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 비용고려없이 도입된 국회후진화 대표적 사례

   
▲ 윤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며 지난 2012년 5월에 도입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이 아직도 분분하다.
국회선진화법이 국회를 식물국회로 전락시켰다며 비판을 받는가하면 식물국회로 전락했다고 할지라도 그이전의 동물국회보다는 낫다며 아직은 새로운 제도에 적응할 기회가 필요하다며 지지를 받고 있다.

필자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개인적 의견으로 국회선진화법으로 조성된 식물국회의 폐해를 지난 2월에 개최된 한 토론회에서 비판한 적이 있다. 본 칼럼을 통해 필자가 왜 그러한 국회선진화법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적고자 한다.

사실 경제학자로서 국회선진화법과 같이 집단 의사 결정에 더욱 많은 구성원의 동의를 요구하는 방안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집단의사결정에 대다수 사회구성원의 동의를 요구한다는 것은 정치적 거래를 자발적 시장거래에 부합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만장일치제나 국회선진화법과 같이 초다수 구성원의 동의를 요구하는 집단결정방식은 합의안이 미치는 외부효과를 최소화시키기 때문이다. 자발적 시장거래가 모든 거래참여자를 수혜자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다수의 동의가 요구된다면 구성원이 집단의사결정으로 피해 받을 가능성이 최소화되며 대다수가 만족하는 합의가 도출된다.

필자도 국회선진화법의 이러한 방향성은 지지한다. 또한 과잉 입법현상이 우려되는 시점에서는 차라리 국회선진화법 이후의 식물국회가 좋을 수도 있다. 한 예로 경제학자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만 교수는 에어컨의 가장 큰 폐해로 미국 국회가 뜨거운 여름까지 운영되어 과잉 입법활동이 벌어지는 현상을 지목한 적도 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은 기본적으로 집단의사결정방식의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변화에 수반되는 비용적 측면의 고려이다. 동물국회가 식물국회보다 나을 수있다고 주장되는 이유는 국회선진화법으로 국회의 처리안건이 줄거나 처리기간이 늘었기 때문이 아니다. 종종 식물국회로 전락하는 현상은 어느 국회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은 의사결정비용이 상승할 것을 충분히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상쇄시킬 수 있는 다른 조치들이 전혀 수반되지 않은 채 도입되었다. 국회의 의사결정에 초다수의 국회의원 동의가 요구될 시에는 동의를 구하는 노력과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상승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은 상승하는 의사결정비용을 무시하고 몸싸움이 벌어지는 파행적 국회행태만 방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합의가 없는 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의사결정비용을 높였다는 점에서 정치실패의 대표적 사례다. 이런 점에서 차라리 몸싸움을 벌였던 동물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 현재의 식물국회보다 낫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7년 미디어법안의 처리과정에서 민주당 강기정의원이 의장석으로 뛰어들며 법안통과를 막으려 하고 있다.

공공선택론의 선구자이자 지난 198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부캐넌교수는 포괄적 의사결정의 도입으로 국회가 초래하는 사회비용이 상승할 경우 이를 타파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이미 제시한 바가 있다. 그 중 가장 간단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예가 국회의원수를 줄이는 것이다. 국회의원수가 축소된다면 의사결정방식이 요구하는 최소의결표수 동의표를 얻는 게 좀 더 수월해진다. 즉 국회선진화법으로 상승하는 의사결정비용은 국회의원수를 줄이는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보완될 수 있으며 국회선진화법이 발생시키는 부작용을 최소화시켰을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본질적 문제는 이러한 비용적 측면을 간과한데 있으며 그로 인해 국회를 선진화시켰다고 평가할 수 없다.

사실 국회선진화법 이전의 국회법은 의사결정비용을 급상승할시 이를 타파시키는 보완책을 이미 포함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국회의장 직권상정제도다. 동물국회를 야기한 주요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었던 직권상정제도는 국회의원간 합의가 난국에 빠져 막대한 의사결정비용이 지불되고 있을 시 이를 합의과정이 아닌 투표로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직권상정제도가 갖고 있는 비용적 이점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현재와 같이 직권상정제도의 실질적 폐지가 아닌 과도한 법안상정기간 지정을 통해 어느정도 융통성을 부여하는 방안이 추진되었을 것이다.

국회선진화법과 같은 정치적 결정과정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한 가지로 축약해 볼 수 있다.
정치시장의 특징 중 하나가 참여자 자신의 주머니를 얇게 만드는 비용이 아니기에 사회비용에 대한 고려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비용에 대한 고려없이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은 정치실패의 사례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모든 변화에는 비용이 수반되고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방안이 항상 필요하다는 것이 경제학의 원칙이다. 결정이 정치적이라고 해서 이 원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제적 원칙에 충실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고민하는 국회의원이 출연하기를 고대하는 필자의 소망이 너무나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일까? /윤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