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조선, 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신평사가 적기 경보에 실패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내년부터 독자신용등급이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NICE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3개사 과점체제를 허물 것으로 기대됐던 제4 신평사 허용은 이번에도 좌절됐다.

금융위원회는 21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신용평가 신뢰 제고를 위한 신용평가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신용평가사가 모기업이나 계열사의 지원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신용등급을 매길 때 지원 가능성을 배제한 기업의 자체 신용도를 평가서 본문에 별도로 공개토록 하는 자체신용도 제도가 도입된다.

신평사는 계열사 등의 지원 가능성에 따라 기업의 최종 신용등급이 조정됐는지도 밝혀야 한다.

자체신용도는 신용등급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개념이지만 신용평가서에 언급되지 않아 투자자 등이 신용등급 도출 과정을 입체적으로 알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 제도는 2012년과 2015년에도 도입이 추진됐으나 기업의 반발 등으로 무산됐다.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내년에는 정보가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된 민간 금융회사를 상대로 우선 시행하고 일반 기업에는 2018년부터 적용된다.

금융위는 또 기업이 신용평가 수수료를 내는 현행 체계가 신용평가의 독립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신평사 선정 신청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금융감독원 등 제3의 공적 기관에 신평사 선정을 신청하면 기관이 신평가 한 곳을 지정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복수평가 의무가 면제돼 기업 입장에서는 복수평가제에 따른 평가 수수료 부담을 덜고, 등급을 잘 주는 신평사를 골랐다는 '등급 쇼핑' 시비를 불식시킬 수 있다.

기업이 아닌 투자자 등 제3자가 신용평가를 신청할 수 있는 '제3자 의뢰평가'도 허용된다.

다만 제3자의 평가 의뢰에 따른 신용등급은 해당 기업의 정보 제공 없이 이뤄지는 만큼 영문 대소문자를 구분해 일반 등급은 대문자로, 제3자 의뢰 등급은 소문자로 구분해 표기토록 했다.

이와 함께 금융위는 '등급 장사' 등 불건전 영업행위를 하는 신평사에 대한 제재수위를 최대 '영업정지'에서 '인가취소'로 강화하기로 했다.

신평사의 고의나 중과실로 인한 법규 위반으로 신용등급이 영향을 받아 투자자 손실이 발생한 경우 신평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아울러 신평사가 3곳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해 한 곳이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복수평가제를 일시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 제재의 실효성을 높일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신규 평가사의 시장 진입 허용은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현재의 신용평가 품질에 대해서도 의심이 있는 시장 상황에서 제4 신평사 진입을 허용할 경우 과당경쟁으로 부실평가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금융위는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장평가위원회'를 가동해 시장 여건을 주기적으로 점검, 신규 신평사를 허용할 만큼 역량이 성숙됐다고 판단될 경우 신규 진입을 허용할 계획이다.

김태현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공청회 등에서 제4 신평사 도입의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데 의견이 수렴됐다"며 "그러나 신규 신평사의 시장 진입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만큼 기존 3개사에도 자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들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시행 세칙 등 관련 규정을 연내 개정하고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올해 4분기 중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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