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규제에 건전한 화폐제도, 재산권 보호와 무역의 자유가 관건
지난 8월 31일 출간된 『기업가 정신과 경제적 진보』(자유경제원, 랜들 G. 홀콤 저, 황수연 번역)는 경제적 진보의 기업가 모형을 제시한 책이다. 홀콤은 이 책을 통해 시장 경제가 원활히 작동하게 제도가 갖추어져 있으면 기업가가 혁신을 도입하고 이러한 기업가 정신이 경제적 진보를 낳는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6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개최된 『기업가 정신이 경제적 진보를 낳는다』 출판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황수연 경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제성장이나 소득 증가는 재화의 유형이 달라지고 생산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경제적 진보는 경제 성장과 다르다”고 밝혔다.

황수연 교수는 경제적 진보가 경제성장의 전제라며 “작은 정부·재산권 보호·건전한 화폐 제도·자유국제무역·적은 규제제도, 즉 개방된 시장경제제도가 건전하고 올바른 제도적 구조이며 이것이 기업가정신과 경제적 진보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황 교수는 “경제적 진보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이고, 보이지 않는 손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황 교수는 “반(反)시장, 반(反)기업 정서가 강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기업가정신에 도움이 되는 제도적 구조가 유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래 글은 황수연 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이날 세미나는 황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열렸다. [편집자주]


   
▲ 황수연 경성대 행정학과 교수
랜들 홀콤(Randall G. Holcombe)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공선택학자이자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이다. 그가 공공선택학자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신고전학파 주류 접근법에 입각해 있지만 또한 오스트리아학파 학자이기 때문에 신고전학파 접근법을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오스트리아학파 접근법을 많이 채용한다. 그는 어느 한 학파에 속한다기보다 옳은 학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신고전학파건 오스트리아학파건 옳은 견해는 받아들이고 그른 견해는 비판한다.

그는 저서 ‘기업가 정신과 경제적 진보’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많이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주류 신고전학파 성장 이론의 문제점들도 많이 지적하고 있다.

먼저 홀콤은 경제적 진보가 경제 성장과 다르다는 점에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일반인이건 전문 경제학자이건 복지 증대를 가져오는 길은 경제 성장, 소득 증대라고 생각하고 정부 정책도 거기에 맞추어 수립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고는 경제 성장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물론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증가하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 이상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깊이 천착해 보면 진정으로 우리의 복지가 증대하는 것은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책은 이러한 점을 깨우친다.

복지 증대를 경제 성장에 두는 것은 신고전학파 주류 경제학의 영향 때문이다. 경제 성장은 산출물이 증대하는 것, 소득이 증가하는 것을 가리키고 20세기 주류 경제학은 여기에 초점을 두었다. 정책 역시 모든 산출물을 동질적인 것으로 보고 어떻게 하면 이런 산출물을 증대시킬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폐단이 생긴 데에는 다양한 산출물들을 동질적인 화폐로 환산하여 평가하는 국민 소득 회계라는 측정 방식도 기여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문제가 없을까?

   
▲ 건전한 제도들을 가진 경제는 개인들에게 생산적이도록 그리고 모든 사람의 복지를 제고하는 기업가적 활동에 종사하도록 장려한다. 건전하지 않은 제도들을 가진 경제는 기업가적 개인들에게 약탈적 활동들에 종사하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자기들의 복지를 제고하도록 장려한다./사진=미디어펜


인간의 복지는 동일한 재화의 양적 증가로부터 오기보다 새로운 재화와 더 나은 생산 방식, 곧 혁신으로부터 온다. 20세기 초에 비해 20세기 말에 미국의 1인당 소득이 7배로 늘어났다고 같은 음식을 7배 많이 먹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복지가 증대한다. 경제적 진보는 말이 자동차로, 타자기가 컴퓨터로 바뀌는 데서 오지 더 많은 말과 더 많은 타자기를 생산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새롭고 더 나은 재화를 사용하는 것, 더 나은 생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단순한 산출물 증대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경제 성장이나 소득 증가라는 것도 재화의 유형이 달라지고 생산 방식이 달라진 때문에 나타난 것이지, 이러한 경제적 진보 없이는 경제 성장도 발생할 수 없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주류 경제 성장 이론은 소득 증가, 산출물 증가에 집중하고 있다. 주류 경제 성장 이론은 리카도의 생산 함수 접근법에 의존한다. 주류 접근법은 Q = f(K, L)이라는 생산 함수에서 K와 L을 증대함으로써 Q를 늘리거나 기술 진보를 통해 함수 f를 바꿈으로써 Q를 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주류 접근법은 투입물들을 많이 늘리거나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정책 처방을 제시하지만, 제도들을 무시한다.

