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분단 탓에 수십 년 동안 헤어졌던 이산가족들이 20일 감격스러운 만남을 가졌지만 좋지 않은 건강상태 등의 이유로 마음껏 회포를 풀지 못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됐다.

평안남도가 고향인 이영길(87)씨는 이날 오후 3시부터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을 통해 동생 리정실(84)씨를 만났지만 치매 탓에 동생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씨 딸 동성숙씨는 이모 리씨에게 "엄마가 (상봉장에)오실 수 있을지 몰랐다. 상태가 안 좋아 계속 결정을 못 했는데 엄마가 꼭 나와야 한다고 했다"고 상봉 참가를 강행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씨가 리씨의 말을 계속 알아듣지 못하자 성숙씨는 "엄마가 이렇게 모르셔요. 가르쳐 드려야 해요. 치매가 많이 진행돼서 대화가 잘 안 돼요"라며 "이렇게 알아보고도 금방 잊어버릴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혼자 남쪽으로 피난해 새 가정을 꾸린 김영환(89)씨는 북에 살던 배우자 김명옥(86)씨와 아들 김대성(64)씨를 만났지만, 치매와 청력 저하 탓에 이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영환씨는 반가운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선뜻 말을 건네지 못했다. 부인 명옥씨도 청력이 떨어져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대화도 나누지 않고 서로 다른 쪽만 바라보며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남한에 살던 김씨 아들 세진씨가 "너무 오래돼서 약간 못 알아보시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노력했다.

전쟁 피난길에 형 이명호(81)씨와 헤어졌던 리철호(77)씨도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낀 형에게 '어머니는 형이 고무신을 사주러 다시 오겠다고 했다'는 내용의 메모를 건네며 64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명호씨는 다시 메모장에 '북에 살던 가족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느냐'는 글을 써서 동생에게 보여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구급차를 타고 금강산에 도착한 김섬경(90)씨와 홍신자(83)씨는 북측의 반대 탓에 구급차 안에서 북측 가족과 만나기로 했다.

북측이 "취재진이 달려들어 어르신들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어떡하느냐"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고 의료진도 "방에서 상봉하는 경우도 구급 장비가 없어서 위험하다"고 밝혔다. 결국, 두 사람은 구급차 안에서 상봉해야 했다.

이 밖에 우리 측 상봉자가 북측 가족을 만난 뒤 "우리 가족이 아니다"라며 실망감을 표하는 사례도 있었다.

최남순(64)씨는 북한 의용군인 아버지 최종석(92)씨가 낳았다는 북측의 이복동생들을 찾아 나섰지만 상봉장에 나타난 이는 형제가 아닌 남이라며 허탈해했다.

북에서 온 최덕순(55)씨, 최경찬(52)씨, 최경철(45)씨가 자신들의 아버지라며 건넨 사진을 받아든 남순씨는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과 다르다. 사진 속의 모습은 일가친척과도 닮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최씨가 두 살 때 아버지와 헤어졌고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어머니나 친척 동네 주민들에게 들어서 사실관계를 혼동할 수 있다"며 "고향이 강원도고 나무 관련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의용군으로 갔다는 공통점이 있는 만큼 실제 이산가족이 아닌지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