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헤어졌던 이산가족이 20일 약 60년 만에 밥상 앞에 마주앉았다.

우리 측 상봉 대상자 80여명과 동반가족 50여명은 이날 오후 7시부터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북측 주최 환영 만찬에서 북측가족 170여명과 만나 감격스러운 식사를 했다.

이산가족 일동은 거센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7시10분께 연회장에 자리를 잡았다. 연회장에는 가요 '반갑습니다'가 울려 퍼졌다. 단체상봉 당시의 흥분과 감격은 잦아든 듯 가족들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고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기도 했다.

   
▲ 3년 3개월 만에 열린 남북이산 가족 상봉/뉴시스

대한적십자사 유중근 총재는 인사말에서 "이산가족 상봉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인도적 사업이자 민족적 과제"라며 "근본적 해결방안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지난 후 후회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말했다.

리충복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도 "금강산 지구에 내린 폭설로 하여 상봉준비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합의된 날짜에 상봉행사를 보장할 수 있게 됐다"며 "분열의 고통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나라의 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앞당겨오기 위한 애국성업에 앞장서리라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밥상에 오른 음식은 식빵, 떡합성(모듬떡), 남새합성(모듬채소), 김치, 닭고기랭국, 고기감자마요네즈즙무침, 어물합성(모듬해물요리), 오이숙장졸임, 섭죽(홍합죽), 소고기완자도마도즙, 송어구이, 오곡밥, 얼러지토장국, 수박, 대동강맥주, 인풍술 등이었다.

밥상은 푸짐했지만 상봉자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대화였다. 착석자간 거리가 1m40㎝가량 되는 식탁에 앉은 일부 상봉자들은 대화를 나누기에 지나치게 먼 거리에 불편함을 호소하며 주최 측에 자리를 바꿔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북측 주금옥(71)씨는 처음 만난 손아래 친척에게 존댓말을 했다가 핀잔을 듣기도 했다.

금옥씨의 언니 주명순(92)씨와 함께 남한에서 온 한 남성이 "내 얼굴 잘 기억해둬요. 나 남한에 내려가면 내 얼굴 꿈에서라도 꼭 봐야 해요"라고 말하며 술을 권하자 금옥씨는 "네"라고 답했다. 이에 옆에 있던 가족이 웃으며 왜 존댓말을 하느냐고 금옥씨에게 핀잔을 줬다.

황해도 출신인 김명도(90)씨는 동생 김홍도(73)씨 가족과 식사를 하며 "음식 준비 많이 했네.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며 행복감을 표했다.

그러나 고령과 치매 탓에 어머니가 딸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동명숙(66)씨는 남한에서 온 어머니 이영실(87)씨에게 "엄마랑 나랑 서로 보고 싶어서 찾았잖아요"라며 아쉬움을 표했지만 영실씨는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64년 만에 만난 딸을 알아보지 못한 채 "그래요"란 질문만 거듭했다.

결국, 명숙씨는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식사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