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롯데그룹 경영 비리 수사의 종착지로 향해가는 검찰이 26일 장고 끝에 총수인 신동빈(61) 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법조계에서는 영장 청구 결정이 재계 등을 중심으로 제기된 '경제 논리'에 기울기보다는 공정한 법 집행 원칙을 고수한 조처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일각에서는 20일 신 회장의 소환조사 이후 검찰의 결정이 다소 지체되면서 불구속 기소로 방향을 잡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당초 검찰에선 수사팀이 영장 청구 의견을 올렸고 대검 수뇌부도 같은 입장을 가졌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신 회장 조사를 전후해 기존 입장에 변화가 생길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검찰 관계자 역시 "이런 큰 수사에서는 검찰 시각만을 갖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라고 언급해 고민의 일단을 내비친 바 있다.

재계를 중심으로 롯데 수사가 한국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내는 것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구속영장이 청구돼 발부되면 롯데그룹 경영권이 사실상 일본에 넘어간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로 신 회장이 구속돼 물러나게 되면 현재 신 회장과 일본 롯데홀딩스 공동 대표를 맡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사장의 단독 대표 체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한국 국적의 총수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이 중단되면서 롯데그룹의 국내 투자가 급감해 우리 경제의 활력 제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검찰에선 신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 액수만 1천700억원에 달하는 등 혐의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수사 대상자가 누구든 공정한 법 집행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론이 비등했다는 얘기다.

또 롯데그룹 수사는 김수남 검찰총장이 취임 후 처음 이뤄진 재벌 수사다.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다면 경제계와 우리 사회에 잘못된 '학습 효과'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재벌 총수 봐주기' 아니냐는 해묵은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점도 구속영장 청구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롯데 측이 수사 초기부터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에 나서는 등 수사를 방해한 정황도 영장 청구의 한 이유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신격호(94)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 서미경(57)씨가 일본에 체류하면서 정당한 이유 없이 검찰의 소환 요구에 불응하는 상황 역시 신 회장의 영장청구 결정 과정에 불리한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김 총장은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견지할 '원칙'이 무엇인지, 어떤 최종 목표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판단에 따라 여러 의견을 경청하며 숙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여러 가지 고려요소를 놓고 심도 있게 고민했다"며 "(피의자가) 우리나라 5위의 대기업 총수이고 롯데 측에서 주장하는 경영권 향배 등을 포함한 수사 외적인 요인도 검토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럼에도 사안의 중대성에 따른 형평성의 문제, 사건 처리 기준의 준수 문제 등을 포함한 여러 구속영장 청구의 긍정적, 부정적 요소를 두고 수사팀과 대검 간의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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