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강행처리는 우군을 사지로 몰아넣는 주문될 수도

   
▲ 박종운 시민정책연구회 연구위원
국회공전, 즉 소위 ‘식물국회’가 국회선진화법 때문인가?

지난해 민주당이 거리투쟁을 하면서 국회가 공전되고 있을 때,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서, 위헌성 법리검토에 착수했었다. 그 이후 최 원내대표와 황우여 대표의 이견이 있었고, 후속 보도가 없는 것으로 보아 위헌성 검토에서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당시 새누리당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선진화법은 우리 헌법에서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포함돼 있는 다수결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주당의 원내 활동 파업과 관련하여 국회가 진행되지 않은 것이지,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로 인한 것이 아니다. 국회의 의사일정 협의에서 상대당에 대한 배려와 관련하여 문제가 생긴 것이다. 국회 상임위원회 중에서 여야 원내대표단이 소속되어 있는 곳은 운영위원회이다. 이곳에서 의사일정을 협의하게 되어 있고, 이곳에서 최경환 원내대표는 다수결에 의해서 의사일정을 정해서 국회를 진행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무제한 토론을 제기했던 적은 딱 한 번이다.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때다. 11월 28일 민주당은 국회 재적의원 1/3이상의 서명으로 강창희 의장에게 무제한토론을 요구했다. 그러나 강창희 의장은 “인사관련 안건은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국회의 오랜 관행”이라며 이의 수용을 거부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민주당이 29일부터 모든 의사일정에 참여를 거부했다. 그러나 최 원내대표는 역시 단독국회를 강행하지 않았다.

어느 경우도 단독국회가 방해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산심사를 제외하고는, 단독국회를 강행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는 아마도 단독국회의 강행,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비난을 받기를 꺼려해서였을 것이다. 혹은 국회 공전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 그가 국회선진화법, 즉 국회법 106조의 2 무제한토론의 실시를 문제삼았다.

   
▲ 재적의원 5분의 3이 동의해야만 법안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한 국회선진화법이 식물국회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다수당이 책임지고 국회를 운영해야 하는 책임정치의 실종에 있다. 국회선진화법이 식물국회, 무능국회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세제 등 법안들은 의원들의 많은 동의를 최대한 받을 필요가 있으며, 박근혜 대통령도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처럼 반대당의 소수와도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법안의 무조건 강행처리는 전략적 우군을 상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 민주당 등 야권이 2011년 한미FTA법안의 국회 본회의 강행처리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은 소수당의 견제 장치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대신, 단상 점거등 비정상적 회의구조를 타파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뜻에 따라서 이제 겨우 국회는 해머와 최루탄이 난무하는 ‘동물국회’를 벗어났다. 그래서 그런 행위를 다시 하게 되면, 그때는 국민들 속에서 고립될 것이다. 야당이 장외로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도 역시 국민 여론상 지지율 추락으로 되돌아왔다.

무제한 토론의 사례는 과연 없으며,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국회선진화법을 비판하는 어떤 이는 무제한 토론 즉 필리버스터가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없다고 하면서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실제 사례는 민주주의의 선진국인 미연방의 국회(Senate, 흔히 상원이라고 번역되고 있음. 대표자는 의장이란 뜻인 chairman)에 있다. 가장 최근에 필리버스터를 한 예는 테드 크루즈 의원으로서, 그는 2013년 9월 24~ 25일 양일간 장장 21시간 19분 동안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강제가입법안 즉 ‘오바마케어’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물론 그의 필리버스터에도 불구하고 투표를 무산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민회(House, 흔히 하원이라고 번역되고 있음. 대표자는 대변자란 뜻의 speaker)에서 ‘오바마케어’를 뺀 예산안을 가지고 미연방 정부의 일시 폐쇄 즉 ‘셧다운’을 감수하면서, 또 국민적 비난으로 지지율 추락을 감수하면서, 국회의 예산 결정을 일시 저지하는데 성공(?)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필리버스터 제도 때문에 과거 오바마 대통령은 국회 보궐선거로 상원 100석 중 공화당을 제외한 민주당의 의석과 여타 무소속 등의 의석의 합계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60석에서 1석 모자라게 되자, 건강보험 관련해서 불가피하게 공화당의 입장을 반영한 법안으로 변경한 적도 있었다. 무제한 토론에 부닥치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런데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무제한 토론을 허용하는 이유는, 또 주요 정당의 합의 운영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국회의 의사결정이 만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만큼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이 ‘만장일치(unanimity)'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가 다른 일부를 약탈하는 법이나 의결을 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만장일치‘ 정신이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

