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동갑내기' 김연아와 일본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 구도가 2014소치동계올림픽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자그만한 체구를 지닌 두 선수의 몸짓이 한·일 양국의 피겨팬들을 울리고 웃겼다.

   
▲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뉴시스


사실상의 첫 맞대결은 10년 전인 2004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완의 대기' 김연아가 '천재'로 통하던 아사다에게 밀린 몇 안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은 아사다의 몫이었다.

아사다는 김연아보다 1년 앞선 2005~2006시즌 시니어 무대에 뛰어들었다.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아사다는 두 차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각각 2위·1위를 차지하더니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접수했다.

김연아가 시니어 대회에 합류한 2006~2007시즌부터는 아사다 쪽으로 쏠렸던 중심이 가운데로 이동했다.

아사다는 김연아가 3위에 올랐던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 계단 높은 곳을 밟았다.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김연아가 3위를 차지했을 때는 시상대 가장 높은 곳을 점령했다.

김연아는 2006~2007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아사다를 2위로 밀어내고 본격적인 라이벌 구도를 예고했다. 2007~2008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이는 아사다가 아닌 김연아였다.

이후 두 선수는 각종 대회에서 트로피를 나눠 가졌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싸움에서 조금씩 앞서 가기 시작한 이는 김연아였다.

김연아는 2009년 3월 세계선수권 쇼트프로그램에서 76.12점을 받아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세계 기록을 갈아치웠다. 3회전 연속 점프의 완성도를 더한 김연아와는 달리 아사다는 기대 이하의 행보를 이어갔다. 심지어 그해 세계선수권에서는 4위에 그쳐 시니어 데뷔 후 처음으로 메달을 놓쳤다.

이들의 희비는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회 한 달 전 발목 부상을 당해 불안감을 자아냈던 김연아는 합계 228.56점(쇼트프로그램 78.50점·프리스케이팅 150.06점)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손에 쥐었다.

물론 아사다의 은메달 또한 대단한 일이지만 김연아에게 앞서 금메달을 원했던 자국 팬들의 기대와는 분명히 거리가 멀었다.

올림픽 직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를 제치고 우승하며 숨을 고른 아사다는 김연아가 은퇴와 현역 연장을 놓고 고민하던 사이 여러 대회를 접수했다.

아사다는 잠깐의 암흑기를 거친 뒤 2012~2013시즌부터 다시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 두 차례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모두 우승을 맛봤고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4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이어진 4대륙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잘 나가던' 아사다의 질주는 김연아의 복귀와 함께 제동이 걸렸다. 김연아는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218.31점을 받으면서 196.47점에 그친 아사다에게 20점 넘게 앞섰다.

두 선수는 소치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맞붙었다. 김연아가 현역 은퇴를 공식화해 두 선수가 한 링크에 서는 실질적인 마지막 무대였다. 양국 팬들의 관심은 가히 절정에 달했다.

'진검승부'는 다소 허무하게 끝났다.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가 배정되는 20일(한국시간) 쇼트프로그램 경기에서 김연아(74.92점)는 아사다(55.51점)에게 20점 가까이 앞섰다. 10년간의 경쟁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김연아는 다음날 열린 프리스케이팅에서 144.19점을 획득, 합계 219.11점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도 심판진의 짠물 판정에 울었지만 값진 은메달이었다.

아사다의 마지막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이날 142.71점으로 선전하며 총점 198.22점으로 대회를 마쳤다. 본인의 최고기록을 6점 가까이 상회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16위로 밀려났던 아사다는 순위를 6위까지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