는 기준에서 말이다.

누가 뭐래도 유승준과 안현수는 자기의 땅으로부터 유배당한 이들이다. 극단적 소외다. 기억도 멀어진 유승준 경우 모두들 금기와 결부시킴으로써 논란을 잠재웠다. 쇄국 애국주의 쇼비니즘이라는 말도 나올 법 했지만 병역을 피해버린 가수 딴따라의 자유의지에 동조하고자 하는 돈키호테는 배달겨레에서 한 점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냥 마침표요 종지부였다. 미디어도 가십 이상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 꽤나 세월이 흘러 2014년 겨울 소치에서 안현수 사례가 불거졌다. 곤혹스럽게도 피해자 안현수를 내친 대한민국은 반성문을 만지작거리게 되었다. 이미 미국이나 세계 언론이 쇼트트랙계 마이클 조던이라며 빅토르 안을 띄우기 시작했고 청와대도 안현수 망명 경위를 문제 삼았던 터라 사태는 더욱 커져 버렸다. 일부 국내 매체들은 안현수 개인 과오를 캐묻거나 선수 폭력설도 제기하고 있어 서로 물어뜯고 나무라는 양비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진흙탕 느낌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꼬여버렸는가?
 

   
▲ 러시아인으로 귀화한 쇼트트렉의 황제 안현수가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열린 메달세러머니에서 반지에 입을 맞추고 있다. 한국이 유배한 안현수는 감독 코치 등 국가대표급 지도자들의 부패와 파벌 왕따 등에 시달리다 한국을 떠났다. 뒤늦게 박근혜대통령과 국민들이 안의 러시아귀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뒤늦게 반성문을 쓰고 있다. 안의 금메달 파동과 쇼크는 우리 사회에서 윗물의 도덕성과 기품인 로열컬처가 심각하게 무너졌음을 각인시켜주고 잇다. 로열컬처가 회복되지 않으면 경제도, 한류도, 스포츠분야의 메달도 쉽게 무너진다.

작금의 안현수와 저번 유승준 사태의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명사로서 지켜야할 기품에 있다. 기품은 영어로 해보면 디그니티(dignity). 우아함이나 수준 높음, 체통과 같은 뜻으로도 통한다. 멋지고 우러러 봐줘야할 기품이 슈퍼스타에서 빠져나가고 국가대표 체제에서 무너진 것이 이 모든 문제와 스트레스 출발점이 되었다. 가수 유승준은 일약 톱스타가 된 직후, 책무를 너무 쉽게 이기적으로 회피해버려 화근을 자초했다. 정상에 오른 명사로서 기품을 보이지 못한 자업자득이자 괘씸죄였다.

안현수 사태는 개인이 아닌 국가대표 체제가 기품을 스스로 저버린 아주 좋지 않은 예다. 영예로운 국가대표 자리에서 실권을 쥔 스포츠 지도자들이 파벌, 체벌, 왕따, 모욕을 일삼은 죄업을 고발당한 사례다. 국가대표다운 기품을 팽개친 꼴불견 자책골이다. 윗물이 썩어 내린 악취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을 텐데 슈퍼스타 명사도 국가대표 리더들도 모두다 발원지 윗물부터 오염되고 부패한 상태였으니 사단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인기 가수도 윗물이고 국가대표 스태프들도 윗물인데 맑지 못하고 혼탁해져 버렸으니 기품 실종으로 인한 억울함, 괘씸함, 미움이나 증오가 끝끝내 증폭되어 버렸다.

그러니 이번 소치 올림픽은 퍽 잔인한 한국인 시험대가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 러시아에서 영원히 살겠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로열 컬처라는 개념을 통해 한 번 분해해 보자.

로열 컬처는 곧 윗물의 기품이다. 유승준은 자기 실력으로 최고가 되었지만 병역이라는 자기희생 앞에서 도피했다. 인기는 껍데기일 뿐 아픈 희생이 진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뒤늦은 후회 속에서 절감했을지 모른다. 이 아름다움이라는 기품에 목말라하는 대중을 배신한 값은 결코 간단치 않다.