반면, 기업가 정신 접근법은 투입물 증대나 기술 발전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이 잘 발휘될 수 있는 제도를 중시한다. 올바른 제도적 구조가 없이는 투입물들의 증대와 기술의 개발로도 경제 성장이 초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올바른 제도적 구조는 경제 성장을 야기하는 경제적 진보를 발생시킬 것이다. 올바른 제도적 구조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기업가 정신은 경제적 진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주류 접근법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기업가가 아니라 경영자다. 경영자는 주어진 산출물을 생산하기 위해 최적 투입물 혼합과 양을 결정한다. 그들은 혁신에는 무관심하다. 급속하게 변동하는 오늘날의 경제에서 그렇게 해서 기업이 생존할 수 있을까? 경영자로 안주해서 기업이 생존하고 번창할 수 있을까? 기업가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동일한 제품도 더 좋은 생산 방식으로 생산하는 혁신자다. 경쟁적인 경제 상황에서는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경영자가 아니라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

주류 접근법은 균형 분석에 치중하고 경제적 진보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따라서 주류 접근법의 경제에서는 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경제적 진보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이고 보이지 않는 손에서 중요한 것은 기업가정신이다.

   
▲ 인간의 복지는 동일한 재화의 양적 증가로부터 오기보다 새로운 재화와 더 나은 생산 방식, 곧 혁신으로부터 온다. 20세기 초에 비해 20세기 말에 미국의 1인당 소득이 7배로 늘어났다고 같은 음식을 7배 많이 먹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재화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복지가 증대한다./사진=연합뉴스

기업가 정신이란 이용되지 않은 이윤 기회들을 탐지하고 그것들에 기초해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커즈너는 이윤 기회들을 탐지하는 것을 기업가 정신으로 그리고 그 이후의 활동을 보통의 생산 활동으로 기업가 정신을 좁게 보는 데 대해, 이 책은 이윤 기회들에 기초해서 행동하는 것까지 포함시킨다.

이 책은 하이에크의 지식의 개념을 차용하여 기업가 정신의 발휘에서 지식이 중요함을 설득력 있는 논리와 다양한 실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커즈너는 기업가적 기회들이 어디에서 생기는지를 언급하지 않지만, 이 책은 기업가적 기회들의 기원들을 언급하며, 특히 기업가적 활동 그 자체가 차후의 기업가적 기회를 발생시킴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진보하는 경제는 더욱 번성할 수 있고 기업가적 활동이 적은 경제는 더욱 침체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슘페터의 기업가 정신 개념과 커즈너의 기업가 정신 개념을 종합하여 경제적 진보의 기업가 모형을 전개하는데, 슘페터와 커즈너의 기업가 정신의 차이도 밝히고 있다. “창조적 파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슘페터의 기업가 정신은 개인들의 계획들을 붕괴시키고 개인들 사이의 조정을 축소시켜서 경제를 불균형으로 만든다. 커즈너의 기업가 정신은 그 불균형에 대응하여 행동해서 자원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많은 경제 행위자들 사이의 계획들을 조정하며, 경제를 균형으로 만든다. 이 양 과정에서 경제적 진보가 발생한다.

