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2차 상봉단이 첫 단체상봉에서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났다.

23일 오후 3시7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진행된 이산상봉 단체상봉에는 북측 상봉대상자 88명과 남측 가족 357명이 60여년 만에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눴다.

이날 오후 3시께 금강산면회소에 남측 가족 357명이 대연회장에 먼저 들어와 테이블에 앉아 들뜬 표정으로 북측 가족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 이산가족 2차 상봉/뉴시스

10분 뒤 북측 관계자들과 함께 북측 가족이 입장하자 테이블 곳곳에서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특히 우리측 최고령자인 이오순(96) 할머니와 북측 최고령자인 박종성(88), 김휘영, 권응렬 씨가 헤어진 가족들과 만나 눈길을 끌었다.

휠체어를 타고온 이 할머니는 북한에 사는 남동생 조원제(83)씨를 만나기 전부터 "기분이 좋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며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원래 성이 조씨였던 이오순 할머니는 어려서 아버지가 호적을 등록해주지 않아 시집갈 때 시댁에서 다른 사람 밑으로 호적을 등록해 이씨가 됐다.

원제 씨가 들어오자 한 눈에 동생을 알아본 이 할머니는 동생의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 고맙다"고 오열했다. 조씨도 "누님, 누님, 우리 누님, 이게 얼마만이오. 난 누님이 안계실줄 알았고 누님"이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여동생 조도순 씨도 오빠인 원제 씨의 손을 잡고 껴안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린 뒤 정신을 차린 원제 씨는 누나인 이 할머니에게 '2012년 7월27일' 날짜가 직힌 자신의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북측 최고령자인 박종성(88) 할아버지와 세 여동생인 남측의 박종분, 박종옥, 박종순 씨도 64년 만에 만나 끌어안고 오열했다.

세 여동생은 돌아가신 부모님 사진과 오빠의 사진을 두 손에 꼭 쥐고 오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45번의 번호표를 달고 들어오는 오빠를 본 세 여동생은 종성 씨를 보자마자 모두 달려갔다. 부모님 사진과 생년월일을 확인한 뒤 오빠임을 확신한 사남매는 부둥켜앉고 눈물을 흘렸다.

북측 최고령자인 김휘영 씨의 여동생인 김종규(80)씨와 만나자마자 "아이고 오빠"라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김 할아버지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김휘영 할아버지의 아들 김경일 씨는 휘영씨가 젊었을 때 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가 수여한 시계표창장'과 남측 가족에게 줄 사진 4장을 선물로 준비했다.

권응렬 씨도 여동생도 권기남(85)도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손을 맞잡은 채 그동안 못다한 대화를 나눴다.

죽은줄만 알았던 언니와 만난 김사분(74)씨도 검은색 꽃무니 한복을 입고나온 언니 김태운(78)씨를 보자마자 얼싸안고 얼굴을 어루만지며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김사분 씨는 "언니가 죽은줄 알고 호적을 정리했는데 이렇게 살아있어줘서 고맙다"며 언니를 부둥켜 앉고 한동안 목놓아 울었다.

6·25전쟁 때 잃어버린 형 최인규(82)씨와 재회한 춘규(80)씨도 몸이 불편해 상봉 포기를 고려했다가 건강을 회복하고 먼길을 달려왔다.

최인규 씨는 "64년 만에 만났네, 64년 만에 만에"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동생 최정규(73)씨도 "오늘 만을 고대했다"며 "오빠 건강하게 살아서 만나니 얼마나 좋아 너무 좋다"며 인규 씨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한편 2010년 11월 이후 3년4월 만에 이산가족 면회소에서 진행된 단체상봉에 이어 오후7시부터 우리 측이 주최하는 환영만찬이 시작된다.

이어 24일에는 개별상봉과 공동중식, 가족단위 상봉이 진행되며 25일은 오전 9시부터 한 시간 동안 금강산호텔에서 열리는 작별상봉을 끝으로 6차례, 11시간에 걸쳐 그리움을 달랜다.