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이 시행된 20일 부모와 자녀, 또는 부부간의 재회가 눈길을 끌었다. 오랜 세월 헤어져 지낸 탓에 상봉 도중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고향이 황해도인 이금자(85)씨는 이날 오후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 헤어진 아들 박흥건(64)씨를 만났다.

이씨는 아들 박씨와 며느리 오춘택(59)씨를 만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고 나서 분위기가 어색해지려 하자 이씨와 박씨는 서로 가지고 온 사진을 함께 보며 북한에 남아있던 일가친척의 안부를 물었다.

   
▲ 남북 이산가족 상봉/뉴시스

평안남도 출신 이만복(90)씨도 전쟁 때 북에 두고 온 딸 리평옥(68)씨와 리씨의 아들 리동빈(49)씨와 만났다.

딸 이수연씨와 함께 금강산을 찾은 온 만복씨는 딸 평옥씨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수연씨가 어머니 만복씨 대신 평옥씨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감정을 추스른 모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한국전쟁 당시 혼자 남쪽으로 피난해 새 가정을 꾸린 김영환(89)씨는 북에 살던 배우자 김명옥(86)씨와 아들 김대성(64)씨를 만났지만, 치매와 청력 저하 탓에 이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영환씨는 반가운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선뜻 말을 건네지 못했다. 부인 명옥씨 역시 청력이 떨어져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대화도 나누지 않고 서로 다른 쪽만 바라보며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보다 못한 김씨의 남측 아들 세진씨가 "너무 오래돼서 약간 못 알아보시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노력했다.

손기호(90)씨는 전쟁 당시 헤어졌던 딸 손인복(60)씨를 앞에 두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인복씨는 1951년 1·4후퇴 당시 자신을 집에 두고 떠난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아버지를 껴안았다.

황해도 출신 강능환(92)씨는 아들 강정국(62)씨를 만나 그간 잊고 지냈던 부인의 이름을 다시 알게 됐다. 부인과 4개월간 같이 살다가 헤어진 탓에 능환씨는 1971년 사망한 부인의 이름도 잊었고 부인의 뱃속에 아들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남한에서 새 가정을 꾸리고 수십년 세월을 살았다.

능환씨는 정국씨를 바라보며 "나랑 닮았다. 아들 모습을 보니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가 남한에서 낳은 아들은 "아버지가 명절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고향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자리가 마련돼 생각지도 못한 아들을 만나고 있다"며 감회에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