이렇게 보면 주류 접근법이 흔히 옹호하듯 정부가 R&D 지출을 늘리는 것으로 경제의 성장과 진보가 일어날 수 없다. 발명(invention)과 혁신(innovation)은 다르다. 일단 연구가 이루어지면 그 결과(발명)는 생산 비용을 줄이는 데 혹은 전에 생산한 적이 없었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적용될(혁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는 데는 기업가 정신의 역할이 요구된다. 기업가 정신은 R&D로 생산될 수 없다. 물론 연구 개발 투자를 통해 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측면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연구와 교육 투자로는 부족하고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구소련과 같은 중앙 계획 경제들로부터 알 수 있다. 중앙 계획 경제들은 수십 년간 생산 함수 접근법에 따라 연구와 교육에 대한 투자를 통해 성장을 낳으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기업가 정신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들을 그들이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경제의 유인이 올바르다면 굳이 정부가 R&D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개인들은 인적 및 물적 자본에 투자할 유인과 혁신하고 기업가적이게 될 유인을 가질 것이다. 반면 만약 유인이 그릇되면, 투자와 연구 개발은 궁극적으로 비생산적이게 될 것이다.

경제적 진보에 도움이 되는 제도들이 있으면, 투입물들과 기술의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지만, 적합한 제도들을 가지지 않으면, 투입물들과 기술에서의 향상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만약 기업가 정신에 도움이 되는 제도들이 존재하게 되면, 사람들은 인적 및 물적 자본에 투자할 유인을 가질 것이고, 최상의 기술을 사용할 유인 그리고 기술 개선을 하기 위해 혁신할 유인을 가질 것이다. 경제적 진보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투입물들보다 제도들이 공공 정책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 랜들 홀콤의 <기업가 정신과 경제적 진보>는 경제적 진보의 기업가 모형을 제시한 책이다. 홀콤은 이 책을 통해 시장 경제가 원활히 작동하게 제도가 갖추어져 있으면 기업가가 혁신을 도입하고 이러한 기업가 정신이 경제적 진보를 낳는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건전한 제도들을 가진 경제는 개인들에게 생산적이도록 그리고 모든 사람의 복지를 제고하는 기업가적 활동에 종사하도록 장려한다. 건전하지 않은 제도들을 가진 경제는 기업가적 개인들에게 약탈적 활동들에 종사하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희생으로 자기들의 복지를 제고하도록 장려한다.

건전한 제도들이란 정부 규모가 작고, 재산권이 보호되고, 건전한 화폐 제도를 가지고 있고, 국제 무역의 자유가 있고, 규제가 적은 제도들이다. 이러한 것은 고트니와 로슨의 경제적 자유 지수에 요약돼 있다. 한 국가가 건전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시장 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재산권을 보호함으로써 그리고 시장 교환에 대한 방해물을 제거함으로써 경제적 자유를 창출하는 건전한 제도들은 기업가 정신과 경제적 진보에 도움이 된다.

시장에서의 기업가 정신은 진보를 낳지만 정치적 기업가 정신은 약탈을 낳는다는 점을 홀콤은 강조하고 있다. 정치에서도 시장에서도, 기업가 정신은 이용되지 않은 이윤 기회들을 발견해서 그것들에 기초해서 행동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의 생산성을 제고하도록 기업가적 행위들을 이끈다. 정치에서는, 기업가 정신은 주로 비효율적인 이전 활동을 초래한다. 이것은 정치적 제도들의 강제적 성질 때문이다. 

제도들로 인해 개인들이 생산적인 활동의 편익을 걷어 들이지 못할 때 기업가적인 개인들은 자기들의 기업가적 성향을 약탈적 활동으로 돌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전을 받음으로써 자기들의 복지를 증가시킬 유인을 가진다. 정부가 크고 적극적일 때 사람들은 시장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려고 하기보다 정부에 진입하여 정치적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려고 한다. 기업가 정신에 도움이 되는 제도적 구조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진보는 멈출 것이고 어쩌면 후퇴할 것이다.

랜들 홀콤의 <기업가 정신과 경제적 진보>는 경제적 진보의 기업가 모형을 제시한 책이다. 홀콤은 이 책을 통해 시장 경제가 원활히 작동하게 제도가 갖추어져 있으면 기업가가 혁신을 도입하고 이러한 기업가 정신이 경제적 진보를 낳는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유달리 반시장, 반기업 정서가 강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이 책은 우리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황수연 경성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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