안현수를 억눌렀던 국가대표 그룹들도 아름다운 기품을 갈구하는 아랫물 대중들의 신뢰를 밟아 버렸다. 아랫물 대중들은 서러운 탄식을 내뱉을 밖에. 이것이 정신적 지주로서 로열 컬처를 품지 못한 공동체가 당해야 하는 시련이다. 유승준도 아파했다. 자기가 아랫물일 때 윗물들 올려다보니 희생도 않고 의무도 피하더라는 절규다. 안현수 관계자들도 똑 같으리라. 국가대표 선배나, 더 높은 지도자들 보았더니 그렇게 때리고 굴리고 괴롭히더라는 변명들이다.

더 깊고 오래된 원인은 해묵은 도덕적 해이와 정도가 지나친 부패와 타락에 젖어온 윗물들에 있음을 울부짖는 소리다. 한국사람 한국 문화를 튼실하게 지탱하게 해주는 맑은 기운인 로열 컬처가 망실된 죗값이라고나 할까. 더 앞서고 높았던 윗물이 맑지 못해 유승준도 추락했고 역시 더러워진 윗물 탓에 스포츠 국가대표들도 흔들리고 말았다.

이렇게 윗물의 기품, 로열 컬처 후광을 못 받아 괴물이 된 희생양들이 더 나올까 두렵다.
굳이 로열 컬처라고 은유해보는 상수도문화가 굳건하지 못한 경우 그 사회는 하수도문화 밑으로 빨려들어간다. 일단 통속과 저급, 외설과 탐욕이 난무하는 돈벌이 팝 컬처 대중문화가 장악하게 되면 문화적 무정부주의가 엄습한다. 유승준도 안현수도 모두 뿌리 깊은 정신적 지주가 받쳐주지 못했던 결과다. 이 지주가 곧 윗물의 기품, 즉 로열 컬처이다. 이 최상위 물방울 로열 컬처가 잘 흘러내리지 못하면 공든 탑 문화산업이나 한류도 쉬이 무너진다.

권선징악이나 아름다운 사람과 같은 중심 가치가 빠진 엔터테인먼트나 스포츠는 부실 공사와 같다. 한국 문화산업, 미디어 바탕이 꼭 그렇지 않은가? 양반문화, 선비정신에서 이어 받는 충효와 자기 희생, 지조와 같은 가치들이 바로 로열 컬처인데 지금은 형체도 찾기 힘들어졌다. 10년 전만 해도 부모님 모시고 한 솥밥 먹는 가족의 가치를 한국 드라마 최고의 장점이라는 환호가 한류 팬덤을 형성했었다. 이제는 없다. 자유나 반항 같은 메시지도 없는 서구적 화려함, 세련됨과 같은 겉멋만이 K POP을 이끌고 있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디지털콘텐츠 쪽에서는 문화 파괴, 가치 파괴가 기승을 부린다. 기교와 섹시함으로 자극하는 상술만이 판을 친다. 이렇게 로열 컬쳐가 무너진 황폐함 속에서 제 2, 제 3의 안현수 사례는 자랄밖에 없다.
 

정말 듬직한 로열 컬처가 바로 서면 좋겠다. 아무리 천박해져도 디즈니 <겨울왕국>이 지키고 있는 권선징악과 애국심, 영웅주의와 같은 중심가치가 수호신 같은 로열컬처가 되어 할리우드 영상산업 100년을 키워 왔다. 유태인들도 신앙과 전통문화로 후손들을 명사로 교육시킬 수 있었다. 시끄럽긴 해도 유럽 제국들도 로열패밀리를 정점으로 삼아 문화도 누리고 도덕성도 점검한다.

유독 한국만이 경쟁과 성공, 일류지상주의 같은 계산에 홀려 거대한 뿌리 밑동을 잘라 내고 말았다. 러시아로 갔더니 대회 동메달만 따도 다 칭찬해주고 기뻐하더라는 옛 한국인 ,그의 말이 쟁쟁하다. 금메달 못 따도 동료애가 받쳐주는 스포츠맨십을 숭상하는 유라시아 대륙적 기질이 살아 있다면 그것도 로열 컬처다. 이런 중심 가치가 되어주는 로열 컬처 없이는 더 많은 메달과 더 강대한 경제, 한류는 모두 소용없다. 잊지 말자. 윗물의 기품, 로열 컬처 이슈다. 기품 없는 국가대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