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을 두고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하루 만에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하루 만에 금융당국의 1, 2인자가 상반된 의견을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전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금융결제원에서 열린 은행권 공동 오픈플랫폼 개통식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은 현재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간 해운업계 일각에서는 한국 해운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파산위기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합병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임 위원장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정상화가 마무리되면 채권단 주도의 합병도 가능하다는 뜻을 밝혀왔다.

하지만 전일 임 위원장은 "합병을 통해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 수 있지만, 정상과 부실이 섞여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미 채권단에서 합병 가능성을 검토했고, 채권단은 합병에 현실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면서 한진해운의 정상화 없이는 현대상선과의 합병이 없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이날 오전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시장 점검회의에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우리나라 기간산업인 해운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며 "이에 대비해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선박, 영업, 네트워크, 인력 등 우량자산을 인수해 최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진해운에 남아있는 각종 항만과 항로 운영권, 일부 선박, 탄탄한 영업 네트워크, 핵심인력 등을 현대상선이 인수토록 해운업 경쟁력은 유지하겠다는 방안으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임 위원장의 합병 불가 방침이 나온 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금융당국이 사실상 양사를 합병하겠다고 말을 뒤집은 것이다.

일단 금융위 측은 모든 자산과 부채를 인수하는 전형적인 인수합병(M&A)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M&A가 아니니 기존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피합병법인 모든 자산과 부채를 인수해야하고 고용승계의무가 있는 M&A가 아닌 우량 자산‧부채의 선별 인수가 가능하고 고용승계 의무가 없는 P&A가 맞다는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실자산까지 인수하는 M&A와는 달리 원하는 우량자산만 인수하는 것이어서 자산부채이전(P&A)으로 볼 수 있다”며 “이는 M&A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M&A 상황은 아니더라도 한 법인이 사라지고 자산과 부채가 다른 법인으로 이전된다는 점에서 M&A가 아니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물론 현재상선이 자산과 부채를 모두 가져가는 것은 아니어서 M&A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M&A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P&A라고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분사 매각 등 일부자산 인수도 모두 M&A라고 부르는 것을 감안하면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자산 인수는 M&A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에 우량자산이라고 건질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진해운은 이미 핵심자산 대부분을 ㈜한진 등 한진그룹 계열사에 넘겼다. 평택컨테이너 터미널 지분 59%, 부산신항만 지분 50%, 아시아 8개 항로 영업권, 베트남 탄깡까이멥 터미널 지분 21% 등이 줄줄이 한진그룹 손에 들어갔다.

한 해운 업계 관계자는 “우량자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한진해운에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위가 급작스럽게 자산인수 계획을 발표하면서 현대상선 측도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하나 밖에 안 남은 국적선사를 살리겠다는 금융당국의 의지는 알겠지만 조선업계에 비해 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지나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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