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한 졸업식, 가운과 모자쓰고, 대형스크린선 추억의 동영상

   
▲ 김소미 경제진화연구회 부회장, 용화여고 교사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다. 음력 1월은 지나야 겨울 한숨을 돌리는 법인데 며칠째 봄기운이 넘친다. 고비를 넘은 것일까.
2월이다. 교사들은 이 달에 늘 길을 잃는다. 졸업과 입학 사이에서다.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정 들었던 제자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교사에게 2월은 4월 보다 잔인하다. 잘 된 학생은 잘 된 대로, 계획대로 안 돼 길을 한참 돌아가야 하는 학생은 그대로 마음이 아리다. 고교의 둥지를 떠나는 새끼를 보는 어미의 마음이라고 할까.

적어도 한 번은 담임이라는 인연으로 만났을 학생들과 최근 작별했다. 사진 찍자며 다가온 학생이 있었다. 꽃을 준 학생도 있었다.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네는 학생도 있었다. 모두 고맙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다가오지 못하고 먼 발치에서 나를 바라보며 돌아서는 학생. 내 눈가를 뜨겁게 한다. “잘 가거라. 잠시 돌아가는 것일 뿐. 네 길을 가렴.” 손을 흔들었다. 울다가 웃으면 뭐 한다고 했던가. 이렇게 아린 마음은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로 현실로 돌아온다. 2월이 지나고 3월이 되면 학교는 또 바쁜 일상으로 빠져든다.

너무 센티멘털해진 것인가. 졸업식 풍경 스케치를 좀 더 해보자. 몇 년 전 부터 졸업식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진화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 졸업식에선 후배의 송사와 선배의 답사 때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 훌쩍 훌쩍 거리는 학생도 없다. 졸업식장이 눈물바다를 이룬 과거는 이제 그야말로 과거가 됐다.
 

   
▲ 졸업과 입학사이에 있는 2월은 선생님들에겐 4월보다 잔인한 계절이다. 잠시의 인연을 뒤로 한채 정든 제자들을 내보내야 하고, 3월엔 새로이 학생들을 받아들여 미래의 주역으로 키워야 한다. 요즘 졸업식은 과거의 알몸 폭력 계란 밀가루 해프닝과는 달리 대학생처럼 모자와 가운을 쓰고, 추억의 동영상도 감상할 있는 등 다채로운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서울 동명여자고등학교 졸업생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선생님들에게 절을 하고 있다.

졸업식이 주는 엄숙한 분위기도 사라진 지 오래다. 스승과 제자의 헤어짐에 대한 의미도 약해진 지 꽤 된 것 같다. 한 때 졸업식장이 괴물들이 벌이는 폭력의 장이 되기도 했다. 중학교 졸업생의 알몸(?) 졸업식 일탈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밀가루와 계란 졸업식도 자주 나타나곤 했다. 졸업 시즌만 되면 학교와 인근 경찰서에 초비상이 걸렸던 게 엊그제다.

요즘은 제3의 졸업식이 출현했다. 엄숙주의와 폭력성을 거친 뒤의 진화라고 해야 하나. 졸업식이 축제의 장으로 바뀌고 있다. 이별의 눈물바다도, 폭력적 일탈도 아닌 축제형 졸업이다. 졸업식을 위해 학생들이 기획에서부터 연출까지 담당한다. 음악회가 있고 춤이 있다. 선생님들도 축하이벤트에 참여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도 이렇게 변하고 있다. 졸업 가운과 졸업 모자를 쓴다. 대학교 졸업식에 나타나는 형식을 도입했다. 또 졸업장을 반 별로 무더기로 나눠주던 관행에서 탈피해 교장선생님이 졸업생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졸업장을 수여한다. 졸업장이 수여되는 동안 강당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졸업생이 참여했던 추억의 동영상이 비친다. 재학생 동아리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멋진 연주회도 곁들여진다.
인근 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의 졸업식은 더 생기발랄했다. 통기타 연주회와 노래, 클래식과 댄스, 선생님들의 특별 영상이벤트 등으로 꾸며졌다. 다채로운 졸업식이었다. 졸업식장이 더욱 밝아진 셈이다. 눈물 보다 웃음과 환호가 이들에게 더 가까운 듯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졸업식은 졸업축하식으로 바꿔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이들이 스스로 축하하고 있다는 점에서 졸업축하식으로 불려야 마땅할 듯하다. “제자들아, 졸업을 축하한다.”
 

교사들의 마음은 3월이면 또 변한다. 새로운 계획과 각오로 입학생들을 맞아야 한다.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 아니던가.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역사교과서의 차별과 이념의 대립 속에서 어떻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것인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편향된 오류의 홍수 속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고민이 앞선다. 교사들의 고민이 깊을수록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세대는 바르게 자란다.

이번 학년에 필자는 고3 입시반을 맡지 않는다. 고1반으로 내려왔다.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학생들이 보다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독서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려 한다. 학생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더욱 늘리고 싶다. 학교가 스펙만 종용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정신없이 보낸 고3 담임을 벗고 3월을 기다린다. 좋은 교사,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김소미 경제진화연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