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지 40여 년 만에 형을 만나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앞둔 남측의 동생은 꾹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남측의 동생 박양곤(52)씨는 북측의 형수에게 형님을 부탁했고, 형수도 눈물을 쏟아내며 “삼촌 진정하세요. 건강하세요”라며 시동생을 달랬다. 
 
   
▲ 2014 설 계기 남북이산가족 1차 상봉 마지막날인 22일 오전 북한 강원 고성 금강산 호텔 앞에서 작별상봉을 마치고 떠나는 남측가족 류영식(92) 할아버지와 북측의 조카 류옥선 씨가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통일되면 만난다. 신심을 가지라”며 동생을 달래던 형도 이별의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자 말을 잇지 못했다. 
 
오대양호 납북사건으로 생이별을 했다 42년만에 해후한 형제는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22일 오전 9시부터 작별 상봉이 진행된 금강산 호텔 행사장의 분위기는 전날과 달리 초반부터 착 가라앉아 있었다.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긴 이별 끝에 어렵게 만난 혈육의 얼굴을 바라보며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이별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자 눈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이명호(82)할아버지는 북측의 동생 리철호 할아버지(77)의 손을 잡으며 “내 안 울려고 했다. 살아줘서 고맙다. 몸 건강히 해라”며 울먹였다. 
 
이 할아버지는 “이제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니 그런 것(우는 것)같다”며 “이게 자연의 생리고 이치”라며 다시 못 볼지 모르는 동생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귀가 잘 안들리는 조카 리홍길(72)할아버지에게 자신의 보청기를 즉석에서 건넸다가 ‘소리가 울린다’며 다시 돌려받자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오환(84) 할머니는 동생 옥빈(72·여)·옥희(61·여)씨를 끌어안고 울다가 결국 실신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상봉 마무리합니다’는 안내방송은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산가족들마저 무너뜨렸다. 행사장 곳곳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북측의 여동생 박춘순씨는 오빠인 박태복(85)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며 “오빠는 나의 아버지 모습이어요. 통일돼는 날이 멀지 않았어요. 몸 관리 잘하세요”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남측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호텔 상봉장 밖에 대기중이던 버스에 탑승한 이후에도 안타까운 장면은 이어졌다. 
 
이명호 할아버지는 버스 창밖에서 안타까운 눈길을 던지고 있는 동생에게 손으로 하트를 만드는 등 손동작을 연신 취했고, 이 장면을 본 북측 가족들은 우리 측에 “저게 무슨 동작이냐”며 그 의미를 물었다. 
 
북측 가족들은 “사랑한다는 의미”라는 우리측 기자의 답변을 듣자 역시 팔을 들어올려 하트 표시를 만들며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남측 가족은 버스 창밖에 있는 북측 가족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수첩에 ‘잘 살아 고모님, 건강히 아버님 잘 모실게’라는 글귀를 적어 보여줬다. 
 
남측 상봉단이 탄 버스가 출발한 뒤에도 북측 가족 일부는 버스를 따라가며 오열을 하다 북측 기관원들에게 제어를 당하기도 했다. 
 
1차 남측 상봉단은 이날까지 개별상봉, 단체상봉, 공동중식, 환영만찬 등 6차례에 걸쳐 11시간을 만났다. 
 
우리측 상봉단을 실은 버스는 이날 오후 1시 3분께 숙소인 외금강 호텔을 떠났으며, 북한 출입사무소와 군사분계선, 남한 출입사무소를 차례로 거쳐 오후 4시께 강원도 숙초 한화콘도로 귀환하게 된다.
 
같은 시각 한화콘도에선 북한행을 기다리는 2차 상봉단 360여명이 이산가족 등록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북측 이산가족의 의뢰에 따라 선정된 우리측 이산가족 360여명은 이날 오후 2시까지 한화콘도에 집결한 뒤 약 2시간 동안 이산가족 등록과 건강검진 등 절차를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