물론 원리주의적인 이러한 만장일치 논리를 실생활에 항상 적용하면 효율성이 저하된다. 아무런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것보다는 차선의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더 좋을 수도 있다. 특히 일부가 다른 일부를 약탈하는 법안이 아닌 경우, 즉 이미 징수된 세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비약탈적 예산 법안 같은 경우에는 ‘다수결(majority rule)'에 따르는 것이 효율적이다. 따라서 비용편익을 고려하여, 효용주의적으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다수결에 따르는 결정 위에서 표결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대해서는 노벨상을 탄 뷰캐넌 등 자유주의 학자들이 의사결정의 비용을 분석하여 2/3 의결제를 주장하기도 했다(뷰캐넌, 털럭, 《국민합의의 분석》, 시공아카데미, 1999). 또한 2/3의결제로 가면 국회 입법의 다량 생산을 통해 오히려 각종 규제법이 양산되는 현실에도 고삐를 채울 수 있다. 자유시장 경제학자인 미제스조차도 “경제적 자유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그것은 의도된 정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부가 의존했던 조치들이 실패한 산물이다.”(미제스, 《인간행동(Human Action)》3권, 지식을 만드는지식, 2011. p.1663)라고 할 정도였으니, 규제법의 양산을 막기 위한 조치로 의결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위의 학술적 기준으로 볼 때도, 국회법에서 요구하는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가 60%이고, 의결조건이 기존대로 과반수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회선진화법이 그리 무리한 수준은 아닌듯하다.

선진화법 비판보다는 다수 여론형성에 노력해야 한다

동물국회가 식물국회보다는 오히려 낫다며 국회선진화법을 비판하는 일부 사람들의 경우는 마음이 급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소망하는 방향의 법 개정이 국회법 상의 무제한 토론에 의해서 지연되는 경우를 참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의사결정비용’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상대당의 국회의원들과 회동하여 법안의 통과에 대해서 설득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듯이, 상대당의 일부조차도 설득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이런 접촉 사실을 언론에 공표함으로써 국민여론의 지지로 압박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이 야당을 상대로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설득 노력을 하지도 않고, 또 상대당의 일부조차도 설득해내지 못하고, 또 팽팽한 의견 대립 속에서 최소한 다수결에 따른다는 정도에서도 국회 의석의 3/5도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법안의 통과를 강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단순 다수결’ 투표를 했던 과거에도 합의 운영이란 명분 하에 국회가 공전되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주문을 하기에 앞서 그런 주문을 하는 사람들부터, 그 시간에 그 법안에 대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우선하고, 여론의 압박으로 상대당 의원들을 강제하는 우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거로 선출되는 국회의원의 경우 여론을 거역할 수 없고, 따라서 여론의 향방이 결정되면 그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케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았음에도, 미연방 정부의 ‘셧다운’으로 무리하게 끌고 간 결과 공화당의 지지율을 최저로 떨어졌고, ‘오바마케어’에 대한 반대는 고사하고 다른 법안들의 추진에서도 영향력이 떨어졌다. 따라서 엇비슷한 여론구조 속에서는 무리하게 강행 통과를 시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주문이 아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비난 혹은 칭찬을 할 때는 반드시 전략적 고려를 해야 하는데, 전략적으로 우군(友軍)을 견인할 생각을 하기보다 무조건 강행 처리를 요구하고 ‘동물국회’를 주장하는 것은 자칫 우군(友軍)을 사지로 몰아넣는 주문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문제는 책임국회의 실종이지 국회선진화법이 아니다.

문제는 책임국회의 실종이다. 현재도 다수당이 국회 운영위에서도 다수이고, 따라서 국회 의사 일정을 정하고 진행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회선진화법이라고 하는 현 국회법에서도 무제한 토론 제안이 있을 경우조차, 의원 1인당 1회에 한정하여 토론할 수 있고, 토론자가 없으면 종료된다(106조의 2 ③). 또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중에 회기가 종료된 때는 무제한 토론이 종결선포된 것으로 보며, 다음 회기에서 지체없이 표결에 들어갈 수 있다(106조의 2 ⑧). 또한 무제한 토론 종결 요구가 있을 때는 토론 없이 표결하여 3/5의 찬성이 있으면 종결될 수 있고(106조의 2 ⑥), 1/2의 재적의원이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를 제기하면 3/5의 찬성으로 신속처리대상안건을 지정할 수 있다(85조의 2) 등등의 조항들이 있기에 진행에 문제가 없다.

무엇보다도 예산안 및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에 대해서는 12월 1일 자정이 지나면 무제한 토론이 있을 경우에도 종결된 것으로 보고 법정시한인 12월 2일에는 표결에 들어갈 수 있다(106조의 2 ⑩)는 조항이 있는데, 이 조항을 살펴보기만 해도 2014년 새해 예산안 통과가 늦어진 것마저도 결코 국회선진화법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책임정치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번지수가 맞지 않게 국회선진화법을 걸고 넘어지기 보다는, 소수당이 무제한 토론이 아닌 장외투쟁의 방법을 택할 경우, 국회법 절차에 따라서 국회 운영위의 다수결 원칙에 따라 국회 의사일정을 묵묵히 진행하면 된다. 그리고 상임위원장의 파업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미국처럼 1석이라도 많으면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맡도록 해서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제한 토론의 경우에도 국회법상 대응을 하면 법안처리에 크게 무리가 없다. /박종운 시민정책연구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