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교과서 한줄도 안보고 친일파 낙인 소설써, 집단광기 섬뜩

   
▲ 조전혁 명지대교수, 전 새누리당 의원
역사학자인 정경희 전 탐라대 교수가  전교조 등 좌파들의 교학사 교과서 집단 협박사태와 관련해 “Right is might!(옳은 것이 힘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To see is to believe!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합니다.

사실 저 같은 역사의 문외한이 역사 교과서의 세세한 내용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최근까지 벌여졌던 역사교과서 전쟁을 보면서 “좌파언론과 좌파 역사이야기꾼들이 완전히 맛이 갔구나”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 전쟁에 가세한 일부 야당정치인들의 발언을 보면서 더더욱 한심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미쳤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믿게 된 이유는 단순합니다. “도대체 교학사 교과서를 한 줄이라도 읽어봤나?”에 대해 저들은 답하지 못합니다. 교학사 관계자가 그러더군요. “어느 날 아침 회사 건물 한 켠에 낯선 사람이 기다리고 서 있더라. 그래서 물어봤다. 어떻게 오셨냐고... 누구시냐고... 그러니 경향신문 기자라며 책 한 권 줄 수 없겠냐고 하더라”랍니다. 그러니까 경향신문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별별 험담을 다 썼는데 그게 모두 교과서 한 줄도 읽지 않고 써 제친(?) ‘소설’이란 이야깁니다.

저는 비교적 이 전쟁의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대 초까지입니다. 당시 저는 소위 ‘뉴라이트 운동’의 원조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이 뉴라이트 운동 역시 좌파들의 집중공격에 의해 ‘친일파’로 매도돼 있습니다만... 참 우스운 얘깁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산업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통합을 이룰 철학적 베이스로 ‘자유주의’ 사상을 전파하자며 운동에 나섰습니다. 자유주의자는 기본적으로 ‘무슨 무슨 파’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저희 나이가 사십대 초중반이었습니다. 그 나이에 친일파일 이유도 없고 친일파해서 ‘쥐뿔(?)이나’ 생기는 것도 없는데 친일을 할 이유도 있을 리 없겠죠.

좌파들의 상투어가 “합리적 의심”이라죠? 그 합리적 의심은 그들이 믿고 싶은 부분에만 적용하고 그들이 적이라고 찍어 놓은 사람에게는 비합리적 주홍글씨만 새기려 혈안이더군요. 정말 대단하긴 하더군요. 당시 블로그, 아고라를 장악하고 있던 좌파들이 아주 간단히 우리를 친일파로 낙인찍어버리더군요.

   
▲ 전교조, 한겨레 오마이뉴스 경향신문 등 좌파언론과 좌파사관 역사이야기꾼들은 교학사 교과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친일왜곡했다며 집단적 광기를 부렸다. 좌파들의 집단적 협박과 시위에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고교가 제로가 됐다. 보수정부의 교육부마저 이를 방관하는 무력함을 보였다. 사실상 직무유기한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이제는 교양서로 국민들에게 널리 보급해야 한다. 그래야 좌파들의 음험한 기도와 선동을 무력화시키고, 대한민국 역사를 올바로 기술하고 국민들에게 이를 제대로 알릴 수 있다. 전교조 등 좌파떼거리들이 교학서 교재를 유일하게 채택한 부산 부성고 앞에 모여 교재 채택 철회를 요구하는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저희들은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문화 교육 ...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교과서 문제였습니다. 비단 역사교과서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사회 교과서도 대동소이하게 문제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국어 교과서 역시 지문을 보면 닫힌 세계관, 민족주의, 계급투쟁을 부추기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근현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2004년 ‘교과서포럼’을 결성하고 활동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 분의 교수들이 힘을 모아 소위 대안교과서를 저술했습니다. 알다시피 좌파의 난타에 의해 “억”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스러졌습니다.

이번 교학사 역사 교과서는 당시 대안교과서 폭행사건(?)의 시즌II 쯤 되지 않나 싶습니다. “밀면 밀리더라. 때리면 맞더라”라는 관성의 법칙을 믿었는지 좌파는 10년 전 그 방법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근데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우선 정권이 바뀌었고, 보수우파들도 인터넷, SNS 상에서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다만 교육계의 눈치 보기, 시끄러운 건 못한다는 보신주의는 그 당시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어서 학교의 교과서 채택 전투에서는 2352:0 이라는 참담한 패배의 벼랑에 몰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완전한 패배가 오히려 반전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좌파, 역사좌파들이 정경희 교수님 표현대로 “그악하게” 준동하지 않았더라면 이 문제가 대중적 관심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이 “우리 눈에 들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용납지 않는다”는 저들의 독선과 그 과정에서의 폭력성에 대한 민낯을 목격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이제 보수 우파 진영도 인터넷과 SNS에서 그리 밀리지 않을 정도의 ‘사이버 역량’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좌파․우파의 이념보다 “누가 싸가지 있나, 없나”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네 주장이 사실이냐?”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학사 교과서라는 ‘살아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우리 진영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 됐다는 게 제 평가입니다.

제가 급히 만든 교학사교과서살리기운동본부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교과서를 예약주문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4000명 정도가 1만5000권 가까이 예약한 것으로 짐작합니다. 해당 홈페이지는 제 개인적으로 페이스북, SNS를 통해 지인과 지인의 지인에게 전파시켰기 때문에 아마 모르는 국민이 스무배, 서른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경제학자의 예측이 주로 틀리지만 제 감으로 교과서가 시판되면 10만권은 간단히 넘을 것이고 30만권까지 팔릴 수도 있겠다는 낙관적인 예측을 해 봅니다.

제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일반시민의 교양도서 읽기 운동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경희 교수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국정, 검정 시스템과 편수지침 등의 중요성에 주목합니다. 물론 그 부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 역사교사들의 면면을 감안할 때 단순히 교과서 내용이 바뀐다고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지식이 쉽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일종의 ‘지식 전달체계 상의 누수’가 불을 보듯이 뻔합니다. 교과서 내용은 뒷전이고 자신들의 갇힌 역사관에 아이들을 가두려고 할 것이 뻔합니다. 결국 ‘대중’의 힘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우선 교학사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양서’로 전파하는 것이 이 싸움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대중 현대사 책들을 집필하고 대중강연을 통해 교양시민의 저변을 넓히는 노력이 꼭 병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대중적 저변이 우리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토양에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교과서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전혁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경제학), 전 새누리당의원
 

(이 글은 경제진화연구회가 27일 저녁 7시 서울 서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개최하는 2월 토크파티에서 토론자로 나서는 조전혁 교수의 글을 발췌한 것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역사학자 정경희 전 탐라대교수가 좌파들의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 협박과 관련, <한국사 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라는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