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서 아쉬움을 안고 내려왔다. 스물 네 살 여왕의 지난 17년 간 스케이트 인생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김연아는 21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2014소치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44.19점을 받아 쇼트프로그램과 합쳐 합계 219.11점으로 시상대 두 번째 높은 곳에 섰다.

4년 전 밴쿠버 대회에서 올림픽 챔피언의 꿈을 이룬 김연아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 김연아/뉴시스

100여년 피겨 역사상 노르웨이의 소냐 헤니(1928·1032·1936)와 옛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1984·1988)에 이어 세 번째 올림픽 2연패에 도전했던 김연아는 영원히 풀지 못한 숙제를 안게 됐다.

현역 선수로 마지막 빙판에 섰던 피겨 여왕은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국민에게 무한한 감동을 선사했다.

빙판에서 숱한 기쁨을 선물했던 피겨 여왕은 이제 전설들이 자리한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연아는 7살 때 동네 빙상장이 들어서면서 우연한 계기로 스케이트화를 신게 됐다. 피겨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어머니 박미희씨의 권유로 취미 삼아 피겨를 시작한 김연아는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중 현재의 류종현 코치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선수로 단련받게 됐다.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은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2년 4월 슬로베니아에서 열린 트리글라브 트로피 노비스 대회(만 13살 이하)에 출전해 1위에 올랐다.

첫 국제 대회 우승이자 주니어·시니어를 통틀어 한국 피겨 사상 처음 거둔 값진 우승이었다. 세계 무대에 존재감을 알린 그는 2003년 중학교 1학년 때 당시 최연소의 나이로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연아의 잠재력은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그해 9월 ISU(국제비상경기연맹) 주니어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한국 피겨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거머쥐며 여왕으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같은 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 마오(24·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김연아는 슬로바키아주니어그랑프리·불가리아주니어그랑프리·체코주니어그랑프리파이널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1위를 휩쓸었다.

2005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그는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우승을 해 주니어 무대를 평정하고 시니어 무대를 밟았다.

2006년 그랑프리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그 해 12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 참가한 김연아는 허리 부상을 딛고 라이벌 아사다를 상대로 역전 우승을 일궈내며 본격적인 자신의 시대를 예고했다. 대표적인 쇼트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 '록산느의 탱고'로 돌풍을 일으킨 것도 이때였다.

그렇다고 항상 1인자의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왕이라고 하기에는 같은 시대를 호흡하는 경쟁자들과 견줘 압도적인 실력은 아니었다.

2007년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홈 이점을 앞세운 안도 미키(일본)와 라이벌인 아사다에게 밀려 3위에 그쳤다. 하지만 김연아는 같은 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하며 주거니받거니 균형을 맞췄다.

어려서부터 다른 선수와 비교해 높은 점프를 소화했던 김연아는 고질적인 부상을 달고 살았다. 의지와 달리 2008년 2월 4대륙선수권대회를 건너 뛸 수밖에 없었다.

부상을 참고 그 해 3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지만 아사다와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에게 밀려 3위에 만족해야 했다.

2009년 12월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대회 사상 두 번째 3연패를 노렸던 김연아는 아사다에게 밀려 2위에 머물렀지만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상승세를 잘 유지한 김연아는 이어진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76.12점을 받아 자신의 최고기록을 세웠고 프리스케이팅에서 131.59점을 보태 합계 207.71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새로운 채점제 도입 이후 첫 200점대 돌파 우승자의 주인공이 된 김연아는 밴쿠버올림픽을 한 해 앞두고 자신감을 얻는 계기를 마련했다.

차곡차곡 올림픽 챔피언을 향해 다가서던 김연아는 1년 뒤인 2010년 마침내 꿈을 이뤘다.

그는 아사다와의 '세기의 대결'이라고 불린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프로그램(78.50점)과 프리스케이팅(150.06점), 합계(228.56점) 모두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자신도 놀란 명품 연기로 피겨 역사에 길이 남을 완벽한 우승을 맛봤다.

피겨 선수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차지한 그는 이후 목표를 잃고 방황했다.

1년 여간의 세월을 허비한 김연아는 지난 2012년 여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라는 새로운 꿈을 찾고 다시 은반에 서기로 결심했다.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 2018평창동계올림픽 때 IOC 선수위원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2012년 12월 독일 NRW트로피를 복귀 무대로 삼은 그는 201.61점으로 가볍게 우승했고 이어진 2013년 3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점수(218.31점)로 정상에 섰다. 이후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204.49점)까지 세 번의 대회에서 모두 200점대를 넘기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이번 시즌, 한 차례 국제대회 출전만으로 부족했던 김연아는 국내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완벽한 연기로 실전 경험을 쌓으며 올림픽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마쳤다.

마지막 칼날을 갈아온 김연아는 전날 쇼트프로그램에서 당당히 1위에 랭크되며 '두 번째 여왕 대관식' 준비를 마쳤다.

◇김연아 국제대회 주요 성적

▲2005~2006시즌 ISU 주니어그랑프리 파이널 우승(174.12점) ▲2006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 우승(177.54점) ▲2006~2007시즌 ISU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184.20점) ▲2007세계 피겨선수권 3위(186.14점) ▲2007~2008시즌 ISU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196.83점) ▲2008 세계 피겨선수권 3위(183.23점) ▲2008~2009시즌 ISU 그랑프리 파이널 2위(186.35점) ▲2009~2010시즌 ISU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2009세계피겨선수권 우승(207.71점) ▲2009 4대륙선수권 우승(189.07점)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228.56점) ▲2010세계피겨선수권 2위(190.79점) ▲2011세계피겨선수권 2위(194.50점) ▲2013세계피겨선수권 우승(218.31점) ▲2014소치동계올림픽 금메달(OOO.OO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